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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Feb 29. 2024

우리 가족이 생일을 기억하는 법

아니다.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아니다

우리 가족이 생일을 기억하는 법


“찬이 생일 축하 한다.”

출근을 하고 얼마쯤 지나고 나니 가족 톡방에 알림이 울렸다. 재밌는 이모티콘과 남편이 보냈다. 아차! 싶었다. 남편은 어제 동료들과 저녁 늦게까지 술을 자시고 오후 출근을 위해 아직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을 터이다. 그럼에도 아들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오늘이 첫째의 생일이었던 것. 나도 서둘러 만회를 해본다.

“아빠가 엄마보다 낫네. 울 장남 생축~~”

나는 가족들의 생일을 잘 챙기지 못한다. 몇 주 전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생각했던 것도 그날이 되면 까마득하게 잊고 마는.

미역국 한 그릇 끓이는 것이 뭐가 그리 힘드냐 말할 수도 있겠으나 몸이 안 따라줄 때는 정말 힘든 일이다. 가족행사의 주최자가 되어야 할 내가 이모양이니 가족 생일상을 거하게 차려 먹은 적이 손가락을 꼽는다. 그렇다고 외식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도 아니다. 외식을 하려면 식성이 맞아야 하는데, 우리 가족은 식성도 가지 각색이다. 외식비 부담 걱정은 덤이고.

물론, 내 생일도 그냥 넘어간다. 서운한 건 없다. 오히려 좋다. 내 생일 하루를 포기함으로써 나는 몇 배의 편안함을 얻었다. 가족들도 모두 은근히 편해하는 눈치다. 처음엔 서운한 가족원도 있었겠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겪어 본 우리 모두는 무심하게 넘어간다. 사람은 오래 보아야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다고 했나? 맞다. 우리는 가족으로서, 서로가 미운 모습 고운 모습 허물없이 다 알고 있기에 그 허물 속에 쌓인 애정을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한 번쯤 실수를 해도, 반창고를 더덕더덕 붙일 필요 없이 넘어갈 수 있다. 서로에게 잘해 주고 싶어 하는 마음만큼은 서로서로 충분히 잘 알고 있을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생일을 기억하는 이 느슨한 방법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끔 양심이 찔 리 때가 있다. 내가 자상한 엄마였다면 우리도 지금 서로가 서로에게 기념일을 챙기고 더 다정한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하는? 하지만 sns에서 보는 아름다운 생일상을 볼 때마다 나는 점점 작아진다. 나는 내 하루하루의 일을 소화하고 집중하고 살기도 벅찬 삶인데 그들은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밥상을 차라고 아름다운 일상을 그려나갈 수 있을까.

오……. 아니다.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아니다. 나는 지금의 내가 사는 방식이 좋다. 어쩌면, 아마도, 이런 나의 성향이 우리 가족의 삶을 훨씬 가볍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댁 기준으로 1년에 가족 생일 최소 5번, 명절 2번, 제사 1번, 각종 결혼과 집안 행사들, 친정 기준으로 나는 막내니까 다섯 가정의 친정 언니와 형부들, 나와 관계된, 남편과 관계된 친구나 지인들 ……. 하아……. 생각만 해도 복잡다단하다. 우리 가족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내 태도는 알고 보니 나와 관계된 수많은 사람들과 연관된 일이었다. 나는 아마도 이런 관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모든 기념일에 무의식적으로 ‘무관심’의 코드 전환을 하며 살아왔던 듯싶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은 충분히 예를 갖추고 지키니 너무 앞선 걱정은 하지 마시길. 

우리의 이 방식은 매년 돌아오는 기념일을 꼭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났다는 말이니까. 굳이 생일 때문에 의무적으로 집합하는 일은 없다는 뜻이고 각자 개인 스케줄을 더 존중하는 편이다. 운이 좋게 생일을 잘 기억하고 체력과 여건이 된다면, 또 서로의 시간이 맞는다면, 미역국과 조촐한 밥상을 성의껏 차려서 함께 먹고 케이크에 촛불도 켠다.


