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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Jul 31. 2024

사별 앞 육아의 명암


2021년 4월 13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에게 할머니는 큰 산이자 평생의 버팀목이며 세상 가장 존경하고 미안한 '우리 엄마'다.

예고 없는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죽음에 엄마는 크게 무너졌다.

소식을 전하며 울부짖는 엄마의 전화를 받자마자 차키를 집어 들고 뛰쳐나가는 대신 기저귀가방에 이유식을 챙겨 넣고 방 안에서 곤히 잠든 둘째를 둘러멘 뒤에야 헐레벌떡 밖으로 나서는 내 모습이 천지의 순리를 거스른 듯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드라마에서 보면 가까운 이의 사고 소식에 주인공은 하던 일, 가던 길을 그 즉시 멈추고 뛰쳐나가거나 핸들의 방향을 꺾어 중앙선을 침범해 가면서까지 내달리곤 하던데, 나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서기까지 5분은 족히 걸린 것 같았다.


조수석에 탄 엄마가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리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첫째의 어린이집 하원을 형님에게 부탁하고 어린이집에도 상황 설명을 하느라 거듭 전화 통화를 해야 했다.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장례원에서는 안내전광판에 올라간 할머니 사진을 보고 크게 울부짖는 엄마에게 내가 지금 트렁크에서 유모차를 꺼내고 카시트에서 아이를 꺼내고 기저귀가방까지 꺼내서 들어가야 하니 잠시만 울고 서있으라고 할 수 없었기에 동생에게 엄마를 부축해 먼저 들어가라고 해야 했다.


엄마가 내내 크게 슬퍼하는 동안 나는 급히 나오느라 미처 데우지 못한 이유식을 들고 발을 동동 굴렀고, 유모차에서 탈출하려고 발버둥 치는 둘째를 안아 달래며 이쪽저쪽 배회를 하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있을 입관 때는 내가 엄마 옆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젠 내 품마저 벗어나려고 용써대는 11개월짜리 아이는 내게 이만 집에 가야 된다는 신호를 마구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입관 때도 엄마를 동생들에게 부탁해야 했다.


저녁에 치러진 장례식땐 할머니의 죽음이 비로소 와닿았던 건지 엄마는 호흡곤란이 왔고 거의 쓰러질 지경이 되었는데 남편에겐 큰아이가, 내겐 작은아이가 껌딱지처럼 매달려서 엄마를 붙잡으러 가는 발걸음을 막아댔다.


그렇게 그날의 장례식장엔 쓰러지는 엄마를 가까이에서 부축하고 다독이고 같이 울어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 뒤에 멀찍이 서서 질려버린 얼굴로 아이를 안은채 엄마를 바라만 봐야 했던 실은 누구보다 가까이서 엄마를 붙잡고 있어야 했던 큰딸인 내가 있었다.


내게도 분명 있었을 할머니의 사망에 대한 슬픔은 허공의 뿌연 연기처럼 그 실체를 들여다 볼 새도 없이 흩어보내고

아주 몹시 위태로워보이는 엄마의 회복이 내겐 무거운 과제로 남겨졌다.


하지만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는 것이 내게 가하는 제한은 엄마에게 뻗치려는 손길뿐만이 아니었다.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복잡한 슬픔을 두고 어떤 말을 어떻게 신중히 건넬지 생각하는 것도, 엄마가 느끼는 죄책감이 어느 정도인지 이해해 보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생각이 시작되려는 순간순간마다 아이의 울음이, 투정이, 어질러진 장난감들과 쏟아진 음식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저 옆에 가까이 있어주는 것조차 아이의 상황이 허락해 주는 한계 내에서만 가능해졌다.

이렇게 나는 생애 가장 큰 고통을 직면한 엄마에게서 계속 한발 늦게, 한 걸음 멀찍이 서서 무력하기 짝이 없이 도움 아닌 도움을 주는 시늉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종종 거북함이 동반된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곤 했다.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고 있고 하필 그 아이들은 아직 나의 손길이 절실한 영유아들인데 어떡하겠나,

엄마와 한 몸처럼 옆에 있을 순 없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그렇게 정리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엄마에게 위로의 손길과 관심을 주기로 하면 되는거였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그렇게 정리하면 나를 짓이기고 있는 부자연스러움으로부터 해방될 순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별 앞에서 그렇게 간단히 정리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그런 정리를 거부했다.

그간 내가 온 감각으로 느껴온 부자연스러움이 결국 나의 상황 안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사별이라는 아픔 앞에선 이 자연스러움이 참 잔인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의 회복이 미해결과제로 남게 되어 영유아를 돌보는  일상을 부자연스러움으로 계속 치게 두기로 했다.

계속 불편할 것이고 마음 한 켠의 레이더는 계속 엄마를 주시하느라 다른 무언가를 놓치게 되기도 할테지.

그러나 나는 어쩌면 이것이 사별에 대한 진짜 예의일거라고 생각했다.


생각의 타래를 짧게 감아 쉽게 풀어내어 금세 정리하는 것은

최소한 사별의 아픔 앞에서는 내보이면 안될 잔인한 현실주의처럼 느껴졌기에

나는 그렇게 한동안 기약 없는 부자연스러움과 불편함의 엉킨 타래를 손에 쥐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회복의 길을 걷게 될 엄마의 호흡에 맞추어  풀어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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