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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Jul 27. 2024

나만 아는 목소리

22년 어느 날의 기록 3

현이는 가족들 외엔 타인과 대화는 물론 인사도 하지 못한다. 어린이집에선 2년의 적응기간 끝에 요즘은 재잘재잘 대화를 한다고 하는데 글쎄, 앞으로 살아갈 이 사회는 적응 기간을 2년 씩이나 주면서 아이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건네온 인사에 기분 좋게 답하지 못하는 것이, 아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이유도 없이 주변 눈치를 보며 부끄러움을 느끼고 잔뜩 움츠러드는 것이 단체 생활에서 얼마나 스스로에게 마이너스 요소가 되는지 나는 너무 잘 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선생님이 국어책 낭독을 시켰는데 그 순간 몸이 뻣뻣해지고 머리가 멍해져 책을 읽지 못하자 옆자리의 짝이 작은 소리로 한 문장씩 불러주고 나는 개미만한 목소리로 겨우 따라서 더듬거렸다.

선생님은 나에게 좋은 짝꿍을 만났다며 독서를 많이 하라고 했다. 세상에 나는 한글을 4살에 떼고 하루종일 책만 수십권을 읽는 애였는데. 어릴 때부터 책만큼은 돈 아끼지 않고 사다 날라준 엄마가 그 광경을 봤다면 심정이 어땠을까.


분명한건 이런 경험은 유쾌하지 않고 슬픈 오해를 낳으며 반복되면 나서지 못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라는 틀에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왜그랬을까, 그 날 그 국어책을 누구보다 정확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읽을 수 있는 아이였는데 대체 뭐가 부끄러워서.


내 학창시절엔 이런 답답한 에피소드가 매년 매 분기마다 있다. 세상은 더 급하게 변했는데 이런 기질을 그대로 받아 나온 내 아이에게 난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할까.


집 안에서만 도드라지는 아이의 이 예쁜 목소리를 아무도 모르고 오직 나만 아는것은 그저 엄마만 알면 되는, 엄마가 온 우주인 영유아시기가 끝이 나고 있는 이 시점에선 많은 불안과 걱정을 끌어 당긴다.


나는 네가 편했으면 좋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편하게 말하고 입 안에서 멤도는 안녕,네,아니요를 편하게 꺼냈으면 좋겠다.

너는 부디 그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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