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과 계절의 길목에서 보내는 편지
안녕, 눈이 아릴 만큼 파란 뉴욕의 가을 하늘을 처음 올려다본 소감은 어때? 워싱턴 스퀘어 공원의 “개선문”을 지나는 동시에 이십대라는 책의 첫 장이 펼쳐질 거야. 팔에 스쳐오는 바람이 이렇게나 다정한데, 넌 뭐가 그렇게 떨리는지 책가방을 꼭 쥐고 있네. 매일 밤, 턱 끝까지 차오른 의심이 울음이 되어 새어 나갈까 입술을 깨물고 읊조리던 기도를 신이 들으셨는지 꿈에 그리던 도시 한 복판에 서 있구나.
네게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까, 수없이 고민했지만 쉬이 답을 내릴 수 없어. 여전히 현명하지 못한 어른인 탓도 있지만, 릴케의 말처럼 삶은 현재의 물음을 살아가며 해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과정이니까. 그 길목에서 네가 체험하고, 사랑하고, 상실하는 것들을 온전히 주장하게 되기를. 그러려면 먼저 그것들을 살아내야 해. 넌 지금 순수와 혁명의 시절, 그 중심으로 향하고 있어. 아는 바가 없기에 어디든 직선으로 뛰어들어 열렬히 흡입하겠지. 영원한 건 없으니 너무 목숨 걸지 말라는, 너보다 더 산 사람들 말은 흘려 들어. 찰나에 무한을 심는 마음으로 지금을 누려. 절망을 씹어 삼키며 잠든 다음 날이면 발치할 수 없는 희망이 자라나 있을 거야. 매혹하는 손길을 따라가. 존재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파도를 만나면, 스스로를 내던져 봐. 태양을 희구하다 눈부신 색을 입은 해바라기처럼 편애의 대상이 있다는 건 삶을 찬란하게 만들어주거든.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야.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기억이 때로는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는 걸.
생의 페이지가 넘어가고 한 장이 끝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 쓰이고 또 사라질 거야. 그들과 함께 한 여름의 정오같은 추억들을 만들어. 락앤롤에 몸을 맡기고, 시험 공부하다 도저히 못 견딜 즈음에는 얼굴만한 피자를 시켜놓고 수다를 떠는 거야. 취한 채로 맨하탄 밤거리를 누벼. 애비뉴 사이를 밤새 지키는 가로등 불빛과 경주하면서. 이십대란 자고로 돌아봤을 때 할 얘기가 많아야 제대로 산 거거든. 그 중 절반이 “그때 내가 미쳐서 말이야”로 시작하면 더 좋고. 미숙했던 밤으로 시계바늘을 돌리고 싶은 때가 종종 찾아 올 거야.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때 그 감정을 한번 더 느껴보고 싶어서.
너와 그들은 서로의 삶을 흠모하고 헤쳐 놓겠지. 때로는 망가뜨리고 동시에 구원하면서. 말갛던 속살에 하나 둘 생겨난 도시의 기념품같은 흉터들을 가만히 마주볼 수 있는 날이 올 테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기를. 시간이 흘러 네가 너를 잘 알게 되었을 때, 닮은 눈을 지닌 사람이 불쑥 나타날 거야. 그 속에 담긴 빛과 상처의 무늬가 쌍둥이처럼 같아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생을 다 바치고 싶을 지도 몰라. 그때가 오면 도망치지 말고 사랑한다고 말해. 삶을 덜 외롭게 만드는 건 업적도, 영광도 아닌 너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 통역이 필요 없는 존재 단 하나뿐.
마지막으로, 너처럼 시와 술을 좋아하고 주식 얘기만 나오면 하품하는 인간은 애초에 성공하기 힘드니까 괜히 남들만큼 살겠다고 자신을 속이지 마. 그럴듯한 생의 공식이라는 폭력을 이겨내고 삶과 죽음에 대한 너만의 답을 써 나가기를. 책의 마지막 장, 그 서툰 모서리에도 물음표과 느낌표가 가득하기를 바랄게. 기억해, 스물의 넌 신이 질투할 정도로 아름답다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