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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산업디자인 호황, 기회를 잡는 디자이너의 자세

04. 이영우 : 팔리는 구조를 만드는 디자이너

by 디자이너 제인

산업디자인 대멸종의 시대, 이영우 디자이너는 단순히 외형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제조부터 비즈니스까지 전체를 설계하는 디자이너로 살아남았다.


지난 1편에서는 디자인이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기획과 연결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그의 생존 전략을 소개했다.


2편에서는 디자인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지금, 디자이너가 어떻게 ‘팔리는 구조’를 설계하며 저가 경쟁을 넘어서는지 그 방식에 대해 들어본다.




<지난 1편 보러가기 >

https://brunch.co.kr/@designerjane/109





2편 : 다가올 산업디자인 호황, 기회를 잡는 디자이너의 자세.




Q. 산업디자인은 단순히 디자인뿐만 아니라 생산자의 경계에 있는 것 같아요. 산업디자인은 어떤 가치를 두고 일해야 할까요?


‘번역과 조율’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디자이너를 연결자(Bridge)라고 생각하는데요, 생산자의 언어(제조), 디자이너의 언어(형태/의도), 소비자의 언어(사용/가치) 이 세 언어를 이해하고 번역해서 제대로 전달하는 역할이 디자이너죠. 이 과정에 숙련이 필요하고, 때로는 각 이해관계자 간의 섬세한 조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둘째는 효율성이에요. 산업디자인은 물리적인 재료와 에너지를 써서 제품을 만들어 환경 부담을 동반합니다. 과거에는 심미적 완성도가 우선이었다면, 지금은 재료와 에너지, 공법을 최소화하면서도 기능과 품질을 저해하지 않는 로우 코스트·로우 머티리얼·로우 프로세스를 고민하고 있어요.


저는 이 부분에서 비용 문제도 함께 고려하죠. 생산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하면 싫어할 클라이언트는 없거든요. 대량 생산 기업이 아니라면 생산 코스트에 민감하기 때문이에요. 물론 사용자 경험을 해치지 않는 선이어야 합니다. 불필요한 공정을 줄여 가격을 낮추되, 만족할만한 상품성을 만드는 밸런스를 만드는 것이요.

또 ‘프리미엄’이라는 명목으로 과한 가공과 환상을 덧씌우는 관행에도 질문해요. 저는 타깃 프라이스 안에서 상품성을 만드는 걸 중요하게 보고, 그 밸런스를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디자이너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스스로 이 무게를 짊어져야지만 저의 가치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VR과 AI처럼 물성이 없는 디자인이 대세인 요즘, 많은 디자이너들이 UX/UI나 디지털 기반 디자인으로 전향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산업디자이너로서 일하는 것이 어떠신가요?


닷컴 버블 이후 디지털 플랫폼/프로덕트에서 유니콘 기업이 쏟아지고 수많은 공룡기업이 탄생했어요. 삼성전자 제품디자이너가 UI/UX 부서로 이관된다는 소문이 돌던 때도 있었고, 디지털 프로덕트 기반 디자인기업들이 엄청난 매출을 일구는 모습도 "산업 디자이너"로서 모두 지켜봤죠 (웃음)


반면 산업디자인처럼 제조 기반의 디자인은 산업에서 여전히 '디자인 = 데코레이션'이라는 인식이 강해 아직 어려운 면이 많아요. 그래서 체감 난이도도 높은 것 같고요.


하지만 시장은 늘 사이클이 있어요.

최근에는 플랫폼과 디지털 기반 산업의 고성장이 한풀 꺾인 느낌이 있고, 그 사이 제조 기반 기업들이 매출 지표를 앞세워 투자를 받아 빠르게 성장하는 사례가 늘었습니다. 비욘드허니컴도 AI 기술력을 로봇으로 구현한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세가 아주 좋고요.


또 앞으로 로봇, 스마트 팩토리, 매장 자동화처럼 사물이 인간을 보조하는 장면이 일상화되고, 인구 감소와 노동 구조 변화와 맞물려 ‘물성+AI’ 수요가 분명히 커질 거예요. 배달 로봇, 커피 로봇처럼 지능형 오브젝트가 공간에 새롭게 존재하는 흐름 속에서, 산업디자인의 역할은 이 침체기를 넘어 더 커질 가능성이 높아질 거라고 예상합니다.


