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친하게 지내는 것도 문제야
단지 앞 상가. '한 개, 두 개, 세 개,...' 부동산 중개사무소의 개수를 헤아리고 있다. 맙소사. 단지 내에 있는 상가 9개 중 8개가 부동산 사무실이다. 하나의 단지 안에 이렇게나 많은 부동산이 있다니. 내 물건을 어디든 부탁해도 네이버 부동산에 올라가는 건 똑같은데, 아무 곳이나 한곳에 내 집 매물을 내놓아도 되지 않을까?
믿고 한곳에 맡겼더니...
사람을 잘 믿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큼은 믿고 같이 가는 편이다. 첫 번째 집에서 두 번째 집으로 갈아탈 때 알게 된 부동산 중개사분은 부부가 같이 부동산중개를 하면서 성심성의껏 중개를 해주었었다. 그때 인연이 되어 '혹시 다음에 거래할때도 이곳에서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 서울에 위치한 아파트로 갈아타기위해 집을 팔기로 결심하자 떠오른 부동산은 2년전 그 부동산이었다.
두 번째 집으로 갈아타고 나서도 고마운 마음에 가끔씩 부동산에 들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혹시 또 내가 이사갈수 있으니 그때 믿고 맡기려는 마음과, 중간중간 부동산의 분위기가 어떠한지 파악하려면 친해져야겠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으레, 부동산 관련된 유튜브 콘텐츠를 보면 부동산 공부할때 해야할 사항중에 '부동산 중개사와 친해져라'라는 국룰을 말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부동산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부린이 이였기에 전문가의 말을 따르기로 했고, 부동산 중개사와 친해지면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딱히 손해볼것도 없는것이었다.
한 사람을 믿고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쭉 함께 하는 건 좋다. 하지만 이 자본주의 사회는 철저히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 돌아간다. 여기서 나는 너무 큰 사실을 간과한 게 있었다. 친해진 중개사 사장님도 장사꾼이다는 사실이다. 그들도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에 기반해서 움직이지, 나를 위해서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렇게 세 번째 집으로 갈아타려고 할 때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되었다. 바로 나의 매물을 이 친한 부동산에만 내놓은 것이다. 당시에는 믿고 맡길 수 있는 한 곳에 내놓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효과적이라 생각이 들었다. 나의 집을 가장 좋은 가격에, 우선적으로 내 집을 팔아줄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매물은 확실히 좋은 매물이었다. 집 내부도 깔끔했고, 리모델링도 진행했을뿐더러, 초등학교 입구와 엎어지면 닿는 초품아 동으로서, 층마저도 좋았다. 집을 팔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른 매물보다도 우리 집 매물이 훨씬 더 상품 가치가 높은 건 틀림없었다. 게다가 갈아타려는 서울 집이 저 멀리 도망갈까 봐 시세보다 조금 싸게 내놓았으니, 중개소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매물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당시를 돌이켜 보니 그랬다는 것이고, 정작 당시 매물을 내놓을 때는 나의 집이 얼마나 경쟁력이 있고, 시세보다 싼지에 대해 감각이 없었다. 내가 그저 알 수 있는 것은 네이버 부동산에 올라와 있는 실거래 기준으로 우리 집을 조금 비싸게 내놓았다는 것이고, 다른 매물 대비 로열동 로열층이니 조금 더 비싸게 받아도 되겠다 정도의 생각뿐이었다. 심지어는 이 정도 가격에 팔면 조금 미안하고 욕심부리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실거래로 가격이 찍히는 시점은 실제 거래가 발생하는 시점과 차이가 있다. 만약 실거래가 9억이 마지막 거래라고 한다 하더라도 실제 시장 분위기는 9억 5천에 거래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는 국토부 실거래에 즉각 반영되지 않는다. 부동산에서 신고하는데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실거래 데이터만 보고 얼마에 팔지를 결정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여러 부동산을 돌아다녀보면서 분위기를 파악해서 얼마에 팔지를 결정하여 매물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했어야 했다. 친했던 부동산이 있다고, 단순 '의리' 때문에 그곳 한 곳에만 믿고 나의 매물을 맡긴다면 이 경쟁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세대로 값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의리'는 '의리'고, 친했던 부동산뿐만 아니라, 조금 더 발품을 팔고 여러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저 XX 아파트 XX동 XX호 사는 사람인데요. 집 좀 팔려고요. 얼마 정도에 내놓으면 팔릴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게 여러 군데 부동산을 들려 같은 질문을 반복했더라면, 실제 부동산 분위기도 파악하고 얼마 정도에 거래되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았을까? 국토부 실거래에 찍히는 데이터가 아닌 현장에서 실제 거래되고 있는 가격과, 수요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현장 분위기를 피부로 확 느낄 수 있었을 터인데.
결국 이 부동산은 실제 거래되고 있는 가격보다 내가 싸게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 사장님, 이보다 더 불러도 팔릴거에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들은 내가 돈을 더버는것에 관심이 없고, 거래를 빨리 성사시켜 수수료를 받는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미안할 필요가 없다
중개사도 결국 수수료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거래가 결국 성사되어야 수수료가 나온다는 뜻이다. 거래가 성사되려면 팔려고 하는 사람과 사려고 하는 사람의 가격 접점을 잘 협의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팔려는 사람은 비싸게 팔려고 한다. 그러면 "사장님, 그렇게 비싸게 팔 수 없어요. 지금 분위기 안 좋아요. 더 싸게 내놓아야 돼요"라고 말한다. 매도자가 비싸게만 팔려고 하면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려는 사람은 싸게 사려고 한다. 그러면 "사장님, 그 가격이면 살수가 없어요. 지금 분위기 얼마나 치열한데요. 사려고 하는 사람들 줄 섰어요. 조금 더 비싸게 주셔야 돼요. 그나마도 지금 사려는 사람이 계약금 넣기 일부 직전이에요." 라며 팔려고 하는 사람과 사려고 하는 사람 사이에서 가격의 중간지점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비싸게 팔려는 사람의 가격은 낮추고, 싸게 사려는 사람의 가격은 올려서 결국 거래가 성사되면 부동산 중개사는 돈을 번다. 이들의 이런 장사적인 마인드를 애초에 이해했더라면 좀 더 좋은 현명한 거래를 했지 않았을까? 한 곳에 믿고 나의 물건을 맡기다 보니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가격보다 싸게 집을 내놓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실거래로 찍혀 있는 가격보다 조금 비싼 가격이었기에 그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마지막 실거래 가격보다 4,5천만 원 더 높게 거래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역시 실거래 가격은 한발 느리다.
한 곳의 부동산에만 매물을 내놓으면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집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내가 내놓은 금액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친하게 지낸 부동산이 이런 고객들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 상관없지만, 집을 구하는 사람은 여러 부동산을 들락날락거린다. 어떤 부동산은 좋은 매물을 들고 있는곳이 있고, 어떤 부동산은 좋은 고객을 들고 있는 곳이 있다. 결국 자신기 가진 매물을 최대한 많은 곳에 노출해 놓아야 나의 매물에 맞는 임자를 찾을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었다.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다. 그간 투자를 잘했다고 생각하다가 한순간에 자산을 잃을수도 있고, 지금까지 잃다가도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재기를 할수도 있는것이다. 유튜브와 인터넷에서 조언하는 전문가들의 조언들이 모두 나의 살아있는 경험으로 되면 참 좋겠지만, 본인이 직접 경험해 보지 않는이상 그런 전문가의 조언들은 나의 피와 살이 되지 않는다. 결국 밥상을 차리고 숟가락을 뜰때는 나의 신체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