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위하여(For the Story)

제1장 이번 생엔... #1 눈을 감으면 도시는 물에 잠긴다 -22

by 단영화

”자, 기왕 밤의 세계에 왔으니 쭉 돌아보며 구경이나 하자고!“


한참 잔소리 폭격을 던지던 C는 언제 그랬냐는 듯 들떠서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매일 보던 데라 어디가 재밌을지 모르겠네.“


C는 좌우로 왔다 갔다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나름 심각한 고민인 모양이었다. 정신 사납게 서성이는 C를 눈으로 좇았다. 창백하고 은은한 달빛을 받아 길고 가늘게 누운 그림자가 바쁘게 허덕였다.


”모르겠다! 설명할 테니까 네가 골라 봐.“


고민하던 C는 성큼성큼 다가와 A의 어깨를 무섭게 움켜잡았다. 창백하고 가느다란 손이 밧줄처럼 낚아채어 A는 낚싯대 끝에 매달린 물고기처럼 애처롭게 퍼덕댔다. 필사적인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C는 A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깊게 넣어 인형처럼 번쩍 들었다.


”밤의 세계는 구분 없는 한 덩어리 어두운 바위 같지만, 사실 구역이 아홉 개야. 은빛 성채를 중심으로 8개 구역으로 나누어 놓았어. 인간 세상에서 지옥이라 부르는 개념과 비슷해. 벌이나 고통받고 회개하고 뭐 이런 종류는 아니지만... 비슷한 종류끼리 분류해 놓는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해. 물은 물끼리 기름은 기름끼리 잘 섞이는 것처럼 말이야. 나처럼 강력한 귀신이 아니고서야 구역을 떠나기 어렵거든. 지구에 인간이 붙어사는 것처럼, 귀신들도 밤의 세계에 작용하는 중력과 비슷한 힘의 작용을 받거든. 썩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지만 지구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일 거야. 성채를 중심으로 북쪽은 춥고 남쪽은 따뜻해. 동쪽은 숲이고 서쪽은 강이야. 북쪽과 동쪽 사이는 계절감 상 환절기 정도야. 겨울에서 봄 사이. 동쪽에서 남쪽 사이는 봄에서 여름 사이야. 당연히 지구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고. 어디부터 가볼래?“


얼마나 신나는지 A의 몸을 번쩍 든 채로 손수 직접 방향을 돌려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자세히 보기도 전에 좌우로 흔들리는 통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C는 한껏 기분이 고취된 상태였다. 무엇이 C를 그토록 기쁘게 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타오르는 불길에 찬물을 붓는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없던 A는 애써 눈을 가늘게 찌푸리며 찬찬히 어두운 풍경을 살폈다.


”그럼 남서쪽으로 가요.“

”오, 왜 남서쪽이야?“

”여름은 덥고 가을은 쓸쓸하니까 적당히 열기가 남아 아쉽고 선선한 바람이 신선한 계절쯤이 좋아요.“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두컴컴한 가운데 어떻게든 미세한 흔적을 찾으려고 점점 더 눈을 가늘게 떠 집중했다. C는 A의 무덤덤한 답을 듣고 잠시 A를 바라보았다.


”좋아. 남서쪽으로 이동하자.“


종잇장처럼 팔랑거리는 A를 내려놓았다. 천천히 아래로 하강하며 두 발이 바닥에 닿으려던 찰나, C는 A의 손을 잡아끌었다. 강한 힘이 A를 당겨 탄력 있는 공처럼 튀어 올랐다. C는 빠른 속도로 물속을 헤엄쳤다. 가늘고 긴 C의 몸이 물살을 가르니 하얗게 물보라가 일었다. 물거품이 C의 손끝에서 달랑이는 A의 숨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숨은 쉴 수 있었지만, A의 얼굴이 자유의지를 지닌 듯 강한 바람에 쓸려 펄럭거렸다. 묵직한 물살의 무게가 실려 볼살이 너울대는 느낌이 퍽 좋지 않았다. A는 힘겹게 C의 옷자락을 잡았다.


”저, 저기요~! C, C씨!“


두어 번 당기니 C는 가볍게 얼굴 위치에 자리한 허공을 돌려 A를 살폈다.