67a5c6cb0d768c42c50188eb_PF_6-1600.jpg 이영우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IoT커피머신 AWARE




Q. 산업 디자인의 핑크빛 미래가 보이는 것 같네요.

이 인터뷰를 보고 ‘산업디자인 해야겠다’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진입장벽이 높아 보이기도 합니다. 주니어에게 이야기해 줄 실전 꿀팁이 있을까요?


진입장벽이 높은 건 맞아요. 하지만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제가 권하는 첫 길은 직장에서 월급을 받으며 배우는 루트예요. 제조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에이전시든 상관없고, 일단 들어가서 실무를 몸으로 직접 겪어보는 게 제일 빨라요. 대학이나 사교육에서 절대 배울 수 없는 실무 역량들이 많거든요.


두 번째는 지원사업과 교육 콘텐츠 활용이에요. 정부지원 사업이나 좋은 강의 콘텐츠들이 찾아보면 정말 많아요. 잘 활용하면 좋은 아이디어를 제품화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거나 디자인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어요. 흔하진 않지만 졸업 작품을 제품화에 성공해서 브랜드를 만들어낸 케이스도 봤어요.


세 번째는 현장을 직접 두드리는 것인데요, 만들어보고 싶은 제품이 있다면 다양한 경로로 제조업체를 찾아 현장 전문가에게 도움을 구하고 자신의 디자인을 제품화해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조엔 변수가 많기 때문에 경험이 적다면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할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하시길 권합니다.


더불어 한 가지 더 요구하고 싶은 건 요즘, 문제의 인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한 친구들을 종종 목격해요. 너무 많은 외부 정보 때문인 것 같은데요, 유튜브나 타인의 이야기만 듣고 자신의 커리어를 설정하려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과거의 경로들을 유사하게 따라갈 가능성이 있어서 현재와는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요즘은 고효율의 시대니까 자기 자신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분할해서 회사를 다니면서 내 것을 만들어 볼 수도 있고, 다양한 시도들을 끊임없이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실패는 디폴트라고 생각하고 매번 시도해 보는 거죠. 내 인생이 망가지지 않을 정도의 작은 실패들은 성장에 중요한 밑거름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스크린샷 2025-08-21 오후 6.55.09.png 이영우 디자이너 (DDP 10주년 기념 아카이브 오브젝트 프로젝트)




Q. 영우님처럼 외주가 아닌 자신의 제품을 만드는 일은, 디자이너들의 꿈이잖아요. 언제쯤이면 시작해도 좋다고 보세요?


기준은 하나예요. '내 창작물로 돈을 벌 거냐, 아니냐.'요.

아니오라면 지금 당장 시작하세요. 노트북이나 휴대폰만 있어도 전 세계에 공개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하지만 돈을 벌고 싶다면 수익화할 수 있는 제품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해요. 자체 상품 수익화는 고차방정식이에요. 어려운 일이고 못 풀 수도 있어요. 그래서 시장성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뿐 만 아니라 시장규모, 소비자, 생산성, 유통, 재고 방안 등 수익화를 위한 필수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하고 제품화하려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Q. 솔직히 산업디자인, 돈이 될까요?


단순한 디자인 외주로는 어렵다고 봐요.

디자인을 ‘목적’으로 돈을 버는 시대는 점점 끝나가고 있어요. 단순 외주 디자인 작업으로 수익을 내는 건 점점 저물 거고요. 대신, 디자인을 ‘수단’으로 활용해 제품·서비스·브랜드를 만드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 디자인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거든요.




Q. 클라이언트가 디자인을 ‘투자’라고 생각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디자인을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것’으로 제안하면 대부분 비용으로 인식해요. 클라이언트의 취향으로 결정되면서 그런 인식이 강하게 작용합니다.


하지만 디자인이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구체적인 성과 경로를 제시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누구를 위한 제품인지 존재가치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타깃 소비자가 구매하기 용이한 판매가를 설정할 수 있는 디자인을 창작하고, 생산성과 운송이 용이하도록 제품을 개발하면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근거가 풍부해집니다.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 디자인을 제품 개발의 일부가 아니라 비즈니스 전략의 동반자로 여기고 투자 대상으로 인식이 바뀔 거라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나요?


이게 핵심이에요. 어떤 서비스를 개발한다고 했을 때 단순히 로고만 바꾸는 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닐 수도 있거든요. 진짜 문제는 메뉴, 서비스, 공간, 운영 시스템 같은 구조적인 부분에 있을 때가 많아요.


