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막막하고 먹먹했던 90일간의 여행을 끝내며
브런치 작가를 시작하게 해준 글
운이 좋았다. 코로나 때문에 취직도, 이직도 어렵다는데 다행히 이직에 성공했다. 회사 사정상 석 달 뒤에 출근하기로 했으나 어느덧 그게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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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 인생에 마지막일 방학이 끝났다. 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점심 먹으며 저녁을 고민하고 집에서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걸 하면서 세 달을 보냈다. 그 어느 때보다 나태했고, 그 어느 때보다 별 볼 것 없었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절대로 내 것이 아니었을 가장 소중한 90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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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만 있어야 하다 보니 엄마랑 붙어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으로부터, 엄마로부터 벗어나고자 발버둥 쳐 온 주제에 꼼짝없이 갇히고 만 거다. 부딪히고 싶지 않은데 어찌나 막막하던지. 코로나가 심해져 작업실도 닫힌 마당에 내가 마음 편히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무심한 큰 딸이자, 언제고 떠나버릴 듯 가벼운 자식이었으므로 그런 나를 어떻게 해서든 잡아두려는 엄마와는 가까워지려야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이 당연했는 지도 모르겠다. 다른 딸들처럼 속을 내보인다거나 애교를 부리거나, 단 둘이 여행 한 번 가본 적 없으므로 가깝다기보단 그저 익숙해진 관계. 나는 그 속에서 어색하고 낯선 기운으로 며칠을 보냈다.
최대한 마주치지 않고자 애썼으나 될 리가 없었다.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도 있었고, 소파에 멀찍이 앉아 종일 TV만 보는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묘하게 낯설고 간지러운 기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질적이면서 막연하던 게 점점 선명해졌다. 아빠와 나와 동생이 집밖으로 나가버린 후에 찾아오는 집의 침묵. 난생처음, 엄마의 일상을 카메라로 담듯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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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가만히 지켜보다 지켜만 보기엔 미안하니 하나둘 거들게 되고, 거들다 보니 두어 마디씩 건넨다는 게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어긋난 채 흘러온 엄마와 나의 시간이 점차 나란히 맞물리는 듯했다. 처음으로 엄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온전히, 같은 속도,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고 느껴졌다. 묘한 기분이었다.
아침에 아니, 솔직하게. 점심시간즈음 일어나 눈 비비며 엄마한테 달려가 무릎을 베고 누워 점심은 뭘 먹을지 물었다. 가끔은 엄마가 좋아하는 떡볶이나 백반을 시켰고 때때로 저녁에 먹을 법한 무거운 요리를 해먹기도 했다. 혼자 남은 집에서 엄마는 찬밥에 김 싸 먹는 일이 허다했을 것이므로, 답답하지만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므로 같이 있는 동안엔 맛나고 좋은 것들을 함께 먹고 싶었다.
그 후엔 집안일을 나눠하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거나 저녁거리를 고민한다거나 그러다 끌어안고 잠들기를 반복했다. 한 공간도 모자라 손 뻗음 닿을 거리에서 모든 일상을 공유했다. 이 생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제법 아무렇지 않았다.
해가 질 때즈음 부엌에서 그릇 소리가 나면 저녁 준비를 도우러 갔다. 퇴근하고 돌아오신 아빠와 저녁을 먹고선 소파에 앉아 포근한 이불을 나누어 덮고는 과일바구니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정한 적은 없지만 주말이면 온 가족이 암묵적으로 다 같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일찍이 두 딸을 내외하며 키우신 아빠에게 영화는 우리를 자연스럽게 곁에 두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매개라는 걸 모르지 않기에 나와 동생은 매주 찾아오는 그 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빠는 잔잔하고 감성적인 영화를, 엄마는 SF영화를 좋아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랜덤으로 무서운 영화가 걸리기도 했는데 동생과 나는 꽥꽥 소리를 질러댔고, 그런 우리를 시끄럽다 타박하는 아빠의 목소리에선 장난기가 느껴졌다. 점점 농담이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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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마지막 날이다. 나열해 보니 그리 특별한 것은 없었다. 저게 다였다. 그래서 더 마음이 이상하다.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 왜 그리도 어려웠을까. 아득하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기도 하고. 나는 내가 살면서 해왔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지난 세 달간 더 많은 사랑을 소리 내어 말했다. 더 많이 엄마를 안아주었고, 아빠와 웃으며 대화했다. 동생과 더 친해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나 멀어지고 싶었던 집을, 떨어지고 싶었던 엄마와 90일간 여행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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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이었다. 창문을 열어두니 바람은 시원하고 하늘이 예뻤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엄마가 나를 안고서는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다 했을 때. 이렇게 안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난다고 했을 때 나는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안고 누웠던 시간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성향과 가치관 때문에 다투고 울길 반복하던 우리에게 그런 평화가 있었던가. 침대 머리맡에서 시폰 커튼이 살랑거리는데 그 너머로 개구진 아이들 하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왜 벌써 이렇게나 커버렸을까. 그동안 어디서 무얼 하다 이제야 집에 온 걸까. 다시 이 품에 돌아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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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땐 막막했는데 끝내려니 먹먹하다. 턱이 네모지고 피부가 까무잡잡해도 되고, 지독한 아토피를 다시 앓아도 되니까 한 번 더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 살아보고 싶다. 그땐 조금 덜 싸우고, 덜 힘들게 함께일 수 있으려나. 다시 만나 더 다정하고, 애틋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아빠 딸, 멀리 돌고 돌아, 잘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