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이는 느리고 예민한 기질의 아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느린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겠다며 언어 치료, 인지 치료 프로그램을 짜고, 숫자 100, 200을 알려주고, 한글을 알려주고 하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것을. 언어와 인지라는 것도 결국에는 신체적인 발달과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을. 그리고 자연에서 뛰어노는 것이 어느 부분에서는 해답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지난 6월의 주말, 어느 날. 남편이 등산을 가자고 했다. 벌써 몇 달 전부터 말하고 있던 상황이라 더는 모른 척하기 힘들었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산으로 향했다. '오늘 같이 등산하면 몇 달은 잠잠하겠지' 하는 마음.
집 근처 산은 해발 360m 정도의 낮은 산이다. 10년 전에 사둔 등산화를 챙겨 신고 별생각 없이 따라나섰다. 물론, 우리의 아들 8세 솔이도 함께다. 처음 산에 간다고 했을 때 솔이는 자기는 오르막길이 싫다며, 너무 힘들 것 같다고 엄살을 피웠지만 막상 산행이 시작되니 다람쥐처럼 잘 올라갔다.
당연히 나는 헉헉대며, 집에 가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다. 한두 고개 올라가다가 힘들다고 하고 주저앉을 참이었다. 그러면 한동안 남편이 등산 가자는 말을 안 할 것 같아서. 내 체력이 누구보다 약한 건 남편이 잘 알고 있으니까 그 정도는 익스큐즈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를 앞서며 오르막길을 뛰어다니는 남편과 아들을 보고 처음엔 웃음이 나왔다.
'뭐야, 이럴 거면 나랑 왜 같이 오재. 그냥 평소처럼 둘이 다니지.'
남편과 솔이는 등산을 자주 했다. 발달이 느린 아이들에게 최고의 감각 통합 치료가 등산이라고 어디선가 듣고 남편에게 말해준 게 솔이 여섯 살 때, 그러니까 2년 전. 그때부터 남편은 솔이를 데리고 매주 산에 갔다. 당시의 나는 집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다. 한창 우울증 약을 먹을 때이기도 했고, 주중에는 솔이를 데리고 센터엘 다니느라 체력이 다해서, 남편이 쉬는 주말이면 침대에 한없이 널브러져 있곤 했었다. 그리고 크게 궁금하지도 않았다. 산에 갔다니까, 솔이가 잘 올라갔다니까, 그런 줄로만 알았지 어떤 산인지, 아이가 어떤 표정을, 어떤 말을 하며 올라갔을지, 남편은 뭐라고 아이를 구슬렸을지, 정상에 올랐을 때 아이 표정은 어땠는지, 지친 아이를 업고 내려올 때 남편의 마음은 어땠는지, 그런 것들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철저히 내 감정에만 매몰되었던 것 같다.
더운 초여름, 등산화 하나에 의지에 투덜대며 남편과 솔이 뒤를 따르는데, 불현듯 2년 전 힘들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나에게는) 힘든 산이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려고 다리를 높게 뻗은 만큼 햄스트링이 당겨 왔다. 세다 세다 포기한 계단이 내 앞에 있었다. 남편과 솔이 남기고 간 발자국을 따라 땅만 보고 걷는데 그 흙에서 2년 전 솔이와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이렇게 힘든 걸, 매주 했어? 당신? 이렇게 힘든데 여섯 살 우리 솔이가 이걸 했다고?
그때부터 나는 눈물을 꾹 참고 묵묵히 올랐다. 남편은 이 산을 오를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산을 오른 솔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엉엉 울고 떼쓰고 싶지 않았을까? 내가 이 산을 올라서 그때의 남편과 솔이에게 사과할 수 있다면 꼭 그렇게 해야만 했다.
나는 기진맥진하며 정상에 올랐다. 남편은 내가 자랑스럽다며 사진도 찍어주었다. 솔이도 엄마 대단하다며 박수를 쳐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산을 올라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날이 우리의 뒤죽박죽, 우당탕탕 첫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