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맡았던 작품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박: <하나 두리 세라>라는 작품이 있어요. 한 집에 함께 사는 여자 셋의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그 집 규칙이 '절대 남자를 집에 데려오면 안 된다'예요. 그런데 어느 날 집에서 콘돔 포장지가 발견되죠(웃음). 저는 ‘집에 남자는 절대 안 돼. 누가 범인인지 밝혀내자!’라는 강경한 성격의 인물을 연기했어요. <자매의 밤>이라고 제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무대에 올린 작품도 있어요.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잖아요. 작성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박: 3개월 정도 걸렸어요. '여자 둘이 나오는 2인극을 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시나리오를 쓰게 된 이유가 있나요?
박: 무대에 서고 싶은데 작품이 없으니 ‘없으면 만들자.’라는 생각이었어요. 게다가 여자가 주인공인 희곡이 많지 않거든요.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무대에서 설보일 때 모두 응원해 줬어요. 작품 반응도 나쁘지 않았고요. '처음 쓴 것 맞냐?'는 질문도 받았죠(웃음).
다른 배우도 스스로 기회를 만드는 지 궁금하네요.
박: 제가 직접 시나리오를 작성한 것처럼 독립 영화를 작업하는 분도 꽤 있어요. 영화는 찍고 싶은데 오디션 결과가 좋지 않아 배우들끼리 뭉쳐서 스스로의 고민과 생각을 영화로 만드는 거죠.
영화 현장에서 조연출, 미술 감독을 맡기도 했다고요.
박: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시각이 궁금했었어요. 저는 그들에게 항상 선택되어야 하고 카메라만 바라보아야 하는데,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시선으로 배우를 바라보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거든요.
그 궁금증은 해결이 됐나요?
박: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촬영 현장에서 느꼈던 두려움도 사라진 것 같아요. 사람이다 보니까 스태프들을 대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오히려 ‘나와 똑같은 목표를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구나’라는 동료 의식이 생겼죠.
배우로서 본인만의 색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박: 스태프분들이나 연출분들의 피드백을 수용하는 편이 저의 장점인 것 같아요. 유연하다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유연해지기까지의 과정이나 계기가 있었나요?
박: 대학원에서 많이 배웠어요. 혼자 연기하는 게 아니라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유연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점과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법도 배우게 됐죠. 연습 때 하지 않던 실수도 관객 앞에 서니 대사를 까먹기도 했거든요.
실제로 겪었던 돌발 상황이라고 하면, 소품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대사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이제는 이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대처할 수 있죠 (웃음). 저는 돌발 상황이란 걸 알지만 관객은 아니잖아요.
배우라는 직업의 가치는 스스로 만족을 넘어 관객과 대중에게까지 인정받아야 하는 걸까요?
박: 계속 검증 받는 직업이죠.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을 위한 오디션도 그 단계 중 하나이고요. 도전하고 검증받는 일이 배우의 숙명인 것 같아요. 연기의 완성이 없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아무래도 배우라는 직업이 부름을 받아야 하다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저를 돌아보는 것 같아요.
배우가 직업적 가치를 높이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박: 어떤 배우의 인터뷰에서 '작품을 하지 않을 때는 영화나 책을 통해 내면을 키우고 있어요.'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어요. 저도 그 말에 동의해요.
연기에 배우의 성향이 묻어 날 수밖에 없거든요. 내면의 건강을 더 건강하게 유지하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배우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연기 연습이나 스터디를 주로 하나요?
박: 혼자 연습하고 있어요. 집중이 더 잘 되고 표현하고 싶은 내용을 제약 없이 끝까지 할 수 있더라고요. 지금은 집중하는 일이 더 필요한 것 같아서 스터디는 하지 않고 있어요.
롤 모델로 정해둔 배우가 있을 것 같아요.
박: 김혜수 선배님이요. 다양한 장르와 각 장르에 맞는 역할도 잘 소화하시거든요. 그리고 스태프나 단역들한테도 상냥한 태도로 대하시고요. 멋지고 존경스럽더라고요. 다음에 꼭 함께 하면서 옆에서 많이 배우고 싶어요.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배우라는 직업을 정의해 주겠어요?
박: 감정을 공유하고 교감하는 직업이 배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책이나 영화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끼잖아요. 저는 이런 것들이 쌓여서 하나의 인간을 형성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배우가 위로를 전달할 수도 있지만 배우 스스로 연기를 통해 위로를 얻기도 하고요. 양방향적인 소통인 거죠.
인터뷰 사전에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배웠다고 했는데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박: 일본 영화 중에 <굿바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첼리스트였던 주인공이 악단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장의사를 하는 내용의 영화예요. 사실 당시에는 장의사라는 직업 자체도 모를 정도로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와 인식을 느끼고 밤잠을 설쳤던 때가 있거든요. ‘같은 상황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구나’를 깨닫기도 했죠.
<내안의나> 작업에 응한 이유가 궁금해요.
박: 2023년 목표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만 하지 말고 부딪히며 경험을 쌓아보자예요. 그래서 제안이 왔을 때 망설이지 않았어요.
인터뷰는 어땠나요?
박: 아직은 불안전한 저의 생각을 정리한 시간이었어요. 아직 미흡한 면이 많아서 그냥 귀엽게 봐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다시 인터뷰를 봐도 ‘여운이가 저때는 저랬구나. 왜 그랬니.’할 것 같아요(웃음). 최대한 진솔하게 대답했는데 제 생각이 잘 전달 됐을지 모르겠네요.
1. 인터뷰이박여운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_yeo_wooon_
2. 배우 박여운 연기 영상 https://youtu.be/RE-CRDD2wK8?si=v51a4ubiuQXp9r0B
3. 인터뷰어 배대웅 인스타그램 BD DaeWoong(@ifyouknowbd)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