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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May 11. 2023

남편, 따님이 되어가는 중

남편, 따님이 되어가는 중


올해엔 야심 차게 시작한 일이 있다. 쑥개떡을 만드는 일이다. 76세 남편의 절친분이 쑥개떡 만드는 공정(쑥을 삶는 방법이며, 쌀을 불리는 시간, 쌀과 쑥의 비율)을 모두 알려주셨다. 보고 그대로 만들라고 직접 만드신 쑥개떡 샘플도 보내주셨다.(사모님의 솜씨가 얼마나 대단하신지 매번 그분이 주신 음식을 얻어먹으며 감탄한다.) 직접 방앗간도 같이 가주셨다. 그리하여 지난 주말 남편과 나는 빻아온 쌀과 쑥을 친구분의 샘플 대로 반죽해서 동그랗게 동그랗게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어제는 어버이날이었다. 이렇게 미리 준비된 쑥개떡을 들고 남편은 어머니를 뵈러 갔다. 남편과 나는 근로 휴일이 달라서 남편 혼자서 갔다. 지난해부터 남편은 어머니 댁에 갈 때마다 주섬주섬 집에 있는 먹거리들을 챙겨서 간다. 작년에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형님네 부부가 이혼을 했고 어머니 건강도 나빠지셔서 부쩍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그 처음은 김장김치를 해다 드리면서 시작되었다. 또 자신이 직접 산에서 채취하고 직접 담근 열매 발효청을 가져다주더니 수제 도토리 묵을 쑤어 갖다 드렸고(우리 언니가 주신 수제 도토리가루),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지난 주말 함께 만들어놓은 쑥개떡과 도토리묵을 쑤고 얼려논 다래순을 녹여서 들깨와 들기름 양념으로 맛있게 무쳐서 어머니 댁으로 향했다. 물론 나의 손맛을 첨가했다.

나는 주방에서 이것저것 챙기고 요리할 준비를 하는 남편의 등을 보며 말했다.

“자기가 어머니께 없는 딸노릇을 하네.” (우리 시어머니는 우리 친정집과 달리 아들만 넷을 두셨다.)

결혼 초 남편이 할 줄 아는 요리는 라면밖에 없었다. 그때에 비하면 남편은 참 많이 달라졌다. 지금의 그는 내가 없다 해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다. 지금의 남편이 어머니에게 딸노릇을 하게 된 데에는 남편이 어른으로 자라도록 푸시한 나의 악처노릇이 지대한 공을 세웠다 말할 수 있겠다. 나는 현모양처를 거부했다. 남편이 원하는 것을 다해 줄 에너지도 없었거니와 해줄 의향도 없었다. 두 아들 뒷바라지만으로도 충분히 벅찼으므로. 남편은 나와 동등한 성인이 아닌가. 나의 돌봄이 필요한 나이는 아닌 것이다.

시내버스운행 노동자인 남편은 소변을 오래 참아서인지(명백히 직업병) 요로결석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그 뒤로 약초물을 아주 열심히 끓여 먹는다.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마시고 있으니 약초물을 이틀에 한번 3리터씩 끓여 댄다. 또 쑥을 캐어와서 깨끗이 씻어서 냉동실에 얼려두는 센스도 생겼고, 채소 말리는 오븐을 사 들이더니 올해에는 다래순을 말려서 묵나물을 만들었다.

나는 전라도 내 어머니의 손맛을 그럭저럭 흉내 낼 수 있는 사람임에도 집안일 중 음식을 하는 일을 제일 힘들어한다. 그럼에도 두 아들을 둔지라 아직도 밥은 열심히 하는 편이다. 이와 반해 살림에 무관심이던 남편은 점점 먹거리에 대해 관심이 늘고 자신이 관심 있는 먹거리로 요리를 하는 것을 점점 즐긴다. 나로선 참 감사할 일이다. 적어도 내 남편은 삼식이가 될 일은 없으므로. 남편의 이 훌륭한 모습은 전적으로 내덕인 것이다. 성인이라면 모름지기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남자, 여자 하기 나름이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남편의 이런 아주 바람직하고 발전적인 모습,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어머니에게도 나에게도 말이다. 악처를 만난 남편이 점점 살림에 익숙해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남자라서 못할 집안일은 없는 것 같다. 사실 나 또한 결혼 전엔 요리나 살림을 할 줄 몰랐다.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로 결혼 후 살림에 전념한 결과 나는 살림에 익숙한 여자가 되었다. 또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하지 않았나. 최근엔 요리가 취미인 남성들도 많고 멋진 육아대디도 많다. 살림남이 오히려 멋있는 캐릭터로 인식된 지 오래되었다. 내 남편도 나와 같은 가사노동의 혁명적 전사를 만나 살림남으로 거듭하고 있지 않은가.

집안일은 함께 사는 가족원이 함께 나누어 가질 일인 것이지 아내라는 이름으로, 엄마라는 이름으로, 여성이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도 평생토록. 우리 언니 오빠 세대의 가치관인 남성들의 가사 일에 대한 가부장적인 태도는 우리 세대에서 끝이 났으면 좋겠다. 우리 후세대의 여성 아니 모든 인종의 인간적 삶을 위해서라도. 그러므로 집안일은 여성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바깥 세계의 일이 우리 모두의 일인 것처럼 말이다.

남편은 어머니와 함께 쑥개떡, 도토리묵, 다래순 나물을 곁들인 점심식사를 함께 차려 먹고 왔다 한다. 어머니는 쑥개떡을 가장 좋아하셨다 했다. 아기자기하게 먹거리를 챙겨가는 남편의 모습이 마치 딸(여성)처럼 살갑다. 남편이 돌봄의 세계, 딸들의 세계로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후일담을 말하자면 남편은 다음날 일찍 다시 쑥을 뜯어서 삶고 쌀을 불려 방앗간에 갔다 와서 밤늦도록 쑥개떡을 빚었다. 아예 빚은 쑥반죽을 냉동시켜 가져다 드릴 것이라 했다. 어머니 오래오래 두고 드시라고…. 이 모든 공정을 하루 만에 끝낸 남편이 어쩌면 딸이 아니라 체력이 좋은 아들이어서 가능한 일인지 싶다.

우리 사회의 돌봄의 세계도 그러하다.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는 돌봄 노동의 세계에서는 남성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장애인활동지원사도 요양보호사도 그 현장을 들여 다보면 남성 환자들을 여성들이 돌보는 것에는 많은 한계를 마주한다. 남편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돌봄이 정치적 의제의 중심(<돌봄 민주주의>의 저자 조안 C, 트론토의 주장)에 올라 함께 돌보는 세상이 머지않은 듯싶다. 물론 어렵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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