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노동의 가치는 여전히 평가절하 되어있다. 평가는 제쳐두고라도 우리는 돌봄 노동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이타심이 많은 사람들의 자원봉사로 대신하거나 착한 여성들의 몫, 아니면 취약계층의 직업군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령화 사회가 되고 많은 여성들이 사회화되면서 돌봄 노동이 논의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돌봄의 영역이 여전히 여성들만의 ‘원치 않는 특권’으로 작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코로나19의 환경이 되면서 유독 50, 60대 여성의 취업률이 증가했다고 한다. 반면 같은 연령대 남성들의 취업률은 감소했다. 여성들만의 독보적인 일자리인 돌봄 노동이 그 원인이다. 좋아해야 할지, 말지, 아이러니 한 대목이다. 그런데 돌봄은 언제나 여성에게 더 자연스럽고 쉬운 일일까?
돌봄 노동은 강한 체력이 필수 조건이다. 자립이 불가능한 사람들을 보조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돌봄 노동은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 그들의 불완전한 신체를 지탱해 주거나 이동을 도와야 한다. 그런데도 돌봄 노동의 영역이 여성에게 쏠림현상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어느 지식인에 의하면, 이처럼 돌봄 노동이 마치 여성만의 고유영역인 것처럼 떠맡겨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가부장제도의 고정된 성역할의 사회적 압박과 문화적 기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과거 ‘가족 안 여성’이 떠맡았던 일을 현재에는 ‘가족 밖 여성’이 싼값에 떠맡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돌봄을 받으며 살아간다. 어릴 때는 부모나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늙어서는 자녀나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 장애인들처럼 공공의 지원제도와 같은 더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사회지원정책이 필요하며 돌봄 노동의 도움이 절실하다. 선천적 장애와 긴 시간 가정 돌봄이 필요한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개인에게 그 책임을 모두 떠맡길 수는 없다. 지금처럼 가족이 쉽게 해체되고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서 사회적 지원마저 없다면 무너지는 개인의 삶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코로나19 위기 속에 더욱 지쳐서 일까? 작년 한해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가족들의 극단적 선택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은 모두 여성들이었다. 장애아를 둔 많은 가정이 이혼을 하게 된다고 하는데 아이를 맡아 키우는 일은 대부분 엄마의 몫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아픈 가족을 돌보는 것도 돌봄 노동 종사자도 모두 여성의 일인 셈이다.
국가의 의무란 궁극적으로 사회적 돌봄의 실행이고 돌보는 개인과 사회를 키우는 데에 있다고 한다. 우리가 소수자를 위해 싸우고, 법안을 제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모든 행위들 또한 인간을 돌보는 일이다. 즉, 모든 정치적 행위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기 위한 수단이고 목적이다. 인간은 서로를 돌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인류의 역사는 돌봄의 행위를 삶의 지혜로 여겼고 그 관계 속에 이어왔다.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미루어진 돌봄의 책임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돌봄은 더 이상 여성의 특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본가치이다. 요즘은 남자간호사가 증가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간호사 직업이 전문화되어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보수가 많아지면서 남성의 수입으로도 매력이 있고 미래가 보장되어서이다. 돌봄 노동도 전문교육을 강화하고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면 어떨까? 돌봄의 영역이 단순히 보조적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을 보살피는 요양보호사의 경우는 기본적인 의료행위를 수반하고 있으며 발달장애인을 돌볼 경우, 심리치료를 공부한다면 훨씬 효과적인 활동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돌봄을 사랑과 헌신이라는 이타심에 호소하여 희생이라는 부담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돌봄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구조로는 현 사회를 안전하고 지속적으로 돌볼 수 없다. 공공의료와 사회제도를 확대하여 구조적인 돌봄 시스템을 만들고 돌봄 인력의 전문화를 통해서 사회적 지위와 가치를 높여야 한다. 그 가치와 위상이 높아진다면 간호사의 직업처럼 여성의 특권이었던 신성한 돌봄의 세계로 건장한 남성들도 입장할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