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위 Apr 16. 2023

꽃 같은,

할머니, 나의 할머니 

  꽃을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꽃을 선물하면 웃으며 받았지만 꽃이 아닌 다른 선물이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혼자 생각하곤 했다. 그때 나는 꽃이 예쁜 줄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30대 후반을 넘어서면서 꽃이 예뻐보이기 시작했다. 꽃을 받으면 기분이 좋았고 남편에게 꽃을 사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꽃이 예쁜 줄 몰랐을 때는 꽃이 금방 지기 때문에 싫었다. 꺾어진 꽃을 화병에 꽂아도 일주일이 지나면 꽃은 시들시들 고개를 떨구었고 처음에 찬란하게 빛나던 처음의 빛깔은 온데간데 없어지곤 했다. 꽃의 화려함도, 이내 모습을 바꾸어버리는 그 성급함도 그냥 싫었다. 


  꽃 같다. 사람들은 예쁘고 아름다운 어떤 것들을 꽃에 비유해서 말하곤 한다. 나도 그런 비유를 들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는 나를 보며 유독 자주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외할머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도 할머니였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의 꽃 같았던 시절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나는 젊은 어른이 되었고, 이제 더는 청춘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을 즈음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둘째를 낳은 직후였고, 나도 둘째 아이도 건강 상태가 별로 좋지 못했기 때문에 할머니 가시는 마지막 길에 함께 하지 못했다. 남편을 대신 보내놓고, 태어난 지 한 달 남짓 지난 둘째를 안고 내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막 봄이 시작되려고 했던 때였다. 베란다 앞에 있던 나무가 이제 막 움을 틔우려고 하고 있었다. 연두빛 몽우리가 작고 귀여웠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는 집 한쪽에 걸어두었던 사진 속에 할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초등학교 때 해마다 여름방학이면 남해에 있는 외가에 갔었다. 사진 속에는 할머니와 엄마와 오빠와 내가 있었다. 사진 속 할머니와 엄마는 웃고 있었는데 그때 나는 할머니의 품에 안겨 있었다. 웃고 있는 할머니 얼굴이, 정말 꽃 같았다. 할머니의 미소는 들꽃처럼 작고 수줍고 예뻤다. 할머니의 미소는 언제나 꽃 같았다. 할머니에게도 꽃 같은 시절이 있었구나. 할머니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꽃 같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얼마 전 할머니가 꿈에 나왔다. 할머니는 성년이 되기 전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다. 나는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는 아니었는데, 할머니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준 어른이었다. 꿈 속 할머니는 사진 속 표정처럼 웃고 계셨다.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지만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때 그 여름


  아마도 지금의 엄마는 그 사진 속의 할머니보다 더 나이가 많을 것이다. 그때 오빠와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나는 이제 그 나이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40대가 되면서, 정말 청춘이 다 가버렸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이 종종 있다. 뭔가 한 시절이 끝난 느낌. 커다란 고개를 넘고 있는 기분. 얼굴에는 주름이 늘고 몸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하고 병원에 가는 횟수가 점점 늘면서 이제 꽃 같은 시절도 정말 안녕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할머니의 사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꽃은 한 모습만은 아니구나. 꽃이 아름다운 건 그 화려함 때문만은 아니구나. 그런 생각들. 




  봄이 와버렸다. 순식간에 만개한 벚꽃들은 몇 번의 비에 졌다. 그런데 다행인 건 꽃은 저마다 피는 시기가 다르다는 거. 벚꽃은 졌지만 또 다른 꽃들이 피고 또 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이 꽃이구나. 순간 순간을 잘 살아야지. 생각한다. 나이드신 분들이 왜 꽃놀이를 다니는지 그 마음을 알아버렸다. 흐드러진 꽃 아래서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면 참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흔들리지 않는 (이상한) 편안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