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종차별의 문제, 앵무새 죽이기

온갖 종류의 다양성을 보는 눈을 길러주는 책

by moka

예전에 퓰리처 수상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추천을 받아 사놓고 책장에 고이 모셔두었던 '앵무새 죽이기'를 한 10년 만에 꺼내서 읽었다.

뭔가 제목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달까, 그래서 10년 정도 되는 긴 시간 동안을 책장에 모셔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알고 보니 이 책은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흑인 인종차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비교적 평이한 소설이었다. 어려운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겁을 먹고 있었는데 아이의 시선으로 편견 없이 바라보니 더 쉽게 마음이 열렸다.

60년대에 출간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하는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미국에서는 필독도서로까지 꼽히는 이유는 아마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다루면서도 그 가치를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공황기에 존경받는 변호사 핀치가 백인 여성을 폭행한 혐의를 받는 흑인 남성 로빈슨을 변호하면서, 핀치의 가족과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을 핀치의 어린 딸 스카웃의 시각에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뿐만이 아니라, 어린 딸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올바른 사람으로 자라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집에만 처박혀있는 부 래들리를 관찰하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동조를 할 것이 아니라 그 대상자가 되어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읽어도 참 좋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처럼 다양성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집단주의적인 사회에서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을 따르기보다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도 좀 더 다양성에 대해 열린 모습을 가진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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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밑줄 그은 문장들

"이제부턴 다른 사람은 다 그래도 너만은 그러지 않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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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도 해보지 않고 이기려는 노력조차 포기해버릴 까닭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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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 뭐니 해도 네 아빠는 마음이 착하신 분이시다. 사격술이란 말이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야- 오, 물론 연습을 많이 해야만 완벽한 사수가 될 수 있지만, 사격이란 피아노를 치는 것과는 또 달라. 내 생각엔 말이다, 너희 아빠는 아마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살아 있는 모든 생물에 대한 부당한 재능을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총을 내려놓으신 걸 거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총을 쏘지 않겠다고 결심하신 거야. 그리고 너희 아빠는 오늘 그걸 보여주신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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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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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로 흑인 애인이란다. 난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때로 나는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지- 누군가가 욕설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불린다고 해서 모욕이 되는 건 절대 아니야. 그 사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인가를 보여줄 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아. 그러니까 듀보스 할머니가 뭐라 하시든 실망할 필요 없어. 할머니는 할머니 일만으로도 고통이 많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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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훌륭하신 귀부인이셨어. 할머닌 세상 일에 대해 할머니 자신의 생각이 있으셨지. 내 생각과는 아주 다른 생각이...... 얘야, 네가 그때 이성을 잃지 않았어도 난 할머니께 책을 읽어드리도록 했을 거야. 난 네가 할머니에게 뭔가 배우기를 원했다- 손에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을 갖는 대신에, 참으로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배우길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새로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낼 때 바로 용기가 있는 거다. 승리란 드문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지. 겨우 98파운드의 몸무게로 할머니는 승리하신 거야. 할머니의 생각대로 할머닌 어떤 것, 어떤 사람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돌아가셨으니까. 할머닌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용기 있는 분이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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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빠를 칭찬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라면 아무도 하지 못할 일을 아빠가 하고 계시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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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고통 때문에 우는 거지- 심지어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말이야. 흑인들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는 않은 채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안겨주는 그 고통 때문에 우는 거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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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저 이 세상에는 우리를 대신해 유쾌하지 않은 일을 하도록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너희 아빠가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한 분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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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그럴 수 없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했다. 네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더 그런 일을 보게 될 거야. 무지개 색깔 중 어떤 피부색을 하고 있건 한 인간이 평등하게 대접받을 수 있는 곳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법정이란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원한을 배심원석까지 가지고 가게 마련이지. 네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일상생활에서 매일 백인들이 흑인들을 속이는 걸 보게 될 거다. 하지만 너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 이 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흑인을 속이는 백인은, 그 백인이 누구이건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건 아무리 명문 출신이건 쓰레기 같은 인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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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이 때에는 말이야.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있다면, 왜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할까? 그들이 서로 비슷하다면, 왜 그렇게 서로를 경멸하는 거지? 스카웃, 이제 뭔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왜 부 래들리가 지금까지 내내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말이야, 아저씨는 집 안에 있고 싶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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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디, 난 애티커스가 하는 일을 모두 찬성할 순 없어. 하지만 그는 내 오빠야. 이 문제가 언제면 끝장이 날지 알고 싶을 뿐이야. 이 일로 오빠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 있어.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지만 속은 갈기갈기 찢겨 있어. 나는 보았지 언젠가- 모디, 그에게서 달리 무엇을 원하는 거야? 도대체 무얼 말이야?"

"알렉산드라, 누가 무엇을 원한다는 거야?"
모디 아줌마가 물으셨다.

"이 읍내 사람 말이지. 그들은 자신들이 두려워서 하지 못하는 걸 그에게 완벽하게 떠맡기고 있는 거야- 동전 몇 푼 정도 잃겠지. 그들은 자신들이 두려워하는 일을 그에게 떠맡겨 건강을 해치게 하고 있어. 그들은-"

"조용히 해. 저 사람들에게 들릴지도 몰라. 알렉산드라, 이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 메이콤 사람들이 알건 모르건 우리는 한 인간에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고 말이야. 그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거야. 그럼 아주 간단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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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를 부여해주고, 어느 누구에게도 특권을 주지 않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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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오빠가 뭔가를 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실제로는 충분한 시간이 지날 때까지 얼마 동안 그것을 보관해두고 있다는 거다. 그러고 나서야 오빠는 그것에 대해 제대로 생각할 수 있고 정리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것을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오빠는 다시 옛날처럼 될 거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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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 이 문제를 조용히 무마시킨다면 내가 그 애를 기르려고 해온 방식을 간단하게 부정하는 것이 돼. 때론 부모로서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그 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내가 전부네. 젬은 다른 누군가를 쳐다보기 전에 나를 먼저 쳐다본다네. 나도 그 애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도록 살려고 노력해왔고...... 이런 식으로 뭔가를 묵인한다면, 솔직히 말해 난 그 애의 눈을 대할 수가 없지. 그리고 그렇게 대하지 못하는 날, 나는 그 애를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고. 그 애와 스카웃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그 애들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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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정말 옳았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참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 적이 있다. 래들리 아저씨네 집 현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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