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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tyfourtySimplythirsty Aug 06. 2021

나만 엉망진창일리 없잖아.

뭐 어때. 관종이 되어보자.



1. 난 관종. 


이게 뭐냐면,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한정생산한 혼다의 크로스 커브 110. 이는 당대 최고의 가성비 스쿠터바이크로 불리우는 혼다 슈퍼커브의 오프로드버전이자 간지템. 게다가 노랑이는 관종들에겐 최고의 찬사를 받는 바이크라 볼 수 있겠다.


샀다.

우리 나라에서 팔지도 않는걸, 공구를 통해 일본에서 배로 들여와 샀다. 주차장에 놔두고 주말마다 타고 있다. 인간에게 주말 아침은 흡혈귀 태양피하듯 피해야만 하는척 누워 자야하는 시간이지만 , 이걸 샀다는 이유로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일어나, 바람막이 옷을 입고 나름 이쁘게 치장한 채로 성수동, 남산, 한남동, 강남일대를 뒤적거리며 허세샷을 위한 카페투어를 나선다. 허세의 완성은 카페에서의 독서라 책을 들고 다니지만, 주말 아침 카페는 독서를 위한 환경을 주지 않는다. 카페에 앉아있는 모두 다 주중에 하면 안되는 말들을 목젖위에 붙여두었다 토해내다시피 꾸웩꾸웩거리며 주말아침 카페에 앉아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책읽기는 글렀다. 


47 years old.

누가 보기엔 이제 시작이라 하고, 누가 보기엔 한참을 온 듯 하기도 말하기도 하나, 내가 보기엔 그저 믿기지 않는 나이다. 이제 시작이라 하는 이는 무엇이든 처음부터 해도 된다고 할 것이며, 많이 왔다고 생각한 이는 지금 하고 있는 것이나 잘하라고 할것이며, 내가 보기엔 "어어? 이래도 되는거야? 뭐야?" 하는 나이다.

이렇든 저렇든 인간적으로 욕심이 난다. 47이면 뭐라도 되어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정말 이럴줄 몰랐다.

나에게 47살은 중년이었고, 나의 중년은 <리차드 기어>였다. 나에게 중년의 남자는 <리차드 기어>같은 남자였다. 뭔가.....부드러우나, 장인의 부채살처럼 심지 곧은 그런 멋진 남자. 허나, 내가 진짜 그냥저냥 "중년"이 될 줄이야. 



난 내가 원하는 일터(21세기 건축학적으로도 인정받는, 작으나 힙한 건물이며, 옥상엔 바베큐 시설이 되어있고, 주차는 딱 4대만 할 수 있는)에서, 멋진 동료들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내가 하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극강의 즐거움과 함께 보상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다른 이들로 하여금 "저 인생, 남다르게 부럽다.."라는 말을 들으며, 내가 만들어낸 그 무언가(상품이든, 콘텐츠든, 서비스든)를 자랑스러워하며 중년을 맞이할 줄 알았다.

안다. 그런 사람 잘 없다는거. 그런데 난 잘 없는 그런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중년을 맞이한 나는 30대 여성들의 가질수 없는 로망이 되고, 아이리쉬 그린색 포르쉐를 몰면서도, 수수한듯 멋부리며 다니는 날 무릇 선망하는 어린 남자아이들이 즐비할 줄 알았다.................................정말........아무도 없을 줄은 몰랐단 말이다. 힝.

브리티쉬 그린인가? 아이리쉬 그린인가? 청개구리 초록인가?




2. 그럼 관종하지말까?


관종하지 않을꺼라면 사람의 안, 내부, 속이 딴딴해야한다. 그래야 세상과 다른 호흡이나 패턴으로 자기만의 인생을 단단하게 영위해갈 수 있나보드라. 그 소나무의 뿌리같은 강력함과 단단함, 그게 필요하다. 


그래서, 난 계속 관종이기로 한다. 


일단, 난 속이 허하다. 뭐로라도 진즉에 채웠어야 했는데, 아무것으로도 채우지 않았더니 정신적 공복의 상태를 즐기는 단계를 훨씬 지나 오랫동안 비워두었던 시골집처럼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렇게나 선망해 마지않던 문화예술도 극강의 자극이 오지않으면 별루. 지식은 나름 깊어질수록 포로가 되어 편견만 가득해졌고, 지식사회란 기존의 밥줄을 걱정하는 일부 엘리트집단이 높여놓은 진입장벽따위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글도 읽지 않았고, 쓰지도 않았다.


그래도 한편 놓지 않은게 있다면 "쇼핑"이다.

주구장창 "쇼핑"을 해댔다. 


업무강도가 높아져 불안해지며, 새벽까지 일해야하는 날엔 어김없이 인터넷으로 새벽쇼핑을 해댔다. 별빛배송따위는 오히려 "쇼핑"의 쪼는 맛을 해하기만 하는 시스템이어서 어느정도 배송시간을 즐기는 "쇼핑"을 선호했다. 쓸데없는 줄 알면서도, 미니멀리즘 라이프를 살겠다고 외치면서도 결국엔 무언가를 사댔다. 택배로 집앞에 도착한 박스를 볼 땐 즐거웠지만 열고나서 원하는 물건이 아닐땐 스스로를 설득하느라 재정소비뿐만 아니라 감정소비까지 해대야했다. 그래서일까 쇼핑엔 남들보다 아주 작은 한끝 더 이해하는 부분이 생기기도 했다.


뭐 어쨌든, 쇼핑은 관종행위의 어떤 기본클래스 같은거라 놓칠순 없었다.


결국, 허한 내 머리와 내 가슴은 라스베가스에서 LA로 가는길의 시체 유기용 사막처럼 황폐해졌으나, 수년간의 쇼핑으로 껍데기는 나름 허하지 않아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이란 거다 (딴지걸지말자, 난 거기까지다). 


얼레? 멋지잖아? 이거 나 아님.

여튼, 정리해보자면 밖으로 할 수 있는건 다 했다. 돈은 없으니, 아이리쉬 그린 포르쉐는 가지고말거다. 이제 요가까지 배우면 내 몸뚱아리로 할 수 있는건 대체로 해본거다. 그런데 봐봐. 뭔가 허하다.


밖으로 할 수 있는 기본관종 Attitude는 이정도면 충분했다.

이제 진짜 하이클래스 관종이 되려면, 허해진 머리와 가슴을 정리해야 한다.  가슴속도 리처드 기어가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이클래스 관종이 되지? 뭔가 내가 있어보이면 되는거 아닐까? 그럼 막 있어보이게 말하거나 글을 쓰면 원하는 하이클래스 관종이 될 수 있을까? 좀 더 유려하게, 그리고 잘 포장하면 되나? 영국의 해로즈 백화점처럼 양말하나를 사도 초록색 쇼핑봉투에 꼼꼼히 넣어주듯, 뭔가 있어보이려면, 나도 뭔가 그러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그렇게 할 줄 모르잖아. 그만큼 똑똑하지도 않잖아?


뭘 하면 관종이 되는거지?


하이클래쓰 관종.

3. 47살. 드디어 진또배기 관종이 된다.


뭐든 해보자. 47살 관종이 되어보자.

앞으로 3년만 관종 노력해보고 그래도 관종안되면 조용히 물러나자. 관종되고 싶어하는 후배들을 위해 멋지게 물러나 주자. 딱 3년이다.



이것 참....엉망진창이다.

그리고 나. 만으로 47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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