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생겨서 남편이 샤워도 해주고 머리도 감겨주고 머리가 다 마른 후엔 묶어주기도 한다. 벌써 열흘째다. 의사 선생님께서 3주를 이렇게 하라고 했으니 앞으로 열흘을 더 남편한테 의지를 해야 한다. 나는 내 청결을 남편에게 의지하다 보니 땀을 낼일을 거의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산책도 삼가고 있는 형편에 놓였다.
남편에게 내 몸을 의지하는 일은 영 어색했다. 남편은 내 머리는 마대 걸레를 빨듯 세탁했고 타월질은 피부에 상처 난다는 핑계로 설렁설렁 시원하지 않았다. 머리 묶는 솜씨는 또 어떠한가. 머리를 묶었는지 머리채를 휘어 잡았는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아이들 목욕도 씻겨본 적이 없는 사람이. 딸도 키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
10여 년 전도 내 몸을 남편에게 의지한 적이 있었으니 그때도 영 내 맘에 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땐 남편이 해주는 게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냥 대충 넘겼던 것 같다. 지금은 세월이 흘렀고 내 마음가짐도 달라져서 잔소리를 몇 마디 곁들였다.
“내가 치매에 걸리면 해야 하니까 미리미리 연습한다고 생각해. 아오… 머리를 이렇게 감기면 어떻게 해? 두피를 박박 문질러야지.”
아마도 남편은 내 입을 박박 문지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도 잘 참더라. 이 사람도 나이를 먹어 철이 들었다 싶었다. 남편에게 내 몸을 의지 하면서 부부의 연을 맺고 함께 해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부부가 젊을 땐 거세게 마찰을 일으키고 살아도 점점 나이가 들면 그 불꽃같은 성질머리들이 점점 수그러지게 되는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점점 약해지는 육신을 통해 내가 약해졌을 때 나를 돌볼 사람은 내 옆에 있는 옆사람뿐이라는 것을 깨달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간은 결혼이라는 계약으로 가족을 만들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이 상황은 남편이 나를 돌보는 데 있어 내 긴 머리카락이 가장 난코스라는 것을 알아채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나는 조금 슬픈 마음이 들었다. 이래서 병이 든 노인이 되면 모두 여성이고 남성이고 숏커트가 되는건가?
“여보! 난 나중에 치매가 와도, 병중이더라도 머리는 ‘쇼트커트’으로 하지 말아 줘. 내 머리는 꼭 어깨에 닿게, 예쁘게 파마도 해주라.”
“아픈데 머리가 뭐가 그렇게 중요해?”
“몰라, 그런 모습을 한 내가 좀 슬플 거 같아.”
남자에게는 숏커트가 익숙하여 모를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숏커트를 선호하지 않는 여자가 하루아침에 돌봄자의 편의를 위해 숏커트가 되는 상상을 하니, 나는 많이 우울해졌다. 우리 친정 어머니도 병상에서 그렇게 머리를 숏커트로 해야 했다. 그때도 마음이 좋지 않았었다. 평생 뽀글거리던 머리를 고수했던 어머니가 남자 머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슬펐다.
그런데 이 남자, 날이 갈수록 실력이 늘어간다. 등도 시원하게 밀고 머리도 차분하게 잘 감기고 있다. 거기에 머리 묶는 수준이 일취월장했다. 이제는 최소한 내 머리채를 한 움큼 움켜 잡았다 놓은 것 같진 않다. 그래 남자들도 안 해서 그렇지 이렇게 잘할 수 있는 거다. 나는 이렇게 돌봄은 여자만의 몫이 아니라 함께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몸소 깨우쳐 주고 있는 참으로 훌륭한 여자인 것이다.
나를 돌보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집을 나가야겠다는 둥, 내가 성질을 부리면 ‘이제는 머리 안 감아도 되나 보네?’라고 놀리는 남편이 얄밉지만 고맙기도 하여, 어제는 출근 전 급하게 도미찜을 해줬는데 생선이 다 안 익어 있었다. 일단 급한 데로 생선을 뒤집어서 먹고 안 익은 뒷 쪽 부위는 먹을 때 다시 익혀먹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