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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Apr 07. 2023

쑥국


쑥국이 먹고 싶어졌다. 봄이 오면 저절로 드는 마음이다. 작년엔 그냥 지나쳐서 섭섭했던 기억에, 올해는 서둘러 나섰다. 당장에 봄 쑥국을 끓여 먹는 것도 좋겠지만 봄 쑥을 깨끗이 씻어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한겨울에 턱!하니 꺼내어 된장을 풀어 휘리릭! 손쉽게! 재빠르게! 끓여 먹는 쑥국은 정말 환상적이다. 남자 셋과 사는 나는 아파도 내스스로 내 몸을 챙겨야 하는 숙명인지라 몸에도 좋고 요리도 간편한 쑥국이 그 어떠한 보양식보다 내겐 훌륭한 음식이 되는것이다. 특히 감기라도 걸려서 입맛이 없을때엔 따끈한 쑥 된장국 한그릇은 무릇 보약이 따로 없다. 이 쑥국 한 그릇으로 나는 불끈 힘을 내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나의 보약인 쑥을 사수하기 위해, 남편과 나는 아침 8시에 비학산 아래로 서둘러 향했다. 쑥은 깨끗한 공기와 물을 먹고 자란 직접 캔 것이라야 한다. 번식력이 강해서 먼지가 많은 도로가에도 집근처에도 흔하게 자생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리집 아파트 화단에도 쑥은 잘도 자란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시장에 들고 나온 쑥은 믿음을 잃었다. 지금의 시대에서 공기 좋은 곳이 어디 흔할까? 깊은 산으로 들어가야, 시골 깊숙이 들어가야 깨끗하고 건강한 쑥을 만날 수 있다.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보양식이니 만큼 재료의 상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할머니들이 그 고단한 몸을 이끌고 맑은 공기를 찾아 나서는 것이 힘들것이란 예상하에. 조금 비정한 것 같지만. 몰랐을땐 몰라도 직접 쑥을 캐어 맛을 본 사람은 시장에서 선뜻 쑥을 살 마음을 먹지 못한다.


그러므로 봄이 시작되면 남편과 나는 ‘쑥 캐러 가야 하는데….’ 걱정부터 한다. 쑥국은 연한것으로 끓여야 하기 때문이다. 시기를 놓치고 쑥을 뜯는 시기가 늦게 되면 쑥이 억세어져서 국으로는 먹을 수 없다. 그럴땐 쑥 개떡이나 쑥 절편이 더 낫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부지런함은 없다. 아직까지는 쑥국에 만족을 하고 있고 겨울에 먹을 가장 손쉬운 보양식이 필요할 뿐이다.


작년엔 이 쑥이 적절하게 익은 봄의 찰라를 놓쳐버리고 만것이다. 그래서 올 해에는 조금 무리를 해서 실행에 옮겼다. 남편과 나는 오후에 출근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학산 아래로 가는데 한시간 오는데 한시간, 쑥을 캐는 2시간,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고 샤워를 하면 오후 1시정도 예상, 그리고 조금 휴식하다가 1시 40분에 출근.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오후 조인 남편은 나보다 조금 더 시간이 남아 있다.


비학산은 아직도 봄을 완연하게 맞지 못한 날씨였다. 그에 대비하여 얇은 패딩을 입었는데도 날씨가 쌀쌀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고 보고싶었던 쑥은 아기티를 채 벗지 못했다. 세상 모든 아기들은 왜 이렇게도 귀여운걸까? 순하게 새살이 오른 아기 쑥이 사랑스러웠다. 늘 한발 늦게 봄을 맞았던 내가 이렇게 작은 쑥을 본적이 있었던가?


초록에 하양과 검정을 조금 넣어 만든 색이 쑥의 빛깔이다. 검정과 하양이 발끝을 담근 것이 조금 우울감 마저 돈다. 마냥 희망찬 봄의 푸릇함과는 살짝 거리가 있는 색이다. 아마도 차가운 겨울의 우울감을 다 벗어던지지 못하고 아직은 침잠해 있는, 하지만 얼었던 대지를 녹인 봄 공기에 사르르 녹아서 히스코모리가 문밖을 나서려는 것을 주저하는 그 마음처럼 세상을 만나는 것에 초조한 모습이다. 적당히 고통도 외로움도 품어 더 넉넉하게 나를 품어줄 수 있을 것 같은 그 봄햇살처럼 따뜻함을 가진, 아파서 처량할때의 내신세를 충분히 위로해줄수 있는 존재이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래서 더 사랑스럽고 애틋한.


아직 어린싹은 참아 손을 대지 못했다. 다행히 햇살이 좋은 양지에 있는 쑥은 제법 어른스러웠다. 너무 추웠던 겨울을 제법 잘 지나 왔지만 여전히 위로가 필요한 나를 품어달라고 어리광을 부릴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 쑥을 한줌 캐어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쑥을 정성껏 씻어 물을 꼬옥 빼서 냉동실에 넣어두는 일이었다. 훗날 나의 보양을 위해서. 아픈 나를 스스로 살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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