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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은 Oct 28. 2022

스무살의 나에게

시절과 계절의 길목에서 보내는 편지

안녕, 눈이 아릴 만큼 파란 뉴욕의 가을 하늘을 처음 올려다본 소감은 어때? 워싱턴 스퀘어 공원의 “개선문 지나는 동시에 이십대라는 책의  장이 펼쳐질 거야. 팔에 스쳐오는 바람이 이렇게나 다정한데,  뭐가 그렇게 떨리는지 책가방을  쥐고 있네. 매일 ,  끝까지 차오른 의심이 울음이 되어 새어 나갈까 입술을 깨물고 읊조리던 기도를 신이 들으셨는지 꿈에 그리던 도시  복판에  있구나.

 

네게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까, 수없이 고민했지만 쉬이 답을 내릴 수 없어. 여전히 현명하지 못한 어른인 탓도 있지만, 릴케의 말처럼 삶은 현재의 물음을 살아가며 해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과정이니까. 그 길목에서 네가 체험하고, 사랑하고, 상실하는 것들을 온전히 주장하게 되기를. 그러려면 먼저 그것들을 살아내야 해. 넌 지금 순수와 혁명의 시절, 그 중심으로 향하고 있어. 아는 바가 없기에 어디든 직선으로 뛰어들어 열렬히 흡입하겠지. 영원한 건 없으니 너무 목숨 걸지 말라는, 너보다 더 산 사람들 말은 흘려 들어. 찰나에 무한을 심는 마음으로 지금을 누려. 절망을 씹어 삼키며 잠든 다음 날이면 발치할 수 없는 희망이 자라나 있을 거야. 매혹하는 손길을 따라가. 존재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파도를 만나면, 스스로를 내던져 봐. 태양을 희구하다 눈부신 색을 입은 해바라기처럼 편애의 대상이 있다는 건 삶을 찬란하게 만들어주거든.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야.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기억이 때로는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는 걸.

 

생의 페이지가 넘어가고 한 장이 끝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 쓰이고 또 사라질 거야. 그들과 함께 한 여름의 정오같은 추억들을 만들어. 락앤롤에 몸을 맡기고, 시험 공부하다 도저히 못 견딜 즈음에는 얼굴만한 피자를 시켜놓고 수다를 떠는 거야. 취한 채로 맨하탄 밤거리를 누벼. 애비뉴 사이를 밤새 지키는 가로등 불빛과 경주하면서. 이십대란 자고로 돌아봤을 때 할 얘기가 많아야 제대로 산 거거든. 그 중 절반이 “그때 내가 미쳐서 말이야”로 시작하면 더 좋고. 미숙했던 밤으로 시계바늘을 돌리고 싶은 때가 종종 찾아 올 거야.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때 그 감정을 한번 더 느껴보고 싶어서.

 

너와 그들은 서로의 삶을 흠모하고 헤쳐 놓겠지. 때로는 망가뜨리고 동시에 구원하면서. 말갛던 속살에 하나  생겨난 도시의 기념품같은 흉터들을 가만히 마주볼  있는 날이  테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기를. 시간이 흘러 네가 너를  알게 되었을 , 닮은 눈을 지닌 사람이 불쑥 나타날 거야. 속에 담긴 빛과 상처의 무늬가 쌍둥이처럼 같아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생을  바치고 싶을 지도 몰라. 그때가 오면 도망치지 말고 사랑한다고 말해. 삶을  외롭게 만드는  업적도, 영광도 아닌 너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 통역이 필요 없는 존재  하나뿐.

 

마지막으로, 너처럼 시와 술을 좋아하고 주식 얘기만 나오면 하품하는 인간은 애초에 성공하기 힘드니까 괜히 남들만큼 살겠다고 자신을 속이지 . 그럴듯한 생의 공식이라는 폭력을 이겨내고 삶과 죽음에 대한 너만의 답을  나가기를. 책의 마지막 , 서툰 모서리에도 물음표과 느낌표가 가득하기를 바랄게. 기억해, 스물의  신이 질투할 정도로 아름답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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