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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위 Nov 14. 2023

우리의 다이어트

2023. 10. 26.

튼튼이의 유치가 빠졌다.


나무에 비해서 어쩐지 빠른 느낌이라 마침 오늘 충치 치료하러 치과에 간 김에 물어보니 조금 빠른 편이라고 한다. 또 노파심이 도져, 유치가 빨리 빠지면 성장이 빠르기도 한가요? 라고 물었다. 의사는 그런 경우가 많고 유치가 빨리 빠지는 아이들 중 성조숙증이 오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늘, 사서 걱정을 하는 나에게 걱정이 휘몰아치려던 찰나, 문득 나도 성장이 빠른 편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 키는 162센티미터인데, 나는 6학년 때 다 자랐다. 빠른 생이어서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갔으니, 나는 열두 살에 이미 키가 다 커버린 것이다. 그런 내 딸인데 오죽하랴.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흘러가자.


어제 저녁 식당에서 토마토를 먹다가 튼튼이의 유치가 빠졌다.


튼튼이는 빠진 이를 소중하게 가져와 베개 밑에 넣고 잤다. 그렇게 하면 요정이 와서 유치를 가져가고 선물을 준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모양이었다. 튼튼이가 아직 자고 있을 때 출근을 한 터라 (오늘은 목요일이지만, 육아시간을 쓰지 못했다) 남편에게 그 후의 일을 물었다. 아침에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유치를 보며 튼튼이는 몹시 속상해 했다고 한다. 유치가 빠지는 경험을 하고, 유치를 요정이 가져가기를 기다리는 튼튼이의 마음. 지금 튼튼이를 둘러 싼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니 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겠다 싶다.


치과는 집에서 3km 남짓 떨어져 있다. 차로 가면 10분도 안걸릴 거리인데 튼튼이는 버스를 타고 가고 싶다고 했다. 여전히 운전이 즐겁지만 않은 내게 버스를 타고 가자는 튼튼이의 제안은, 사실 몹시 반가웠다. 거리는 가깝지만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서 중간에 갈아타야 했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는 것이 소원인 튼튼이는 치과에 갈 때 그 소원을 이루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는 뒷자리에 앉지 못했다(사실 뒷자리에 자리가 있었지만 갈 때 조금 위험해서 굳이 내리는 문 옆에 자리를 잡았다). 흥. 나 삐졌어. 팔짱을 끼며 옆으로 돌아앉는 튼튼이를 보는데 웃음이 난다.


치과 진료를 마치고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저번에도 병원에 가야해서 내가 조퇴를 하고 둘이서 카페에서 빵 먹고 미용실 가서 머리카락 자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튼튼이에게 데이트 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다이어트? 엄마 우리 또 다이어트 하자"고 했던 기억이 난다. 튼튼이는 "엄마 우리 오늘도 다이어트 해?" 하면서 웃었다.

버스를 타고, 치과에 다녀오고, 함께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하나 먹고. 별 다른 일을 하지 않았지만, 튼튼이와 함께 한 다이어트(?!)는 그래서 즐겁고 좋았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나에게 몸을 기대며 팔을 꼬옥 잡는 튼튼이. 버스가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 마다 우리는 재밌다며 웃었다.  

덜컹덜컹. 이렇게 또 흔들리면서 가자. 흔들리면 손 꼭 잡고 같이 가자. 튼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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