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위하여(For the Story)

제1장 이번 생엔... #1 눈을 감으면 도시는 물에 잠긴다 -23

by 단영화

“도착했어!”


오래된 트럭을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들 무렵 C가 천천히 속도를 낮췄다. 규칙적으로 뒤통수를 후려치던 파도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C는 신난 망아지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면서 느릿하게 하강했다. A의 시야에 어둑한 풍경이 들어왔다. 맨질맨질하고 투명한 막 안에 도심지의 모습이 드러났다. 도시를 감싼 거대한 막은 바늘 하나 꽂을 만한 틈도 없었다.


“살짝 불편할 거야.”


둘의 발이 막 위에 닿을 즈음, C는 지나가듯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뭐요?”


A가 상황을 인식하기도 전에 막에 닿은 발부터 물보라가 일어났다. 빠르게 두 인영을 감쌌다. 민들레 홀씨처럼 밤의 세계를 훌훌 날아다니던 가벼운 느낌이 사라졌다. 양발에 20kg짜리 무거운 추를 달아놓은 듯 무거웠다. 막의 껍질이 열리고 둘은 막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탱글탱글한 과일 젤리 속을 지나는 것처럼 모든 게 느려졌다. 밀도 높은 막의 안쪽은 입 속에서 튀는 별사탕처럼 빛이 반짝였다. 도시에서 흘러나온 빛을 한 군데 모아 흩뿌려 주는 듯했다.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쏟아지는 빛무리가 사라지고 시력이 돌아왔다. 뿌옇게 핀 물안개가 둘을 품은 채였고 도시를 감싼 막은 다시 열린 입구를 닿았다. 몽실몽실하고 뽀얀 안개는 흡사 실크(Silk) 같았다. 부드럽고 가볍게 피부를 스쳤다. 둘은 다시 천천히 도시로 하강했다. 어느 정도 지상에 가까워지니 안개는 둘을 뱉어냈다. 안개 자락이 멀어지는 둘을 아쉽게 잡고 있다 놓아주었다. A는 멀어져 가는 하얀 안개의 일렁임을 잠시 바라보았다.


“여기가 바로 밤의 세계 남서쪽이야.”


발랄한 C의 목소리가 들렸다. A는 몸을 돌려 하강하는 도시를 보았다. 도시를 감싼 막 밖에서 보던 어두컴컴했던 풍경이 아니었다. 연한 물빛 도는 초록과 맑은 하늘색, 연한 보라색이 뒤엉킨 하늘 아래 샛 노란색 동글동글한 태양이 대지를 비추며 감귤색 햇살을 겹겹이 발레리나의 튜튜 스커트처럼 둘렀다. A는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 아래로 점점 내려가면서 쨍한 햇살은 도시의 그림자에 자락을 군데군데 거두었다. 도심지에 내려앉으니 어릴 때 먹었던 과일맛 사탕처럼 아주 작게 보였다.


“와... 여기도 밤의 세계라고요...?”

“어때? 풍경이 굉장히 아름답지?”

“어둡고 음습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와~ 여기도 밤의 세계라고요???”


상상도 못 한 터라 A는 연신 감탄을 이어갔다. 오가는 차가 없을 뿐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에 보도블록, 반듯하게 그린 횡단보도까지 모두 익숙한 풍경이었다. 흡사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세트장 같은 하늘과 조명처럼 쨍한 태양이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했다. A가 가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아름다운 색감의 풍경이었다. 두리번대며 골목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주택가 골목 한편에 자란 강아지풀이 옅은 물결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고요한 주택가 어딘가에 있을 법한 한적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A는 어쩐지 마음이 푸근해졌다.


“와... 제가 사는 동네보다 좋아 보여요~”


기분이 산뜻해진 A는 양팔을 벌려 한껏 밤의 세계 공기인 물을 들이마셨다. 공기처럼 들이켜니 콧구멍에 단단한 압박이 몰려왔다. 본의 아니게 얼른 숨을 내뱉으니 하얗게 물보라가 일었다. 도시의 따뜻한 기운이 깊숙이 흘러들어온 느낌이었다.


“그래봤자 밤의 세계야.”

“이렇게 아름다운데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라는 말이 있지.”

“전 살면서 이런 풍경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기분이 한껏 고양된 A는 양팔을 벌린 채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등 뒤에 묶은 우단 리본이 칭칭 감기니 C는 리본 끝을 놓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A는 기분에 도취되어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으면서 이 집 저 집 기웃거렸다. 집집마다 형형색색 잘 가꾼 정원이 정갈했다. C는 반쯤 이성을 잃은 A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넌 어디 가서 함부로 남의 말 믿고 그러지 마라. 사기당하기 딱 좋게 생겼어. 쯧쯧-”

“제가요~? 어딜 봐서요~?”


C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A는 C의 비아냥에도 굴하지 않고 영화 세트장처럼 크고 잘 가꾼 집을 둘러보았다. 그중에 한 집이 눈에 띄었다.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키 작은 나무 덤불 울타리를 친 아담한 집이었다. 어린아이만을 위해 지은 집처럼 작달막했다. 대문도 거의 A의 키 정도였다. 대문을 들어가니 사탕이나 젤리처럼 생긴 조약돌이 마당에 콕콕 박혀 하얀 자갈 깔린 바닥이 판 초콜릿처럼 보였다. 조약돌을 밟고 현관 앞에 섰다. 현관도 A가 머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았다. 부드러운 이끼색 문에 반짝이는 황금색 손잡이가 달렸다. A는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잡았다. 힘을 주니 손잡이가 눌리면서 문이 살짝 열렸다.


