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이런 인고의 시간을 지나는 것인가
"지금 시세가 한 20억 정도 되고, 노량진 뉴타인이 완성되면 조만간 30억, 40억 넘는 입지가 될 거야..."
5년 전 전 직장의 동료이자 친한 형은 자랑과 허세가 가득한 사람이었다. TMI라고 하는 것이 항상 넘쳤고, 다른 사람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정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그 모든 것은 본인의 열등감과 자격지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열등감은 자랑과 허세로 덮여, 학벌과 연봉 그리고 자신의 자산을 드러냄으로써 자존감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의 시작은 익히 알고 있는 지주택이라 불리는 투자였다. 물론 내가 했다는 뜻이 아니고, 그 형이 말이다. 10년도 전에 돈은 없고, 열등감은 있고, 수입도 대학 동기들 대비 좋지 않았던 그 형은 어딘가에서 들은 이야기로 서울에 지주택에 투자를 하였다.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지주택이 그러하듯 초기 투자금은 굉장히 적게 들어가서 내집마련을 꿈꾼 셈이다.
나 역시 한때 지주택에 눈이 멀어, 달콤한 유혹에 넘어갈 뻔한 적이 있었던 터라 그 계약이 얼마나 쉽게 넘어가서 사인을 해버리는지 알고 있다. 그렇게 그 형은 당당히 사인을 했고, 그 이후로 고난은 시작이 되었다. 사업은 지지부진하였고, 알박기하는 사람 탓에 동의서 사인을 못 받는 등, 애초에 약속한 날짜가 지켜지지 못한 채 사업은 계속 순연되고 있었다.
중간에 팔려고도 했다고 한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말이다. 하지만 본인만 힘들었으랴. 동일한 지주택에 투자한 다른 사람들 역시 매물을 다 던졌고, 그로 인해 원금손실과 투자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원금만이라도 건지려고 했던 그 형은 차마 부동산에 시세보다 낮게 올릴 수는 없었고, 그렇게 수많은 저가 매물에 묻혀 버린 채 시간은 흘러갔다.
회사 생활이 마침 당시 바빴던 터라 미처 신경을 못쓰게 되었고, 시장의 상황은 서서히 변해 가기 시작했다. 사업은 형이 인지하지 못한 채 절차를 서서히 밟아가고 있었고, 시간은 자연의 섭리대로 그저 흘러만 갔다. 어느새 10년이라는 시간은 훌쩍 흘러가서 이주와 철거가 시작되고 땅다지기가 시작되어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지주택에 투자했다고 양가 부모님, 그리고 아내로부터 온갖 질타와 멸시를 받았던 그 형은, 안그래도 열등감 덩어리였는데 투자까지 실패했다고 괴로웠지만. 이제는 당당히 어깨를 펴고 다닌다. 이제는 본인이 부동산 전문가라도 되는 양 주변에 이래라저래라 설파를 하고 다니는 지경이다. 서울 아파트의 어느 지역을 이야기하면 시세부터 아파트 명까지 읊을 정도로 전문가 행세를 하고 다닌다.
본인의 우월감을 들어내고 싶었던 지, 내가 사는 아파트를 물어보았고 그대로 이야기를 하였다. 더 깊이 묻는 질문들을 피하지 못한 채, 얼마가 들어갔고, 언제 매매를 하였는지까지 알게 된 그 형은 온갖 조언과 투자 물건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말이 조언이었지, 본인의 우월감을 과시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문제는 그 이야기를 들었던 당시의 나는 힘이 들었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 후 굉장히 힘들게 모은 돈과, 아내의 돈까지 합쳐진 근로소득들이 부동산 하나에 모두 투자가 되었고, 상당히 큰 금액으로 대출을 받았던 터라 부동산 하락기의 시세 하락은 멘털적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부동산 대세 하락기에 유독 나의 집 시세만 크게 하락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자, 인생전반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현실의 하루하루 보내는 생활은 전혀 변함이 없었음에도, 마음의 변화만으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다.
매매한 금액대비 5억까지 하락하자, "이제 돈을 열심히 모으면 뭐하나. 이렇게 다 날려 먹는데... 그냥 쓰고 살자. 나는 투자로서는 더이상 가망이 없다."라고 자책하며, 지난 세월 동안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던 나는 돈에 대한 배신과 허망함에 개념 없이 인터넷 주문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그 형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급격하게 무너지는 멘털 속에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글을 쓰고 있는 2015년 11월 맞이하게 되었다. 서울에 투자한 나의 집은 재건축을 추진함과 동시에 부동산 활황기와 겹쳐 가격에 날개를 단 듯 하루하루 시세가 상승하였다. 매주 KB국미 시세가 바뀔 정도로, 부동산 시작은 그야말로 불장이었다. 계속되는 정책에 더이상 집을 사기 힘든 여건으로 바뀜에 따라, 불나방처럼 매수자들은 달라붙었고,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새 아파트로 변할 재건축 투자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였다.
몇 주 만에 몇억이 오를 정도로 기이한 현상을 느끼며, 한편으로 기쁘지만,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하였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술이 찌들여 인생의 허망함을 노래하였는데 어느새 지금의 나는 술도 끊고, 운동도 하고 건전한 정신과 신체로 하루하루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사람이 돈에 웃고 울수가 있는 것인가.
6억까지 급락하였던 집은 13억까지, 그야말로 수직상승을 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실력이 아닌 그야말로 세상의 운이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이때 갑자기 그 형이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닐 터. 그 형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는 씁쓸한 미소가 번진다. 기쁘지만, 지난 세월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마냥 즐길 수는 없는 그런.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내가 사는 지역과 아파트명이 회사 명함보다 더 중요한 시대로 바뀌어 버린 지금. 과거에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수많은 우연과 운속에 지금이 완성되어 있는지 모르는 우리는. 그저 부러움과 시기, 질투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면면히 살펴보면 각자의 서사가 있고, 인생역전의 시기가 다 존재한다.
부동산 때문에 울기도 했지만, 부동산 덕분에 다시 웃기도 하는 나의 인생이 재밌기도 하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