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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Aug 23. 2022

나는 다정한 등을 가지고 있어

에콰도르 이야기 (2)

휴고는 날더러 마르타네 집에서 지내고 있으라고 했다. 아파트에 입주할 때까지 단 며칠만.


애당초 나는 재단에서 숙소를 제공받기로 돼있었다. 휴고는 그 약속에 따라 내가 지낼 만한 아파트를 리오밤바 시내에 구해뒀다. 다만 집주인이 자릴 비운 탓에 내가 실제로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 했던 상황. 그래서 휴고가 떠올린 임시방편이 마르타네 집이었다. 그가 권하는 대로 나는 마르타네 집에 들어갔. 정말로 단 며칠만 묵고 나올 요량으로.


그런데 내가 마르타네 가족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게 도화선이었다.


작고 동글동글한 마르타 엄마, 크고 동글동글한 마르타 아빠, 젊고 동글동글한 남동생 파비앙, 아름답고 동글동글한 여동생 베로. 마르타네 가족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덩달아 동글동글했다. 어떤 운명적 예감처럼 느껴지던 강렬한 동글동글함. 나는 그 직감믿 며칠 뒤 말했다. 앞으로도 이 집에서 지내고 싶어요. 쭉.


휴고가 마련해둔 아파트에는 거실과 부엌, 방 세 개가 딸려 있다고 했다. 내가 서울에서 살아본 어떤 자취 공간보다 번듯할 공간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마르타네 가족과 함께라면 내가 서울에서보다 더욱 넉넉한 마음으로, 외롭지 않은 마음으로 지내게 리란 확신보다 선명했다. 민은 다. 전까지 갈 것도 없이 마르타네 집의 KO승. 다행히 휴고와 마르타네도 내 제안을 승낙했다. 나의 에콰도르 생활은 시작부터 동글동글했다.


내가 GSD 재단에서 맡은 일들은 잡무에 가까웠다. 재단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의 구석구석을 취재해서 영상물을 제작하는 일, 홈페이지에 업데이트하는 일, 그리고 스페인어로 된 온오프라인 문서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 휴고가 나라는 인력의 ‘실용적인’ 쓰임새를 기대한 게 아니란 건 확실해 보였다. 그는 나에게 재단 사업의 전반을 소개하고 교육하는 일 자체가 나와 재단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 것 같았다.


재단이 원조하는 원주민 여성들과는 연락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직접 그들을 찾아가서 만나고 케어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르타가 그렇게 '찾아가는 서비스'를 시전하며 외근하는 동안, 나는 그녀 곁에 꼭 붙어서 내 취재 업무를 수행했다. 마르타의 버건디색 SUV를 타고 산지 마을들을 탐험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제법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나는 점차 많은 대상들과 친밀해졌다. 내 스페인어 옹알이를 시종일관 주의 깊게 들어주던 마르타. 만날 때마다 내 손을 꼭 잡고 인사해주던 원주민 여성들. 그런 우리를 품고 수호해주던 안데스 산맥의 완전한 품.


재단에서 대출받은 돈으로 목축업을 시작한 여인을 취재한 날이었다. 하얀색 중산모를 쓴 여인이 내 카메라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재단의 발전에 도움 된다면 얼마든지 더 웃어 보이겠다는 듯 관대하게. 그녀가 키우는 젖소도 때맞춰 카메라 렌즈를 돌아봐주었다. 인간들의 사정을 다 이해한다는 듯 시의적절한 포즈를 지어 보이는 신통방통한 젖소.


“La vaca es flaca(젖소가 flaca 하다)!”


마르타가 말했다. 나는 flaca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마르타가 자기의 두 손바닥을 닿을락 말락 붙이며 설명했다. 몸집이 마르고 여위다는 뜻이라고.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 마르타의 설명을 경청했다. 그러지 않으면 한쪽 귀로 들은 단어가 다른 쪽 귀로 흘러나가 버릴 것처럼. 그리고 외웠다. Flaca. 마르고 여위다. Flaca. 마르고 여위다.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까 배운 표현을 써먹었다.


“Ella es flaca(그녀가 flaca 하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이 박장대소했다. 나는 영문을 몰라 눈만 말똥말똥했다. 마르타가 설명했다. Flaca는 동물이나 허물없는 사이의 사람한테 쓰는 표현이라고. 그렇지 않은 사람한테는 delgada라고 하는 게 적절하다고. 나는 또 외웠다. 사람한테는 delgada. 사람한테는 delgada. 세차게 터져버린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식탁 위에 메아리처럼 남아 울렸다.


