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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내 Jan 29. 2024

엄마 아빠 딸, 다녀왔습니다

가장 막막하고 먹먹했던 90일간의 여행을 끝내며

브런치 작가를 시작하게 해준 글



운이 좋았다. 코로나 때문에 취직도, 이직도 어렵다는데 다행히 이직에 성공했다. 회사 사정상 석 달 뒤에 출근하기로 했으나 어느덧 그게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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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 인생에 마지막일 방학이 끝났다. 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점심 먹으며 저녁을 고민하고 집에서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걸 하면서 세 달을 보냈다. 그 어느 때보다 나태했고, 그 어느 때보다 별 볼 것 없었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절대로 내 것이 아니었을 가장 소중한 90일이었다.

집에만 있어야 하다 보니 엄마랑 붙어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으로부터, 엄마로부터 벗어나고자 발버둥 쳐 온 주제에 꼼짝없이 갇히고 만 거다. 부딪히고 싶지 않은데 어찌나 막막하던지. 코로나가 심해져 작업실도 닫힌 마당에 내가 마음 편히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무심한 큰 딸이자, 언제고 떠나버릴 듯 가벼운 자식이었으므로 그런 나를 어떻게 해서든 잡아두려는 엄마와는 가까워지려야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이 당연했는 지도 모르겠다. 다른 딸들처럼 속을 내보인다거나 애교를 부리거나, 단 둘이 여행 한 번 가본 적 없으므로 가깝다기보단 그저 익숙해진 관계. 나는 그 속에서 어색하고 낯선 기운으로 며칠을 보냈다. 


최대한 마주치지 않고자 애썼으나 될 리가 없었다.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도 있었고, 소파에 멀찍이 앉아 종일 TV만 보는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묘하게 낯설고 간지러운 기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질적이면서 막연하던 게 점점 선명해졌다. 아빠와 나와 동생이 집밖으로 나가버린 후에 찾아오는 집의 침묵. 난생처음, 엄마의 일상을 카메라로 담듯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 거다.

처음엔 가만히 지켜보다 지켜만 보기엔 미안하니 하나둘 거들게 되고, 거들다 보니 두어 마디씩 건넨다는 게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어긋난 채 흘러온 엄마와 나의 시간이 점차 나란히 맞물리는 듯했다. 처음으로 엄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온전히, 같은 속도,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고 느껴졌다. 묘한 기분이었다.


아침에 아니, 솔직하게. 점심시간즈음 일어나 눈 비비며 엄마한테 달려가 무릎을 베고 누워 점심은 뭘 먹을지 물었다. 가끔은 엄마가 좋아하는 떡볶이나 백반을 시켰고 때때로 저녁에 먹을 법한 무거운 요리를 해먹기도 했다. 혼자 남은 집에서 엄마는 찬밥에 김 싸 먹는 일이 허다했을 것이므로, 답답하지만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므로 같이 있는 동안엔 맛나고 좋은 것들을 함께 먹고 싶었다. 


그 후엔 집안일을 나눠하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거나 저녁거리를 고민한다거나 그러다 끌어안고 잠들기를 반복했다. 한 공간도 모자라 손 뻗음 닿을 거리에서 모든 일상을 공유했다. 이 생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제법 아무렇지 않았다.


해가 질 때즈음 부엌에서 그릇 소리가 나면 저녁 준비를 도우러 갔다. 퇴근하고 돌아오신 아빠와 저녁을 먹고선 소파에 앉아 포근한 이불을 나누어 덮고는 과일바구니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정한 적은 없지만 주말이면 온 가족이 암묵적으로 다 같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일찍이 두 딸을 내외하며 키우신 아빠에게 영화는 우리를 자연스럽게 곁에 두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매개라는 걸 모르지 않기에 나와 동생은 매주 찾아오는 그 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빠는 잔잔하고 감성적인 영화를, 엄마는 SF영화를 좋아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랜덤으로 무서운 영화가 걸리기도 했는데 동생과 나는 꽥꽥 소리를 질러댔고, 그런 우리를 시끄럽다 타박하는 아빠의 목소리에선 장난기가 느껴졌다. 점점 농담이 잦아졌다.

어느덧 마지막 날이다. 나열해 보니 그리 특별한 것은 없었다. 저게 다였다. 그래서 더 마음이 이상하다.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 왜 그리도 어려웠을까. 아득하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기도 하고. 나는 내가 살면서 해왔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지난 세 달간 더 많은 사랑을 소리 내어 말했다. 더 많이 엄마를 안아주었고, 아빠와 웃으며 대화했다. 동생과 더 친해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나 멀어지고 싶었던 집을, 떨어지고 싶었던 엄마와 90일간 여행한 것 같았다.

마지막 날이었다. 창문을 열어두니 바람은 시원하고 하늘이 예뻤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엄마가 나를 안고서는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다 했을 때. 이렇게 안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난다고 했을 때 나는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안고 누웠던 시간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성향과 가치관 때문에 다투고 울길 반복하던 우리에게 그런 평화가 있었던가. 침대 머리맡에서 시폰 커튼이 살랑거리는데 그 너머로 개구진 아이들 하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왜 벌써 이렇게나 커버렸을까. 그동안 어디서 무얼 하다 이제야 집에 온 걸까. 다시 이 품에 돌아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작할 땐 막막했는데 끝내려니 먹먹하다. 턱이 네모지고 피부가 까무잡잡해도 되고, 지독한 아토피를 다시 앓아도 되니까 한 번 더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 살아보고 싶다. 그땐 조금 덜 싸우고, 덜 힘들게 함께일 수 있으려나. 다시 만나 더 다정하고, 애틋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아빠 딸, 멀리 돌고 돌아,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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