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계속 말하고 있다
아이가 다쳤다.
아빠가 방문을 닫아달라고 하자 침실에 가서 문을 빨리 닫으려다가 엄지발가락 끝이 찢어진 거 같다. 아니, 발톱이 들려 피가 스며 나온 거 같다. 아니, 사실 잘 모르겠다. 아이가 발이 아프다며 우는데도 설거지를 하느라 기다리라고 하고 계속 울길래 음식물 쓰레기는 정리하지 못한 채 아이에게 갔다가 그제야 다쳤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상처를 보고 내가 "어머, 아팠겠다." 하자 아이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상처를 살펴보고 안아주자 안심한 듯 더 크게 울었다. 일단 지혈을 위해 휴지로 엄지발가락을 꽉 잡은 후 우는 아이를 토닥였다. 문이 닫힌 방에서 남편이 뭐라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응, 다쳤어."라는 말만 하고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같이 집에 있었으나 이 상황에서 아이에게 보호자는 없었다.
실은 그 상황에서 남편에게 먼저 화가 났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 좀 봐주지. 그런데 남편은 집에 오자마자 너무 피곤하다고, 일찍 자고 싶다고 수차례 말했었다. 그 상황에서 나는 남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나 설거지하는 동안 피곤해도 아이 좀 돌봐줘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 몸 컨디션이 여전히 좋지 않기 때문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집안일을 하면 응당 남편은 아이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리 피곤해도 말이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몸이 좋지 않으면 남편은 내가 쉴 수 있도록 방문을 닫고 아이와 놀아준다. 그에게 집안일은 가장 나중의 일이다. 그러니까 오늘 아이가 다친 건, 내가 아이보다 설거지를 더 우선순위에 놓았기 때문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오는 데 약 1시간 정도 걸렸다. 남편이 아이를 좀 잘 돌봤더라면(남 탓), 내가 몸이 원래 컨디션이었다면(상황 탓), 이렇게만 생각을 1차원적으로 했더라면 앞으로 달라지는 것 없이 계속 남 탓을 했겠지.
오늘 아이가 계속 징징거리고 투정 부린 건 엄마와 더 놀고 싶다는 신호였을 텐데 헤아려주지 못해 미안하다. 다치게 한 것도. 엄마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이렇게 미숙하다니. 그래도 일기를 쓰며 알아차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