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함에 잡아먹힐 것 같을 때 꺼내보는 응급처치용 기억 한 조각.
얼마 전, 몇 년 만에 아이 없이 혼자 가본 카페.
사람이 몇 없다가 이내 다 빠져서 2층 널찍한 공간에 오롯이 혼자 앉아 조용히 머물 수 있었다.
언제 또 올 소중한 개인 시간인지 모르니 뭔가를 달성해 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앉아 있었고 커피를 천천히 마셨고 이따금 눈을 들어 주변을 쳐다봤다.
'여기는 커피가 좀 연하네.' 속으로 커피 맛을 평가도 해봤다.
카톡을 열어 지난 달 오래된 친구와 웃으며 나눴던 대화들을 다시 읽었다.
나의 솔직함만큼 내게 솔직한 친구. 서로에게 대나무숲이자 현명한 조언자가 되어주는 그런 소중한 친구가 내게 있다는 행복 요소 하나를 마음 앞자리에 두었다.
집을 나서기 전 남편과 했던 짧은 대화도 떠올려봤다. 아이들때문에 힘든건 맞지만 꼭 꼴보기싫다는 말을 할 필요까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단적인 표현에 대해 반성하면서 그런 표현에도 별 말 없이 날 카페로 내쫓아준(?) 남편의 무던함에 심심한 고마움도 들었다.
혼자 놓여지니 할 수 있었다. 생각도, 돌아봄도, 반성도, 고마움을 알게 되는 것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꼭 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내가 점점 형편없는 인간이 되어가느라 뒤늦게 후회할 역사를 만드는게 아니라
혼자 생각하고 돌아보고 더 나은 방향을 깨달을 기회가 좀처럼 없는거라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계속 좋은 사람이 되려고 부단히 발버둥 쳐보라고.
그 날 그 시간이 내게 준 일깨움의 선물이다.
종일 귀를 떠나지 않는 아이들의 투정 소리, 단 몇 분도 앉아있을 수 없이 계속 쌓이는 일거리들,
대화 상대의 부재라는 생활 환경이 내 생각을 막고 사고의 균형을 무너뜨려서
무거운 울적함을 몰고 올 때 이 기억 한 조각을 삼켜 그 때 그 조용한 카페에 홀로 앉아 했던
생각 걸음을 따라가본다.
구제불능이 아닌, 얼마든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나를 다독여보면 홀대를 해오던 '이미 가진 것들'도 보이고 놓쳤던 주변의 소중한 순간들도 다시 보이고 앞으로 해야 할,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들도 선명해진다.
실재하는 것들을 눈 앞에 선명히 가져다 놓을수록 추상적 감정에 해당하는 울적함은 점점 실체 없이 흐려질것이므로 오늘의 울적함에 나는 이 처방을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