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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방장 Sep 29. 2018

치앙마이는 말이지

동남아 여행은 처음이었다.


너무 좋아서 두세 번이고 다시 여행을 갔던 치앙마이 전도사, 회사 동료 덕분이었다. 


상해를 거쳐 도착한 작은 공항에는 같이 비행기를 타고 온 중국인들로 가득했다. 두 줄이였다가 세 줄이 되기도,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저 앞에 가버리기도 하는 이상한 줄 서기 속에서 풍겨오는 아릿한 냄새를 견디며 드디어 여권에 땅땅 치앙마이의 도장을 찍었다. 상상했던 것만큼 숨 막히진 않았지만 핸드폰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습도 높음'이 느껴지는 날씨였다. 우기여서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살이 시커멓게 타서 살 빠짐 훼이크를 쓸 수 있을 만큼 그곳의 햇살은 뜨거웠다. 그곳에서 만난 치앙마이만의 모습을 적어 본다. 


일. 흥정은 필수, 내 맘대로 니 맘대로

공항에서 시내로 나갈 때부터 흥정이 시작됐다. 친구가 알아본 가격은 200바트였으나 250을 부르기도 하는 기사. 결국 우리는 'Grab 앱'을 이용해 170이라는 정가에 차를 탔다. 무조건 가격은 깎고 보는 거라는 동남아 유경험자 친구는 거침없이 -100부터 시작했다. 1바트에 34.3원 밖에 안 하는데, 그 사람들한테 너무한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결국 내 마음과 니(판매자) 마음은 어딘가의 지점에서 만나기 마련이었다. 


점차 가격 깎기에 습관을 들이던 무렵 와로롯 마켓에서 품질보장 단호박 사장님을 만났다. 나무로 만든 그릇, 쟁반, 수저 포크 세트를 담고 450바트가 나왔는데 애걸복걸해도 20바트밖에 안 깎아주던 그가 80바트치 살 때 10바트 깎아주는 거 보고 이 알 수 없는 흥정의 세계에 잠시 혼을 잃을 뻔했다. (도대체 기준이 뭐야?)



둘. 무단횡단 유학자

도로 위에 썽태우, 툭툭이, 택시, 오토바이, 자전거, 일반차, 그리고 사람이 뒤섞였다.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건너야 할 타이밍을 잡지 못해 한참 동안 고개를 이쪽저쪽 돌리고 있을 때에도 그 누구 하나 먼저 멈춰서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각자 나의 가야 할 길을 갈 뿐이고, 보행자들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면 될 뿐이었다. 교통체증이 없는 이유는 물 흐르듯이 흘러갈 뿐 잠시 멈춤의 신호가 드물기 때문이었다. 그 무엇보다 질서를 중요시하던 나는 그렇게 그곳에서 무단횡단의 위협과 동시에 자유를 누렸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 팀장님께 지각하지 말라는 권고를 들으며 무단횡단 드립을 치게 된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 난 그 간 지각을 결정짓는 그 횡단보도의 갈림길에서 양심과 위험에 고민한 적이 너무 여러 번이라 그랬는지도. 그래도 어쩌다 보니 무려 무단횡단 유학자.



셋. 그렇게 너의 시간은 아깝지 않아

보통 여행에 가면 유난히 특별하다고 느낄만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렇게 지내지 않으면 비행기 값이 너무 아까웠을 테니까. 하지만 치앙마이는 어쩌면 한국에서 살던 일상을 지속하는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하던 요가를 하고, 밥을 먹고, 카페에 갔다. 지금도 그곳에 다녀온 5박 6일을 생각하면 꽤 긴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무엇이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했던 동남아보다는 깨끗했고, 신식 건물이 많았고, 시내 곳곳에 마켓이 많아 구경만 해도 시간이 훌쩍 갔다. 평소에 즐겨 사는 유니클로 심리스 속옷 st. 을 단 돈 2천 원에 살 수 있던 속옷가게에서 한참이나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 있었으면 인스타의 핫 플레이스가 됐을 법한 세련된 카페가 곳곳에 널려있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와 소품들이 길거리에 가득했다. 나무가 우거진 한적한 카페에 앉아 느리게 가는 시간을 세지 않고 마냥 보내기에 딱 좋을 것 같다. 한 밤의 재즈바, 몰입한 연주자들의 찐득한 멜로디와 리듬이 좁은 곳에 살을 부대끼며 앉아 있는 사람들의 흥겨움과 섞여 들어 2시간이 훌쩍 지나기도 했다. 


특별함에 있어서도 유난한 것을 추구하던 우리의 이전 여행들보단 덜했지만, 그렇게 보내는 너의 시간도 아깝지 않다고 그곳이 말했다. 


치앙마이에서 보내던 일상이 무난히 나의 일상에 스며들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항상 여행을 다녀온 이후 그리던 하향곡선의 폭이 그리 크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어렴풋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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