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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준 Aug 06. 2018

결국은 진심이다

진심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몇 달 전에 학교에서 주제 경연발표대회가 있었다. 각자가 원하는 주제를 선정해서 이에 대해 조사하고 발표하는 개인 대회였다. 고3인지라 다들 수상 기록을 만들어내는데 바빴다. 물론 나도 수상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각반에서 대표 3명을 뽑아 25명 중에서 대상, 금상, 은상, 동상을 가려내는 대회였다. 참가만 해도 장려상은 받을 수 있었다. 시험기간을 앞두고 무슨 오기가 생겨서였을까 나는 참가하기로 하고 무슨 주제를 발표할까 오랜 시간 고민했다.


 영화를 해석하는 방법? 문학작품에 관한 해석? 등등 학술적이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주제를 선정하고 나면 이에 대한 자료 조사와 PPT 만드는 것은 큰 어려움이 아니었다. 다만 정말 내가 제대로 소화할 수 있고 진심을 다해 발표할 수 있는 주제여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계속 어떤 주제를 해야 상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압박감에 주제를 선뜻 정하지 못했다.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발표를 참여하는 이유는 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발표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진심 때문이었다는 것을.


 대회 전날까지도 정확한 주제를 선정하지 못하고 밤새 고민만 하고 있었다. 그때 머릿속에서 스친 생각이 있었다. 얼마 전 읽은 글에 진심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아무리 치장을 하고 예쁘게 보이도록 덮어 씌어도 진실된 마음이 전해진다면 그 이외의 것은 다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최대한 내 진심에 집중해봤다. 지금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고 진심을 담아서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를 먼저 고민했다. 그리고 주제가 정해졌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이 주제를 택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대회 몇 달 전에 다녀온 캄보디아에서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다.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 지금까지 짝사랑을 하면서 꽤 많은 상처를 얻었다. 이를 조금이나 자가 치유해보려고 읽은 에리히 프롬의 책, ‘사랑의 기술’이 인상 깊게 내 속을 파고들었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닌 존재 자체를 긍정한다는 것. 난 진심으로 말하고 싶었다. 그녀를 사랑하는 건 어떤 소유욕도, 욕망도 아닌 정말 진심 그 자체라는 것을. 진심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발표 주제로 선정하는 데 있어 이 진심만이 충분했다. 


 그날 저녁 ‘사랑의 기술’을 3번 정독하면서 사랑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진심을 말하는 것은 오래 걸린다. PPT는 아주 간단하게 만들고 스크립트도 간략하게 정리만 했다. 굳이 대본을 쓸 필요를 못 느꼈다. 진심을 말하는 데 있어 대본이 있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린 자신을 되돌아보며 한 발짝 더 성숙해지기 위한 사랑에 대한 고민을 하느라 어느새 아침이 되었다. 




 발표를 했다. 최대한 진실되게 말했다. 다른 친구들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의 발표가 더 세련되고 멋져 보였다. 눈을 사로잡는 PPT에 현란한 스피치 스킬, 체계적으로 준비된 대본까지. 이미 우승은 정해진 듯하였고 마지막에서 4번째였던 나는 최대한 즐기기로 했다. 진심을 전하는 데 있어서 상을 바라는 것처럼 어불성설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 차례가 돌아왔고 난 있는 진심 그대로 발표를 했다. 친구들은 많이 웃고 즐거워하며 좋아했다. 무거운 사회적 이슈를 이야기하다가 사랑 이야기가 나오니 그럴 수밖에. 진심을 전한 것이 나의 목표였고 결국 해냈다.


 결과가 기다려지기보다 진심을 말했다는 것에서 오는 편한 마음이 컸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결과가 나왔다. 내가 대상이었다. 친구들은 모두 축하해줬고 의외의 결과라면서 나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상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떤 주제였길래 수상을 했는지. 별다른 주제도 아니었고 멋진 말솜씨도 아니었다. 난 말했다. 그저 진심이라고. 진심이 다였다.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관객이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었다. 대상은 단순히 생활기록부에 올라가는 스펙으로 나에게 기억되기보다 진심의 영향력으로 더 깊게 기억될 것 같다.






 난 참 못났고 별 볼 일 없는 남자애다. 그다지 매력도 없고 공부도 잘하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다. 그런 내게 가진 것이라고는 진심뿐이다. 발표한 날, 다짐했다. 내가 글을 쓰고 영화를 찍고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진실됨에 따라 후회 없이 행하겠다고. 지금까지도 이 진심으로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잘 알고 있다. 진심이 언제까지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해질 수 있다는 것. 살아가는 데 있어 난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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