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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Nov 11. 2023

감각하고 도약하기

태초의 냄새, 김지연

정보를 수집할 때 어떤 인식 방식을 사용하느냐, 이것을 두고 감각형과 직관형을 나눈다. 감각형(Sensing)은 우리의 감각기관, 즉 후각, 시각, 촉각 등의 오감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는 반면, 직관형(iNtuition)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세계와 지금 현재를 초월한 미래를 보고자 하고 육감 혹은 영감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MBTI의 인식 기능을 나누는 기준이다. 나는 감각형 인간인데, 나이가 들수록 감각기관은 기능이 점차 약화된다(감각기관뿐 아니라 신체의 모든 기관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내가 인식하는 것은 얼마나 올바를까.


태초의 냄새, 김지연(현대문학 핀시리즈)


코로나에 걸린 주인공 K는 격리 기간 중 연인인 P와 함께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떠난다. 자신의 의견을 강력해 피력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하지만 K는 그런 사람이었다. 죽어가는 곤충 냄새가 나는 와인도 조금 투덜대며 마시고, 2시간 넘게 줄을 서 먹은 베이글도 다른 빵집과의 차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 '굳이 최상의 것을 찾지 않아도 손쉽게 만족했고 최고를 가져다줘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p.15)'하는 사람.

그런 그가 코로나 후유증으로 후각을 잃었다. K에게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건 아쉬움에 가까웠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나지 않는 냄새(악취)를 맡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사람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쑥 냄새가 났다. 코를 막아버리거나 도망치듯 장소를 벗어나기도 했지만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연인 P에게서 악취를 맡는 순간, K는 있는 힘껏 끌어안고 만다.


'어쩌면 그러한 무던함 때문에 뭔가를 강하게 원하는 마음도 조금씩 마모된 것인지도 모르겠다(p.15)'는 구절은 K를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음(연인, 후각의 상실)에도 애도하지 않았던(회피) K였다. 하지만 K는 일상의 불편함(악취)을 경험하면서 그동안 보려 하지 않았던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반성할 때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의, 아무런 문제가 없던 상태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는 있으리라고. 잘못된 것들을 하나씩 고쳐나가면서 이제부터는 제대로 해낼 수 있겠다는 예감에 휩싸이기도 하는 것이다. 전과 같지는 않겠지만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기분이 삶을 견뎌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 때론 죄악감이 달콤한 게 느껴지는 이유였다.

- 태초의 냄새 p73


반성이라는 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것에 대한 생각이다. 나는 종종 과거에 매여 상처를 들추고 이내 흉터를 남기곤 했다. 그런 패턴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나를 자주 주저앉혔다. K가 더는 그와 같은 길목에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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