우연히 지나간 SNS를 보니,

“우리 집 장남 생축~ 내 선물은 케이크+소고기 미역국+육회, 퇴근 후 후다닥 장 봐서 후다닥 미역국을 끓여 저녁식사를 했다. 아빠는 현금 100,000원 카카오페이 송금, 군에 있는 동생은 형님이 선물로 70만 원짜리 무선헤드셋을 원하는 바람에 그냥 무시했다고.”

라고 적혀있다. 지난해엔 내가 첫째의 생일을 기억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깜박깜박하는 나는 생일 즈음이 되면 아들들 생일을 미리 챙긴다. 남편과 나는 암묵적으로 서로의 생일을 퉁친다. 평소 계획하여 서로 필요한 물건이나 공통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는 방식을 택한다. 올해도 해외에 있는 첫째에게 미리 생축 지원금 20만 원을 보냈다. 그러곤 생일 당일날은 기억도 못했던 것.

이런 형편이다 보니 내 생일을 아는 사람도 가족 말고는 아무도 없게 된 지경이다. 젊은 날엔 내 친구도 내 생일을 기억하고 연락해 왔고 언니들도 막내 생일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보내왔고 간혹 sns에 뜬 내 생일을 본 지인이 케이크를 보내기도 했다.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그 즉시 sns 생일 날짜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물론 이 황송함을 얼른 돼 갚아주었다. 지인들과의 관계는 특별한 기념일을 챙기는 것보다 평소에 만나 밥 한 끼 사주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듯 나는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다. 내 여건만 된다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편한 사람이다. 만남에 의미 부여하는 것을 많이 부담스러워한다. 

이모양인 내가 남편과는 어떤 생일을 보낼까?

남편은 내 생일 한두 달 전부터 함께 쇼핑을 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사주면서 “이거 너의 생일 선물이다!”라고 생색을 낸다. 나는 남편의 그 한마디에 기뻐진다. 엉뚱하게 불필요한 물건을 사주는 것보다 훨씬 나은일이니까. 사실 생일 선물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필요한 물건이고 어차피 사야 할 물건이다. 올해는 유리글라스로 된 에어프라이기란다. 내 생일은 한 달도 더 남았다. 이 물건은 내가 더 원해서 빨리 구입해 달라고 재촉했다. 

나는 또 남편에게 어떻게 생일축하를 할까? 나는 남편에게 선물을 해준 기억이 별로 없다. 아마도 내가 남편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우리 두 아들(?) 일 것이다. 가만가만 이러면 내가 너무 악처가 되는 건가? 난 남편에게 내가 번 돈을 모두 주고 있다. 그리고 남편이 구입한 택배가 아주 자주 배달된다. 오늘도 미니 드릴 하나가 현관앞에 있었다. “남편 미안. 이게 나인걸 어떻게 하겠어. 올해는 당신이 그토록 원하는 대형 TV 사도록 '허락'할게."

그럼 결혼기념일은 어떻게 하냐고? 서로 챙겨야 하는 날이므로 기회 되면 술 한잔을 하든지 아니면 퉁친다. 신혼 초에 남편이 결혼기념일이라고 목걸이를 선물해 주었는데 내가 왜 이 비싼 걸 샀냐고 구박을 했더니 그 뒤로 국물도 없다. 그래서 이제 와서 챙기기에도 쑥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기념일을 기억하는 이 스타일을 고수하고 싶다. 가족 기념일로 서로를 피로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형식적인 표현은 각자의 시간과 여유가 될 때, 마음은 평소에 많이 주고받도록.'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 요즘은 오히려 부모 된 자들이 결혼한 자식들에게 눈치를 보는 세상이 되었다고……. 특히 나는 아들을 둔 엄마고 시엄마가 될지도 모르니까. 지금 나는 빈 집 만큼이나 마음도 비우는 연습이 필요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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