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고소한, 어쩌면 열두 살 소년 자인의 이야기
부모를 고소하고 싶어요. 끔찍한 세상에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니까.
레바논 베이루트 빈민가. 이곳에 한 소년이 있다. 나이도 모른 채 살아가는 그 소년의 이름은 '자인'이다.
출생 신고도 하지 않았으니,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자인은 맏이로서 많은 동생들을 부양해야 했기에, 일어나자마자 잠드는 순간까지 일을 해야만 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등교가, 자인에게는 그토록 바랐던 소망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자인은 버틸 수 있었다. 자신을 보듬어주는 여동생 사하르가 큰 위로가 돼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하르는 초경을 시작하자마자, 자인이 일하는 슈퍼마켓 사장에게 팔려가듯 시집을 가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자인은 부모에게 거세게 저항했지만, 이내 상황을 바로 잡을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결국 집을 나선다.
뚜렷한 목적지도 없이, 어느 한 노인을 따라가다 다다르게 된 놀이공원. 자인은 그곳에서 청소를 하는 라힐과 그의 아들 요나스와 만난다. 생활은 여전히 궁핍했지만, 자인은 잠시나마 시시한 행복을 꿈꾸었을 것이다.
비와 바람을 막아 줄 집이 있었고, 자신이 보살펴야 할 새로운 식구 '요나스'가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자인을 구원해줄 만큼 관대하지 않았다. 에티오피아 출신의 불법체류자 라힐은 위조 신분증을 구하려던 중 당국에 붙잡히게 되었고, 마지막 인사도 없이 아이들과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또한 자인은 여동생 사하르가 임신 중 하혈을 했으나, 신분 증명을 할 수 없단 이유로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어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게 된다.
자인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여동생의 남편을 칼로 찌르게 되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하게 된다.
또한, 사하르와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자인의 재판 장면에서, 아버지는 가난의 대물림에 대해 말한다. 자신의 부모처럼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는 항변을 듣고 있자니, 그의 많은 아이들과 자인 그리고 사하르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시리아 내전을 겪으며 그렇게 해서라도 빈곤을 벗어나고 싶었던 부모. 딸 사하르의 죽음을 방치해야 했으며, 추모조차 해줄 여건이 되지 않는 부모. 아이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도, 새로운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사하르'라는 이름을 지어주겠다는 부모.
자인은 그들의 부모에게, 다시는 아이를 낳을 수 없게 해 달라는 조건을 건다. 그리고 지독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꿈꿔온 '스웨덴'이 아닌, 소년 감옥에 가게 된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가버나움은 구원의 땅으로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지금의 가버나움은 그렇지 못하다.
지독한 현실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 했던 열두 살 남짓의 소년 자인.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자인은 지금도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자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인이 사하르에게, 요나스에게 베푸는 따뜻한 마음.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권. 그러한 작은 마음들이 자인에게는 거대한 구원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