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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우 Oct 17. 2020

모험에 대한 열망과 안정적인 삶에 대한 욕구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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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부터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더 실망하게 될 것이다. " - 마크트웨인


4월 3일 수요일에 케냐에 왔으니, 벌써 거의 5주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매일 달리고, 콘텐츠를 만들며, 낮잠을 많이 자고 있습니다. 더해서, 2015년 이텐에서 마라토너들과 살면서 훈련했던 경험을 쓴 <케냐마라토너들은 천천히 뛴다>(PUBLY)를 종이책으로 옮기는 작업도 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다시 케냐에 온 것에 대한 이야기를 종이책 마지막 쳅터에 담기로 했습니다. 이 챕터를 써서 출판사에 전해야 했던 것이 저번 주였는데, 그 글을 아직 시작도 못 하고 있습니다.


사실  케냐에 가는 준비를 하는 동안, 그리고 또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도 케냐에 다시 가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달리기를 더 잘하고 싶어’ 부 터, ‘브로콤 캠프에서 훈련하는 선수들과 같이 훈련하고 싶어’ 그리고 ‘좋은 달리기, 건강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등 다양한 이유가 떠오르긴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는 머리가 이해할 수 있는 연결고리들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느낌입니다. 이미 현재 진행 중인 행위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서 덧붙이려고 하는 것이죠.


그렇게 정확한 이유를 덧붙이지 못하다가, 나이로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이유가 필요할까? 나에게 이건 ‘그냥’ 해보고 싶은 도전이고, 모험인데.”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무엇인가를 할 때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했습니다. 대학교 때 물리를  공부한 건 현실 세계의 기본 현상들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즐겁고,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대학원에서 환경 공학을 공부한 건, 에너지와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015년  여름에 케냐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들의 비밀을 훔쳐내어 그들보다 빨리 달리고 싶다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죠.


하지만 이번에 케냐에 온 명확한 이유는 지금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무엇인가 명확하게 이루어야 하는 압박을 느끼기  싫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곳에 온 명확한 이유가 없다면, 이곳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않고 가도, 책임질 것이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거의 지구 반대편까지 온 행위에 대한 책임 회피를 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 이유를 붙여야 한다면, ‘지난 6년간  이어온 달리기를 더욱 깊이 경험하고,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성과 논리의 검열을 거친 명확한 이유가 동반된 행위들로만 이루어진 삶은 익숙한 삶의 범주 안에서만 존재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속해 있는 사회와 문화로부터 학습한 사고방식의 틀 안에 갇힐 수 있죠. 저가 그렇게 살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보았을 때  ‘올바르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냥’ 마음이 끌려서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은 우 순위에서 대부분 밀려 나갔었죠. 겉에서 보았을  때는 큰 실패를 하지 않았고 꽤 성공적이고 올바른 삶을 살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2015년에 케냐에 처음 갔던 것은, 달리기라는 원초적 동기의 힘을 빌려 이성과 논리의 틀 안에 갇혀 있던 삶을 그  밖으로 확 내던져 보았던 작은 실험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짓을 해본 것이죠. 감사하게도 틀 밖에서의 삶이 상상한 것만큼  위험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물론 틀 밖으로 너무 벗어나게 되면 모험에서 오는 기대와  흥분이 큰 부담과 불안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고요.
 
케냐에 다녀온 후, 모험에 대한 열망과 안정적인 삶에 대한 욕구 사이에 있는 경계선에서 중심을 잡고 사는 방법을 계속  실험해보았습니다. 3년 동안 안정적인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저녁 시간과 주말에는 모험을 시도했습니다. 경계선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춤을 추면서, 내가 행복한 리듬과 공간을 찾고자 했습니다.
 
