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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위 May 10. 2023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

삶의 균형에 대하여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들 무렵부터 유독 일요일 오후가 되면 우울해 하곤 했다. 물론 이유는 다시 월요일이 오고 월요일이 오면 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 역시 아이와 다르지 않아 일요일 오전부터 조금씩 불안이 밀려오곤 했다. 이 시간이 가고 있다는 사실. 저 멀리 어디선가 월요일이 오고 있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일요일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몸과 마음을 다해 힘겨워하는 우리 모자를 보며 남편은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 노래를 틀어주곤 했다. 


일요일이 다 갔다. 

다 갔을 뿐만 아니라 오늘은 어느덧 화요일이다. 이 말인즉슨, 다시 또 새로운 일요일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어짜피 또 가버릴 일요일이지만 일요일을 기다리는 마음은 조금씩 설렌다. 


지난 일요일에 나는 오롯이 혼자 시간을 보냈다. 목요일 밤에 남편과 아이들은 여행을 떠났고, 월요일 밤에 돌아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무려 나흘이나 주어졌다. 예상했던대로 나는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무엇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극강의 편안함 속에 온몸을 던지고 종일 패드를 품에 안고 드라마와 영화,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또 보았다. 밥 먹는 시간까지도 손에서 패드를 놓지 않았는데,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바빌론과 파벨만스를 보면서 영화를 만드는 삶에 대해 생각했고, 닥터 차정숙을 보면서 경력단절이지만 그래도 의사 면허가 있어서 좋겠다고 생각했고, 퀸 메이커를 보면서 드라마와 현실의 괴리를 생각하다가, 나이가 들었지만 (현대의학의 힘을 빌려서라도) 팽팽한 피부를 유지하는 여배우들을 잠시 부러워했다. 그러다가 일요일 오후에 파친코를 보기 시작했는데, 이 드라마를 하필 일요일 오후에 보기 시작한 나를 자책하며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졌다. 눈물을 훔치고 또 훔치면서 패드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하지만 월요일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고, 패드를 덮고 잠자리에 들었다. (수면부족은 편두통 유발의 주요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에 패드를 덮는 데 큰 망설임은 없었다. 슬프게도.)




패드를 덮었지만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오롯이 나에게 주어진 사흘 간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언제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잠들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우곤 했는데 이 어색한 고요도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육아를 시작한지도 10년이 넘었는데, 육아와 함께 하는 삶은 종종 '혼자 있는 시간'을 갈구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무려 사흘이나 그런 시간이 주어졌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해야 할 최소한의 일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사흘동안 단 한 번도 밥을 하지 않고 이런 저런 주전부리들로 배를 채웠고, 꼭 나가야 할 일이 아니면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며, 모든 여유 시간을 누워서 영상을 보는 것으로 흘려 보냈다. 사흘의 마지막 날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후회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시간이 이제 끝난다는 사실이 아쉽지도 않았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몹시 그리워지는 순간들이 있었고,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이 고요가 달콤하기도 했다. 혼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흘이 좋았지만 이 시간을 더 연장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 살아가는 데는 어떤 균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균형을 위해서 잠시 쉬어가는 타임. 그렇게 일요일 밤이 흘러갔다. 파친코 보는 것을 포기했지만 나는 12시가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들 들으며 그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맛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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