끼-익-


사용 흔적이 전혀 없는 상태의 문에서 오래된 듯한 마찰음이 들렸다. 찢어질 듯한 파열음이 문 안에서 울렸다. 힘을 줘 안으로 들어가려던 A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좋은 생각이야. 들어가지 않는 게 좋아.”

어느새 C가 A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 C는 창백하고 가느다란 손에 힘을 줘 A의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네...?”


당황한 A가 고개를 돌려 C를 쳐다보려 할 때였다. 문 안에서 한기가 몰려왔다. 발끝부터 얼음장 같은 냉기가 스멀스멀 타고 올라왔다. A는 숨이 턱 막혔다. 영하의 바다에 풍덩 빠진 듯 폐가 딱딱하게 굳어 숨이 가빴다. 간신히 숨을 내뱉으니 차갑다 못해 하얗게 얼어붙은 얼음 조각이 물살을 타고 미끄러져 나갔다. 이내 문손잡이를 잡은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손이 아니라 문 안에서 무언가 강한 힘이 문을 흔드는 듯했다. 사람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소리가 웅웅 울리며 A의 몸을 뒤흔들었다. 내장이 흔들리니 뱃속에서부터 불안이 몰려왔다. 겁에 질린 A는 안색이 창백했다.


“걱정하지 마. 곧 손잡이에서 손을 놓을 거야.”


귓가에 C의 목소리가 울렸다. 거칠고 낮은 울림이 퍼지면서 A의 몸속을 헤집는 알 수 없는 떨림이 잦아들었다.


덜컹! 덜컹!


말과는 반대로 문 안의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반대쪽에서 강한 힘으로 A를 당겼다. 덜컹거릴 때마다 A의 몸이 크게 요동치며 당겨졌다. 앞뒤로 울렁이니 C는 더욱 강한 힘으로 A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바닥에 못 박힌 듯 꼼짝하지 않았지만 가느다랗게 떨리는 C의 손가락이 A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끼기-이이-기이이-기익!


문의 흔들림이 줄어드니 이번엔 소름 돋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가느다랗고 작아서 쉽게 들을 수 없는 높은 주파수였다. 순간 A는 콧속이 쨍하고 아팠다. 뜨끈한 액체가 뚝하고 떨어졌다. 당황해서 코피를 닦아냈다. C는 여전히 꼼짝 않고 A의 어깨를 강하게 잡은 채였다. 손잡이를 잡은 A의 손 위로 C의 손을 포개어 문을 고정했다.


“저, 저어...!”

“가만히 있어!”


A는 C의 말대로 꼼짝하지 않았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피는 현관 앞 바닥을 빨갛게 적셨다. 소매로 코피를 훔쳤지만 소용없었다.


쿨럭!


곧 A는 끈적하고 단단한 핏덩어리를 한 움큼 토해냈다. 충격받은 A가 휘청였다. C는 A의 몸을 뒤로 뉘어 자신의 품에 기대었다. 어깨에서 손을 떼 두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강하게 닫았다. A가 문고리에서 손을 떼니 여린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 놀아준다고 했잖아... 배고파요... 엄마... 아파요... 아빠... ”


정체 모를 목소리를 듣고 나서 머릿속이 일렁였다. 어지러움이 심해지고 눈에 찌르는 듯한 고통이 왔다. 어지러움과 고통은 잠시 후 얼굴 전체가 타오르는 것처럼 변했다가 안에서 쥐어짜는 듯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내장이 바깥으로 전부 튀어나올 듯했다. 눈알이 강한 힘으로 뽑힐 듯 당겨졌다.


“아, 아아-악-!!!!”

“제발 좀 닫혀라, 문!!”


C는 문의 작은 틈을 닫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문 안에서 물건이 부서지는 것처럼 우당탕거리는 굉음이 들렸다. 문이 부서질 기세로 흔들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달칵-!


그제야 문이 꼭 닫혔다.


“하아-!!! 와아-! 진짜 죽을 뻔했다!!!”

“쿨럭-! 쿨럭-!”


문이 완전히 닫히니 C는 긴장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기대었던 A는 C 옆으로 비켜 앉아서 연신 기침을 반복했다. 머리에 가해진 압박이 사라지니 비강과 목구멍에 남은 핏덩어리가 쏟아졌다.


“이, 이건 뭐죠...!”

“아아, 말했잖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아무리 아름다워도 여긴 밤의 세계야. 네가 구경한 모든 집은 다 아이들의 집이야.”

“아이들이요...?”

“죽음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형태가 있잖아. 그중에 가장 한이 많고 안타깝고 고생한 아이들이 밤의 세계에 흘러들어오면 대부분 여기로 와. 특히 10살 이전에 된 귀신이 대부분이라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밤의 세계에 흘러들어온 것 중에 신들도 가엽게 여겨 때가 될 때까지 머물게 해주는 유일한 존재니까.”

“... 미리 말 좀 해주지 그랬어요...”


핏덩어리를 전부 뱉은 A는 지쳐서 대자로 나동그라졌다. 중요한 이야기를 뒤늦게 하는 C를 살포시 노려보며 소매로 입가의 핏자국을 닦았다.


“나라면 안 열었을 테니까 당연히 너도 안 열 줄 알았지.”


말인지 방귀인지 모를 언사에 A는 대꾸할 의지를 상실했다.


“하고 많은데 중에 하필이면 꼭 짚어서 여기 오고 싶다며. 밤의 세계에서도 제일 흉흉한 자리를 꼭 찾아오길래 그것도 운명인가 싶었지.”

“제발 제가 밤의 세계 초심자라는 걸 잊지 말아요... 충고나 조언도 팍팍 해주시고요...”


사정으로 C의 무신경이 나아질 수 있을는지 의문이었다. A는 누운 채 고개를 돌려 굳게 닫힌 이끼색 문을 지그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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