이 연습에서 생긴 자신감이 이번에 다시 케냐에 오는 결정을 하게 도와주었습니다. ‘경계선에서 모험 쪽으로 조금 더 가서, 3개월만  여행을 하고 오자’라는 마음을 먹은 것이죠. 3개월 정도의 시간은 ‘안정적인 삶으로 무리하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만큼  짧다’라는 믿음이 있었고, 또 모험에 몰입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돌아온 케냐에서 저보다 훨씬 잘 달리는 선수들과의 훈련은 쉽지 않습니다 (초등학생으로 돌아가서 고등학교 형들과 축구 하는  느낌입니다). 같이 훈련을 나가면 매일 꼴찌로 들어오고 있죠. 어제도 ‘easy’ run 을 같이 갔는데, 11km를  2,400m의 고지대에서 4:07분/km 페이스로 뛰더군요. 저는 4:36 정도의 페이스로 저의 ‘easy’ run을 했습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뛰다가 힘들어서 자주 걸었던 코스인데, 여유 있게 숨을 쉬면서 완주한 것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고지대에  몸이 적응했고, 몸과 마음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이 분명히 느껴집니다.
 

많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도 예상외로 즐겁습니다. 이곳에서의 일상과 훈련 과정을 촬영, 편집하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자주 올리는데요. 글과 사진으로 공유하는 것에서는 느낄 수 없던 색다른 재미를 느끼고 있고,  새로운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배워가는 과정이 재미있어서, 계속 꾸준히 해보려고 합니다. 뉴스레터를 케냐에 와서 시작했는데요. 덕분에  한 주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알찬 시간을 보냅니다. 물론 매주 ‘마감일’에서 오는 압박감도 느끼고요.
 

이러한 모험의 시간 속에서 무엇인가 새롭고 이질적이면서도 익숙한 것이 튀어나오는 것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달리기, 감사함,  건강같이 익숙한 주제도 좋고, 다른 새로운 주제도 좋습니다. 결국 모두 제 삶 안에서 연결될 테니까요. 새로운 생명력을 가진  것들이 꿈틀꿈틀 태어나고 있는 것이 느껴지긴 합니다. 이것들이 어떤 모양새를 갖고 세상에 나올지는 2개월 후, 혹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겠지만요.
 

중학교 철학 시간에 ‘너 자신을 알라’(Know yourself)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기억납니다. 당시의 저는 ‘나의 어떤  부분을 알라는 거지?’ 하고 생각하다가, 모르겠다 하고 축구를 하러 나갔을 겁니다. 그런데 갈수록 이 한 문장의 힘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계속 변화하기에, 계속 나를 알아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익숙하고 안정적인 공간과 모호하고 위험하기도 한 공간 사이의 경계를 드나들며 나를 발견하고, 알아가며, 확장해보려 합니다. ‘나를  알아가는’ 일상과 모험이 가득한 나날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김성우 드림


달리기에 필요한 지구력 늘리는 방법


 ‘저질 체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의 체력에 맞지 않게 달리기를 하다 보니 내 체력이 ‘저질’로 느껴질 뿐이죠. 많은 분이  자신의 페이스에 맞지 않게 달리기를 하면서 기량 향상이 잘 안 되고, 부상을 자주 겪는 것을 보곤 합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5분러닝팁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킵쵸게의 런던 마라톤 우승


킵쵸게가 마라톤의 역사를 뒤엎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런던에서 역사상 두 번째로 빠른 마라톤 기록(2:02:37,  2:54/km)을 세웠고, 지금까지 12번 뛴 마라톤 대회에서 11번째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마라톤 거리를 2시간 안에 뛰는 시도를 올해 가을에 한다고 선언했네요. 저는 킵쵸게가 빨리 케냐로 돌아와서 그를 인터뷰 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해봐야죠!). 그가 마라톤을 2시간 이내로 달리기 전에, 그의 2년 전의 노력을 담은 멋진 다큐멘터리를 꼭 보시기 바랍니다. 눈물이 나올지도 몰라요..!


진서님과 체린 선생님의 이텐 방문
  

멋진 두 분이 이텐을 방문하셨습니다. 같이 케냐 음식을 먹고, 달리기 하고, 저녁에는 은하수를, 아침에는 일출을 보며 이텐의 생활을 즐기셨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사파리도 다녀왔고요. 체린 선생님의 인스타그램진서님의 블로그를 통해 그들이 경험한 케냐와 이텐을 엿보시기 바랍니다.


이번주의 음악


달리기와 건강에 관한 콘텐츠 말고, 저가 좋아하는 음악도 가끔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번주에 소개할 밴드는 M83입니다. 저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을 풀로 들어보세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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