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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소곤 Feb 23. 2023

숫자로 아이를 보지 않겠다

 어릴 때 솔이를 안고 영유아검진을 다닐 때마다 생각했었다. '대체 백분위 중에 몇 등인지는 왜 알려줄까? 다른 나라도 아이를 키우면서 이걸 알아 가려나?'


 솔이는 키큰 편이고 몸무게는 평균, 머리둘레도 평균이라 그리 걱정되는 백분위는 없었지만, 그래서 "키가 크고 머리가 작은 모델 스타일 아이입니다"라는 의사 선생님 말에 내심 뿌듯했지만, 이걸 왜 하고 있는지 근원적인 물음은 해소되지 않았었다. 비슷한 개월 수의 아이들의 성장을 수치화시켜 1등부터 100등까지 줄 세워놓는 게 영유아검진의 목적에 맞는 걸까?


 아이의 발달이 느리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병원을 찾아 의사의 견해를 듣고, 검사를 하고, 결과를 아는 과정은 너무나 힘들었었다. 다시는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내 머릿속에서 지웠으면 하는 순간이다. 어느 글에서 아이가 진단받는 과정이 매우 폭력적이라는 요지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 시간은 너무나 폭력적이어서 나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 내 아이가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이게 발달하지 않았고, 그래서 앞으로 어떨 것이다~ 등등. 내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듣는 시간이 견딜 수 없이 잔인했다.


 그리고 검사를 하면, 아이의 현재가 숫자로 나오게 된다. 검사 이후, 우리 아이는 말도 안 되는 숫자를 현재의 자신으로 규정받았고 엄마인 나는 그 숫자에 좌절했다. 그 숫자를 조금이라도 더 올리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더 다른 친구들과 비슷하게 만들고 싶어서 지난 2년 동안 치료에 매진하지 않았었다 생각한다.


 며칠 전, 남편과 아이의 문제 행동에(요즘은 도전 행동이라고 한다지) 대해 이야기 나누다가 남편이 '그렇게 걱정이 되면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을까?'라고 물었다. 나는 '싫다'라고 했다. 다시 우리 아이를 숫자로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어쩌면 아이를 숫자로 보는 건 의사가 아니라 엄마인 나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모든 행동에 숫자가 겹쳐 보여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게 무언지 찾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엄마의 모습.


 그래서 나는 숫자를 그만 보기로 했다. 그저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기로 했다. 숫자로 규정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숫자 안에 담기에는 우리 아이는 너무 크고, 다양하고, 존귀하다.

 

 나는 나약한 부모다. 믿는 만큼 자란다는 말을 그저 믿고 붙들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저 말에 의지해 아이를 키우는 거라면, 그렇게 해보려고 한다. 그럴 수 있는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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