가족들이 웃을 일은 한동안 넘쳐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내가 저지른 스페인어 실수 때문이었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스페인어 지식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진작에 벗어나 있었다. 혼동에도 지수가 있다면, 리오밤바에서 보낸 첫 한두 달은 내 인생에서 혼동 지수가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을 것. 예를 들면 어떤 날은 가구점 외관에 쓰인 문구를 읽고는 홀로 기겁하는 식이었다. '뭐? 엄마로 만든 의자를 판다고?' Madre(엄마)와 madera(목재)를 혼동한 결과였다.  머릿속의 대혼돈 시대. 20대에 다시 맞는 질풍노도의 시기.


질풍과 노도가 잠잠해진 건 리오밤바 생활 세네 달 차를 지나서였다. 그쯤 됐을 땐 그래도 사정이 좀 나았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고 들리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비슷한 단어들을 헷갈리지 않았고 복잡한 동사 변형을 틀리지 않았다. 가치 있는 건 쉽게 얻을 수 없다고 했던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국어를 배우는 일은 어렵지 도전해볼 만한 일이었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익힌 언어로써 그 사람들과 더욱 긴밀히 부대끼는 매혹적인 순환.


말을 알아듣는 정도가 제법 뛰어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며 자아도취에 빠진 날도 있었다. 오타발로(Otavalo)에 간 날이었다. 키토에서 북쪽으로 구십 킬로미터쯤 떨어진 도시. 그곳은 남미에서 가장 큰 원주민 시장이 서는 것으로 유명했다. 5월의 어느 화창한 토요일. 나는 마르타, 그리고 마르타의 여고 동창 루이사와 함께 오타발로에 갔다.


원주민들이 직접 엮은 직물들이 화려한 색감을 뽐내던 시장의 한가운데에서, 루이사는 망설였다. 마음에 드는 모자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살지 말지 확신은 서지 않는 모양이었다. 루이사는 모자를 파는 원주민 여인과 오래 얘기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이 선 듯 뒤돌아섰다. 성사되지 않은 거래가 못내 아쉬운지 여인이 루이사를 한 번 더 붙잡았다. 그러자 루이사가 말했다.


¡Yo tengo muy buena espalda! (나는 매우 좋은 등을 가지고 있어!)

나는 알아들었다. 하지만 못 알아들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는데, 그 안에 숨은 함의를 못 알아들었다. 머리를 굴려봤다. 모자 가게를 떠날 때 루이사는 자기가 이 가게에 꼭 돌아올 거라고 여인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말은 '나는 다시 돌아올 거야' 같은 뜻을 가진 표현이지 않을까.


문득 그 말이 서정적이라고 느껴졌다. 다시 돌아오겠노라는 약속을 내 등의 선함으로써 증명해 보인다는 발상이라니. 자, 내 등을 봐. 이게 어디 모질게 돌아설 등이야? 이 등은 약속을 지키는 다정한 등이라구. 모든 관용어가 사실은 이처럼 시적인 표현인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나는 외웠다. Yo tengo buena espalda. 나는 좋은 등을 가지고 있어. Yo tengo buena espalda. 나는 너에게로 다시 돌아올 거야.


그런데 마르타가 해준 설명은 조금 달랐다. 좋은 등을 가졌다는 말은 가게에 행운을 가지고 온다는 뜻이라는 거였다. 한 사람이 가게에 들어왔는데 그 사람을 뒤이어 다른 손님들이 줄지어 들어온다면? '저 사람이 좋은 등을 가지고 있군!'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텅 빈 식당에 나랑 마르타가 들어갔는데 얼마 안 가 식당이 만석을 이룬다면? '우리가 좋은 등을 가지고 있나 봐!'라고 농담할 수 있다는 것. 루이사가 모자를 안 사고 돌아서는 걸 가게 주인이 못내 아쉬워한다면? '걱정 마, 난 좋은 등을 가지고 있어! 내가 이 모자를 사지 않더라도 오늘 이 가게는 분명 성시를 이룰 거야!'라고 다독일 수 있다는 것.


그런데 나는 그 말의 참뜻을 배우고 나서도 어쩐지 내 버전의 해석이 더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Yo tengo buena espalda. 나는 좋은 등을 가지고 있어. 내가 다녀간 뒤로 무수한 손님이 따라 들어올지는 모를 일이지만, 나만은 꼭 네게로 돌아오리라고 약속할 수 있어. 내가 너에게 보이는 등은 무정한 등이 아닐 거야. 그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등일 거야.


루이사의 스페인어 표현을 한 번에 알아듣다 못해 행간까지 읽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화자찬할 뻔한 그날. 나는 에콰도르를 떠날 날을 단 며칠 남겨두고 있었다.


문득 궁금했다. 나는 과연 좋은 등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내 등이 좋은 등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이곳을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약속하는 마음을 품은 작별을 하고 싶다고.


내 다정한 등을 확인시켜주고 싶은 인연들이 오타발로 하늘 위로 동글동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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