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방장 Sep 29. 2018

쿨피스도요.

오늘의 말

"네"
"떡볶이 하고, 오징어, 고구마튀김 주세요." 그리고 "쿨피스도요."
"기침이 계속 나서요."

오늘 했던 단 세 개의 문장. 
투표소에서 '저 쪽으로 가셔서 또 투표하세요.'란 말에,
길에서 우연히 들은 '떡볶이'란 단어에 꽂혀서 갑자기 들른 분식점에서 주문할 때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약국에 들러 약사님께.

혼자 살다 보면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 안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 고요함의 존재를 깨달은 건 고향집에 내려가 아침을 맞았을 때였다. 내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들리는 부산한 소리들. 잠을 더 청하려 해도 시끄러워 잠시 깰 수밖에 없는 그런 소리들 말이다. 화장실을 쓰고, 티브이를 켜고, 믹서기가 돌아간다. 그 소리들이 그리웠던 오늘이었다.


어제오늘,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화가 나 있는데 전화로 이러니저러니 싸우기가 싫었다. 밤새 이어진 기침에 몸이 녹초가 되어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 날이었기에 더더욱 그 문제를 생각하기가 싫어 피하기도 했다. 나에겐 혼자 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자유와 함께 스스로 자신을 고립시키는 못된 버릇도 생긴 것이다.

사람이 참 웃긴 게 그렇게 엄마와 떨어져 사는 딸의 권력을 마구 휘두르면서도, 차라리 같은 집에 살면서 이렇게 꿍해 있는 나를 누군가는 툭 쳐주길 바랬다. 그러니 그 아침의 부산스러운 소리가 그리워졌던 것이지.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해결되지 못한 관계의 어려움들이 입 밖으로 내뱉어지지 못한 채 둥둥 떠다닌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을 지우려 친구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그 또한 받지 않았다. 


그렇게 정작 중요한 말들은 속으로 삼켜지고, 고작 저 따옴표 속 문장들이 오늘의 말이 되었다. 


2018.06.1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