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안부, 백수린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없을 때 우리는 흔히 '괜찮다'라는 말로 모든 것을 무마한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괜찮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고, 그다음에는 정말이지 그 말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덮고 덮어버린 마음이 와르르 무너진 후에야 나는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버티고 버텨왔다는 것을.
그 사실을 깨닫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한 달 전에 읽은 '눈부신 안부'가 여전히 침대 머리맡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누군가 '나의 안부'를 물어주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해미가 그랬던 것처럼. 선의의 거짓말로 오랫동안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살았던 해미는 자신의 마음뿐 아니라 누구의 마음도 들여다보지 못했다. 솔직한 마음은 감춘 채 누군가를 위해 거짓말을 하게 되지만 결국 단 한 사람도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우리는 어떻게 했어야 할까.
"미안해. 나는 오랫동안 나만 괴로운 줄 알았어."
"언니, 원래 사람들은 다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거야."
- 눈부신 안부, p306
나 또한 누군가에게 안부를 물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어떤 마음들은 단번에 각인되지만, 다정한 마음은 천천히 퍼져간다. 그러니 계속되어야 한다. "거기에 있는 당신, 안녕한가요." 하고 말이다.
문장기록 | 백수린, 눈부신 안부(문학동네)
p.30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는 때로 체념이 필요했다.
p.50 당시에도 나는 어른들이 내게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 이유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어른들의 사정을 다 알았지만 어른들은 내가 아무것도 몰라서 오히려 너무 많은 상상을 멈출 수 없고 그래서 괴롭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했다.
p.108 나와 한수, 레나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박수처럼, 폭죽처럼 터지던 웃음소리. 흘러넘치도록 이어지던 웃음소리.
p.109 "언니,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
p.117 나는 영문모를 슬픔과 괴로움을 느끼며 자문했다. 어떤 기억은 짐작도 할 수 없는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다가 불시에 일격을 가한다.
p.225 "그 일을 했던 오 년간 깨달은 건 사람은 누구나 갑자기 죽는다는 거였어. 멀리서 보면 갑작스러워 보이지 않는 죽음조차 가까운 이들에겐 언제나 갑작스럽지. 그리고 또 하나는 삶은 누구에게나 한 번 뿐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