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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Apr 08. 2024

고급 자동차를 포기하면 할 수 있는게 많아져요

오래 이어온 남편 고향친구 모임이 있다. 올해는 벚꽃 축제를 즐길 겸 봄에 만났다. 1박 2일로 글램핑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 모임날엔 봄추위로 벚꽃이 피지 않았다. 우리는 아쉬운 데로 글램핑장에서 하룻밤의 추억을 쌓고 아직도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친구 부모님 댁으로 우르르 몰려 갔다. 세월의 무상함속에서 마을 어른들께 인사를 드린 후,  밭에서 바로 뽑아온 쪽파를 친구 부모님댁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함께 다듬었다. 다듬은 쪽파는 각각 나누어 집으로 가져와서 각자 쪽파로 만든 음식을 서로 공유하며 여행의 여운을 남겼다.


마을 투어도 했다. “이곳은 누가 살던 집었는데 누가 이사를 왔다더라. 이 집터는 누구가 살던 곳이다. 이 땅은 누구의 것이다.”라며. 남편의 유년시절이 있는 마을이 왠지 내 고향처럼 느껴져 정겨웠다. 남편 가족은 오래전에 이 마을을 떠나 와서 선산에 성묘를 왔다간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남편과 나는 벚꽃이 피지 않아 차선책으로 들른 고향 투어가 더 좋았다.


그동안 제각각 살다 헤쳐 모인 우리들의 이야기는 뻔하다. 여자들끼리 있을 땐 아이들 이야기, 시댁 이야기, 남편들의 허물 이야기를 즐긴다. 서로 모르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순 없지 않은가. 그 중 남편들 헐뜯기가 최고다. 그런데 이 남자들 은밀한 구석까지도 무척 비슷하다. 참 신기한일이다. 같은 물을 먹고 자라서인걸까? 그러니 더 재미있을수밖에.


반면, 남자들의 화제는 좀 다른 것 같다. 농사 지을 땅을 샀다느니 자동차를 새로 구입한 이야기 등 굵직하고 단순한 이야기를 한다. 물론 일부로 꺼낸 이야기는 아니고 새차를 몰고 왔으니 이어지는 것이고 서로 정보 공유를 위해서인듯 하다.


나이가 50대로 접어드니 모두 삶이든 경제든 여유가 생긴것 같다. 서로가 삶의 과정에서 평지풍파를 겪고 이루어낸 안정을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삶이 뭐 그리 풍족하고 대단할 것이 있겠냐 마는,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자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우리들이 사는 지금의 모습은 이렇다.


남편의 친구 K는 H 자동차 연구원으로 대기업에 30년째 근무 중이며 연봉이 2억이란다. 그리고 이 마을 지주로 마을의 많은 부분이 K부모의 땅이다. 자동차는 적당한 가격의 RV차량을 소유했다. 단 한 번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하고 소박한 K다.


H는 우리 중 가장 일찍 가정을 꾸린 자수성가 한 농기계 설계사다. 옥천에 살면서 취미생활로 땅을 늘리며 농작물을 키우고 있다. 작년에 제네시스를 구입했고 농기계 몇 대가 있다 한다. 제네시스는 모두 현금으로 샀단다. 남편이 회사에서 좌천된것을 안쓰럽게 생각해서 아내가 큰맘먹고 하사한 선물이란다.


M은 전기엔지니어로 대전에 살고 있다. 아직 부모님이 고향에 살고 계신 유일한 집이다. 건재한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가장 다복해 보인다. 얼마 전 제네시스를 구입했다. 역시 전액 현금으로.


J는 첫 번째 결혼을 실패하고 지금의 부인과 재혼했다. 대기업 회사차량 운전기사라고 한다. 그런데 반전은 재혼한 부인이 건물주란다. 자동차도 부인 소유로 에쿠스다.


그렇다면 우린? 남편은 대기업 광고대행사를 다니 다가 40대 중반에 일찌감치 퇴사를 해서 지금은 서울 버스 기사로 전업했다. 물려받거나 받을 재산도 없다. 자동차는 생계형으로 구입한 스파크(경차) 2대를 소유하고 있다. 최근까지 우리 집 경제형편이 가장 어려운 걸로 생각된다. 아직 아이들의 해외 유학을 서포트 해야 하므로.


참고로 여자들은 H자동차에 다니는 K의 와이프를 제외하고 모두 일을 하고 있다. H의 아내는 무슨 물류회사의 경력직 반장으로 3시간 반짜리 야간근무를 하고 있고, M의 와이프는 쇼핑몰에서 의류 판매원으로 줄곧 일을 하다가 몇 년 전부터 약 도매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J의 아내는 군무원으로 군기관 구내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한다. 그럼 나는? 아시다시피 몇년 전 노총을 퇴사하고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근무중이다.


이렇듯 최근 모임에서의 남자들의 화제는 자동차 이야기로 귀결된다. 우리 집 입장으로선 할 이야기가 없다. 남편 말에 의하면 제네시스는 스파크 5대 값이라 했다. 우리 집 경차 2대를 합해도 제네시스 절반 가격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형편이니 자꾸 자동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남편이 불편해 할까봐 서 내가 나선다.


“우리는 스파크만 2대예요.ㅎㅎㅎ”

유머랍시고 이렇게 받아친다.


나는 우리의 직업과 가난에 대해 부끄러움 따위는 없다. 그런 찌질한 감정은 이미 극복했고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 그럼에도 2년째 자동차 이야기가 오가자 내 마음이 이상했다. 스파크를 끌고 다니는 우리를 가엾게 생각할지 모른다는 자격지심이 발동했다. 이 사람들은 우리 집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니 말이다. 말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궨스레 우리의 건강한 삶의 모습을, 나름 워라밸을 즐기는, 충분히 만족하는 당당함을 표현해야 할 것 같았다. 유치하지만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캠핑장 숙소에서 여자들끼리 있을 때 우리 집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사는 자만추! 삶의 스타일을 추종한다고. 버는 족족 현재를 위해 쓰고 있다고. 이 와중에 그동안 아이들의 유럽살이를 지원하고 있었으며 현재 삶의 만족을위해 집 인테리어에 과감하게 투자를 했다고. 그래서 아직도 스파크 2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그러고 난후 부끄러움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지만 다소 후련했다.


하지만 이런 나도(현재를 중요시하는) 가끔은 우리 형편에 아이들의 해외 학업을 서포트해 주는 것이 미친 짓은 아닌지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하는. 그러나 제네시스 한대가 우리 집 자동차 스파크의 5배라는 것을 인지하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우리도 친구들처럼 자동차 한대를 구입했다고 가볍게 생각하면 되리라. 어차피 우린 돈을 벌것이고, 그 돈으로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보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남는 장사 아니겠는가. 친구 모임이 남편과 내 부담감을 확 줄여주어서 고마웠다.


그깟 유학 별거 아니구만. 고급 자동차 한대만 포기하면 된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come-back-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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