그럴 때는 디자이너도 경영자의 관점에서 전체 과정에서 문제점 파악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면서 그에 걸맞은 디자인을 도출하고 결정권자에게 원활하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Q. 디자인은 취향의 영역이라 감정 소모가 많다는 말도 있어요.


그런 경우가 여전히 많은 거 같아요. 특히 그래픽디자인 분야는 더욱 ‘취향 싸움’으로 흘러가기 쉬운 거 같아요.

“나는 이게 예쁜데”, “그건 별로야” 같은 식으로 본인도 전문적인 감각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명확한 비즈니스 목표를 서로가 공유하고 나면, 디자인 결정이 그 목표에 맞춰지게 되어서 “좋다/싫다”가 아니라 “적합/부적합”의 대화로 전환돼요. 그럼 감정 소모 없이 목적에 부합하는 선택이 더 수월하게 이뤄지게 됩니다.



스크린샷 2025-08-21 오후 6.55.24.png



Q. 이건 단순히 디자인이 아니라 BX 설계에 가까운 이야기처럼 들리네요.


네. BX 설계에 가까울 수도 있고 비즈니스 컨설팅과 유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디자인이 무조건 좋아야 해.’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중요도에 따라 때로는 디자인의 힘을 빼기도 하고, 어떨 땐 디자인을 강조하기도 하면서 브랜드와 비즈니스가 돋보일 수 있고 힘 조절을 해줘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정말 중요한 부분이에요.




Q. 그러면, 지금의 대한민국의 디자이너들은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브랜드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정확한 정답을 알 수 없고 예측불가능한 시대예요. 대기업에 들어가고, 몇 년 일하고, 승진하고… 그런 전형적인 경로가 깨지고 있어요. 그리고 기술의 발전으로 제작과 창작이 점점 쉬워지고 있어요. 제작과 창작의 난이도가 낮아지니 단가도 낮아지고 필요 인력도 적어질 수밖에 업죠.


반대로 제작과 창작이 쉬워지기 때문에 누구나 브랜드를 만들 수 있어요. 반짝이는 창의성으로 얼마든지 브랜드를 만들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과거엔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어렵지만 가능한 수준으로 허들이 낮아진 거죠. 디자인은 비즈니스의 한 조각일 뿐이고, 그걸 기반으로 더 넓은 영역까지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Q. '디자이너라는 틀 안에서 벗어나라'는 이야기로 들리네요.


맞아요. 요즘 잘되는 디자이너들을 보면 단순한 ‘디자이너’의 역할을 넘어서 있어요.

누군가는 브랜드 오너가 되고, 누군가는 아예 경영자가 돼 있죠. 예를 들어, 김봉진 대표나 조수용 대표도 디자이너 출신이지만, 결국 ‘브랜드의 주체’로서 성장한 거잖아요. 디자이너가 자기가 만든 가치를 직접 소유할 수 있어야 비용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반대로, 남이 내 가치를 정하게 두면 결국 ‘저비용 디자이너’로 머무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지금 해야 할 건 디자인 외의 역량들을 덧붙여서 진화하는 것이에요.




Q. 시니어 디자이너로서, 산업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디자이너"라는 틀 안에 자신을 가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나만의 경로를 스스로 설계하는 것입니다.


저는 디자이너가 결국 스스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디자인은 비즈니스의 한 파트일 뿐이고,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역할과 위치를 가질지를 스스로 정해야 하죠. 그렇게 하려면 디자인 역량만으로는 부족해요. 기획, 운영, 마케팅, 심지어 재무 같은 영역까지도 폭넓게 배우고 경험해야 합니다.


만약 지금 그런 경험이 없다면, 그걸 채워줄 수 있는 조직에 들어가 보는 것도 전략이에요. 반드시 창업이나 독립이 정답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건,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을 먼저 정의하고, 그 목적에 맞게 회사를 활용하거나 외부 리소스를 조합할 수 있는 유연한 태도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색깔, 생각, 콘텐츠,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하나씩 쌓아가며 점점 더 확장해 가는 거죠. 저는 지금 이 시대에 디자이너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가 바로 이런 방식의 ‘진화’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제 이야기가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에요. 지금 우리는 누구도 완벽한 답을 알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요. 제 경험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참고점으로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디자인'을 너무 장식적인 요소로만 바라보았는지도 모른다.


디자인이 더 이상 데코레이션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구조와 전략, 태도를 바꾸는 일에 수단으로 사용된다면 산업 디자인의 미래는 물론, 모든 디자인 카테고리의 미래가 핑크빛이지 않을까?






스토리폼 이영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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