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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준 Aug 07. 2018

내 글이 과연 사람을 치유할 수 있을까?

경험을 통한 감정이 사람을 움직인다.

 예전부터 내 글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너무 많은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선생님과 부모님의 칭찬이 펜을 들게 만들었으며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 글에 대한 객관적 평가 기준이 되어버렸다. 결코 난 누군가를 위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적지 못했었다. 아무리 영화 비평과 문학 감상 평을 재미있고 훌륭하게 적는다 하더라도 진심을 담은 글을 통해서 단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적지는 못했다. 난 아주 개인적인 수필과 일기만을 고수해왔다. 내 생각과 해석을 중심으로 세상을 풀어내는 방식의 글. 편지는 써본 지 오래였다. 어려서였을 것이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겪으며 누군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글을 쓸 수 있게 된 계기가 생겼다.




 나에게는 절친 한 명이 있다. 나와 같이 제정신은 아닌 애지만 탁월한 언변과 뛰어난 창의성으로 함께 창작 활동을 같이 했던 친구였다. 전교를 휘젓고 다니면서 영상을 찍고 앨범을 판매하며 일반 고등학생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어떤 부분에서 담대하고 다르게 봐서는 무모한 도전을 해왔다. 우리가 2학년이 되고 1학년이 들어왔을 때였다. 봄과 함께 나와 내 친구에게 사랑이라는 큰 고비가 왔다. 둘 다 진심으로 설레게 된 첫사랑이었기에 풋풋한 사랑을 기대했다.


 하지만 난 짝사랑에서 멈춰버렸고 친구는 구차한 여자의 말과 행동으로 이별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 친구들은 그 여자 친구를 욕하거나 잘 헤어졌다는 식으로 위로를 하기 바빴다. 하지만 친구는 전혀 기분이 풀릴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때 나는 느꼈다. 친구가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어떤 조언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 역시 처음이었기에. 그 당시 보게 된 영화가 있었다. <봄날은 간다>. 정확히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한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가슴 깊이 찌릿찌릿하면서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나이 때 무슨 깊은 생각이었는지 친구를 위해 사랑에 관한 짧은 에세이와 함께 편지를 적어줬다.

영화 <봄날은 간다>


 대략 내용은 이랬다. 모든 관계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너와 그녀의 관계도 그 끝을 이제야 마주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거기에 미련을 갖지 말고 떠나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 네가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다면, 그리고 지금 그녀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마음 역시 존중하면서 네가 떠나보내는 것이 더 그녀를 위한 것 아닐까? 라는 오글거리고 유치한 글을 적었다. 기억난다. 7교시 미적분 수업시간에 노란색 옥스퍼드 종이에다가 깨알 같은 글씨로 편지를 적었던 것이. 


 친구에게 전해주고 친구가 편지를 읽는 것을 봤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봤다. 친구가 고개를 돌리고 흐느껴 울고 있었다. 노란색 종이 위에 눈물이 떨어져 잉크가 번져나갔고 친구는 울음을 참느라 종이를 조금씩 구기고 있었다. 자신이 아직 이해하지 못한 그녀의 마음과 지금의 아픔이 내가 적어준 글에서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글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의 깊이와 힘이 있다는 것을.





 물론 친구는 그렇게 잘 풀리지 않았고 나 역시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둘이서 아직도 그때를 회상하며 웃으며 이야기하곤 한다. 어떻게 친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일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그 해답은 아픔이었다.


 결국은 아픔이다. 이는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다. 다른 친구들은 그 당시 사랑의 아픔을 같이 겪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친구와 동시에 짝사랑으로 아파하고 있었다. 그때 사랑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성찰을 통해 스스로 사랑이 주는 시련에 단단해질 수 있었다. 그 경험이 있었기에 난 글에도 친구를 위한 진심 어린 조언이 가능했다고 본다. 조언은 이런 곳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그저 형식적인 위로와 충고가 아닌 같이 경험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깊이로 진실되게 이야기하는 것



 아직도 나의 글 솜씨와 감정은 배울 것도, 겪을 것도 많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경험이 모든 글의 중요한 핵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접 느끼고, 경험하고, 상처가 나고, 흉터가 생기고, 회복되는 과정을 거친 자만이 글에 진심을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어른들이 말하는 조언도 이 경험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누군가에게 하는 모든 말 하나하나가 곧 자신의 아픔을 통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감정과 배움을 나누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난 이후로 난 글을 쓰는 행위보다 경험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경험이 곧 사람을 강하게 만듦과 동시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제 마주할 삶의 모든 시련과 고비들이 글의 소재가 된다고 생각하니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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