”음? 왜?“

”저도 좀 정상적으로 갈 순 없나요? 어, 얼굴이...“


C는 짐짝처럼 달랑거리는 A를 위아래로 훑었다. 얼굴 위치에 자리한 허공이 느리게 웅웅 돌았다. 가늘게 늘인 몸을 줄여서 잠시 멈춰 섰다.


”뭐가 문제지?“


어두운 밤의 세계 하늘 가운데 멈춰 선 C의 뒤로 창백한 은빛 달이 더욱 커다랗게 보였다. C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길고 얇은 두 팔을 교차해 유심히 A의 동태를 살폈다. C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A를 가렸다.


”... 방금처럼 빠르게 헤엄치는 건 어떻게 해요?“

”아, 귀신들처럼 움직이고 싶은 거야?“

”... 저도 할 수 있어요?“

”뭐... 아마 안 될걸?“

”얼굴 없이 산 게 오래라 잊으셨나 본데 인간은 얼굴에 살과 가죽이 붙어 있어요... 제가 짐짝처럼 비참하게 붙어가지 않을 방법은 없어요?“

”음... 방법...?“


A와 C는 플랑크톤처럼 밤의 세계 하늘을 부유했다. 뜻밖의 요청에 C는 다시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둘은 아주 천천히, 봄바람처럼 살랑살랑 흔들리는 물결을 따라 떠다녔다. A는 자꾸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자연스럽게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어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무릎 관절을 접어 다리를 오므렸다가 활짝 펴니 앞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오..! 안 가르쳐도 할 수 있잖아?“

”네...?“


팔다리를 열심히 휘저으며 움직이는 A를 보고 C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가면 되겠네...!“

”아니, 잠깐만요...! 밤의 세계가 작은 동네 코딱지만 한 마을도 아니고...! C씨처럼 빨리 가는 법을 알려달라고요...!“

”흠...“


C는 다시 얇고 긴 팔을 포개어 고민에 빠졌다. 연신 얼굴 위치에 자리한 허공 바로 아래, 턱 즈음을 검지 손가락으로 반복해서 긁었다.


”하는 수 없지.“


입맛을 다시던 C는 재킷 안주머니에 창백하고 긴 손을 넣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오...!“


뒤적거리던 C는 반가운 듯 화색이 돌았다. 손을 빼니 가느다란 손가락에 빨간색 우단 리본이 반질거렸다.

”아쉽지만 이거라도 쓰면 낫지 않을까?“


C는 리본을 보여주며 싱긋 웃었다.


”... 네...?“


당황한 A는 움직이던 팔다리를 멈추고 C와 우단 리본을 번갈아 보았다.


”그걸 어디다 쓰시게요...?“


대답 없는 C는 헤엄치던 자세 그대로 굳은 A 가까이 다가갔다.


”자, 잠깐만요...! 저, 저기요...!“


당황하거나 말거나 C는 능숙하게 A를 잡고 우단 리본을 칭칭 감기 시작했다. 겨드랑이 밑으로 넣고 어깨와 날갯죽지 사이로 빼낸 다음 허리와 골반을 두른 후 다시 양 옆구리로 빼내 등에 큰 리본 모양 매듭을 묶었다.


”이봐요...! 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

”짐짝도 아니고, 비참하지 않게, 라며?“


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C는 단단히 묶은 우단 리본 반대 끝을 왼쪽 손에 둘둘 감아 묶었다. 당황한 A는 등에 진 매듭을 풀려고 발버둥 쳤다. 흡사 미취학 어린이 산책용 하네스나 반려견 산책 몸줄 같은 꼴이었다. 반대쪽 줄 끝을 잡은 C는 무척 흡족한 듯 만족스러워 보였다. 다시 자세를 잡고 가늘고 길게 몸을 늘였다.


“다시 출발한다!”


C는 시동이 걸리듯 얼굴 위치에 자리한 허공이 엔진처럼 빠르게 빙빙 돌았다.


“자, 잠시만...!


다급한 A는 서둘러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허우적거렸다.


”악...!”


안타깝게 A는 강한 힘에 끌려갔다. C는 속도를 올렸고 A는 차악의 짐짝 같으면서 비참한 상태였다. 여전히 C가 일으킨 물보라가 A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가격했다. 다만 얼굴로 헤엄치는 꼴은 면한 셈이니 최악은 아니었다. A는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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