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은 따뜻하고 바람도 멎었다. 오늘은 완연한 봄 날씨다. 3월이면 솔이 입학이라는 빅 이벤트를 앞두고 있어서 긴장이 조금 되긴 하지만, 이른 봄내음에 그저 설렌다.
나는 봄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3월 새 학기는 내게 늘 스트레스였고(예민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다.) 꽃은 그저 꽃이었고, 바람은 그저 바람이었다. 나를 둘러싼 계절의 변화를 돌아보지도 못했고, 그게 새삼스레 예쁘거나 감사하지도 않았다. 그저 당연한 일상이었다.
남편과 나는 2014년 1월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하던 일에 크게 실망해서 마음이 많이 다친 상황이었다. 커리어적으로는 여기가 끝이구나, 싶은. 그때 남편을 만났고 다행히 남편이 옆에서 많은 힘이 되어줘서 그때의 불안함을 잠재울 수 있었다.
남편과 사귀던 2014년 1월과 2월의 나는 봄을 너무나 기다렸다. 봄이 되면 걷기 좋아하는 우리 커플은 시내 곳곳을 산책할 테고, 그와 함께 걸어갈 그 시간들이 너무 설레고 기다려졌다. 그리고 더 이상 꽃은 그냥 꽃이 아니었다. 긴 겨울,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피어낸 꽃들은 충분히 찬미할 만한 대상이었다. 꽃은 귀하고 예뻤으며, 그래서 봄은 따뜻하고, 새롭고, 아름다웠고, 그래서 기다려졌다.
오늘 집안을 환기시키고, 곳곳을 청소하고, 식탁에 앉아 책을 읽으면서 그 해 봄을 떠올렸다.
아쉽지만, 솔이를 낳고 키우면서는 봄을 기다려본 적이 없다. 언제나 계절은 빨리 지나가야만 하는 것이고, 그 끝에 나의 바람은 솔이가 빨리 자라는 것이었다.
'빨리 솔이가 자라서 이 힘듦이 좀 사라졌으면...' 계절이 빨리 지나길 바랄수록 내가 시들고 있는 것을, 나는 늦게 알았던 것 같다.
2023년 봄, 우리에겐 <초등학교 입학 및 적응>이라는 아주 거대한 산이 있지만, 나는 이상하게 이번 봄이 너무나 기다려진다. 솔이가 막연히 잘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은 아니다. 아직도 마음 한 켠으로는, 선생님의 좋지 않은 피드백으로 내가 애를 잡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불안이 가득하다. 그렇지만 적응은 적응이고, 걱정은 걱정이고, 그저 나는 이번 봄을 감사히 맞고 느끼고 싶다.
꽃이 피면 꽃을 보러 가고, 봄바람이 불면 봄바람을 맞으러 가고, 서울의 봄도 보고, 뒷산의 봄도 느낄 작정이다.
새해 계획 중에 하나가 한 달에 한 번씩 가족끼리 수영장 가기, 그리고 또 하나는 셋이 등산 다니기.
너와 함께 하는 등산은 또 얼마나 신나고, (빡이 치겠지만) 즐거울까. 너는 그 안에서 또 얼마나 예쁠까. 너의 예쁨을 계절과 함께 나누고 싶다. 봄과 견주어 너의 지금을 자랑하고 싶다.
우리의 일곱 번째 봄은, 어떨지. 엄마는 벌써 기다려진다. 곱고 따뜻한 봄으로 만들어줄게. 엄마가 꼭 그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