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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대문구점 Nov 16. 2024

붕어빵 앞에서, 그때의 나는 어떤 어른이 되었나

'나.너.먹. You and me eat' 준비 시작

조금 뜬금없지만, 일곱 살인가 여덟 살인가 어슴푸레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요즘보다 더 쌀쌀한 날씨에 몸이 움츠려들던 어느 겨울날이 떠오릅니다. 그날 저는 집으로 가던 길, 동네 어귀에 있던 붕어빵 포장마차를 발견했습니다. 밀가루와 우유, 커스터드 크림이 섞인 붕어빵 반죽이 달콤하게 익어가는 냄새가 저를 부르는 듯 했습니다. 어쩌면 포장마차를 눈보다 코로 먼저 발견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무슨 돈이 있었겠어요. 하지만 붕어빵은 먹고 싶었답니다. 돈이 있어야 사 먹을 수 있다는,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계약을 그때는 어겨서라도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꾀가 떠올렸습니다.


‘인사를 하면 하나 주지 않을까?’


그렇게 포장마차 앞에 떡하니 서서 붕어빵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주머니는 당황한 낌새를 보이셨지만 이내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셨습니다. 하지만 아주마니가 제 아무리 눈치 백단일지라도, 붕어빵을 먹고 싶다는 속내를 꽁꽁 숨겨 대뜸 인사를 건내는 아이의 의중을 알아차릴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저는 걸음을 옮겼습니다. 과연 포기하고 집으로 갔을까요? 전혀요. 포장마차를 중심으로 골목길을 빙  돌 때마다, 그렇게 서너 번 인사를 더 드렸던 것 같습니다. 이쯤 되니 아주머니도 저를 이상하게 여기셨는지 말을 걸어 오셨습니다.


“너 누구니?”


예상했던 질문은 아니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것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는 게 좋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붕어빵을 먹고 싶은데 하나만 주시면 안 돼요?”


그때 저는 무슨 표정을 지으며 그토록 당돌하게 요구했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당혹스러운 행동이었습니다. 옆에 어머니가 계셨다면 부끄러움에 저를 치맛폭 뒤로 숨기셨을지도 모릅니다.


이 날의 기억은 저에게 부끄러운 날이기도 하지만 따뜻했던 날이기도 합니다. 아이의 당찬 요구에도 푸하하 웃으시면서 저에게 붕어빵을 흔쾌히 건네시던 아주머니의 표정, 그 느낌이 남아 저의 태도 어딘가에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아마도 그날 붕어빵과 함께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도 함께 받았던 것 같습니다.



책방 바라타리아 '미미책' 가판대. 책마다 선물한 어른들의 메시지가 걸려 있다.
누군가 슬프다고 남들보다 더 슬프다고 느낀다면, 이 책을 선물로 드리고 싶어요. 충분히 슬퍼함으로 충분히 기뻐하시길! 서울에서 한 친구가


올해 8월 7일, 춘천에 위치한 '책방 바라타리아'에 동원님과 지철님과 함께 견학에 다녀온 것은 '나도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붕어빵을 갚아야겠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책방엔 '미미책 (미래로 보내는 미리 계산한 책 선물)'이라는 프로그램이 운영되는데, 이 프로그램은 성인이 감명받은 책이나 읽었으면 하는 책을 책방에서 구입하고 응원 메시지를 적어두면, 책방에 방문한 청소년이 메시지와 책을 읽어보고 선물로 받아갈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아이들은 책을 받아가면서 책에 적힌 어른스러운 한마디, 위로의 한마디를 받아 꼭꼭 씹어먹을 겁니다. 그리고 어제보다 한 뼘 더 자란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자신의 언어로 살아갈 겁니다. 책을 선물한 어른도, 어쩌면 아이일지도 모르는 그 어른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기쁨의 미소를 지을 겁니다.


“책을 선물하는 어른보다 아이들 반응이 더 놀라웠어요. 서울, 경기의 수도권 학생들이 종종 혼자서도 와요. 아이들 나름대로 그 시절의 고충과 힘듦이 있기 때문에 미미책에 적힌 어른들의 메시지에 큰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책방 바라타리아 강은영 사장님


책을 선물 받은 아이들의 답장.


서대문구에도 가게를 중심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 '나너먹'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나'와 '너'가 함께 '먹'는다는 뜻에서 지은 '나너먹'은 더디지만 우리만의 속도로 천천히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한 일 입니다. 올해 12월 홍은동에서 동네 선물 프로젝트 ‘나너먹’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곧 자세한 소식으로 만나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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