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탁 트인 마추픽추
에콰도르 이야기, 그 후
번쩍 눈이 떠졌다. 알람 소리도 울리지 않은 새벽 한가운데. 어쩐지 불길했다. 사늘한 소름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왔다. 어둠 속에서 시계를 찾았다. 아뿔싸. 여섯 시였다. 나는 이마를 쳤다. 머리끝까지 올라온 소름이 손바닥에 부서졌다.
그제야 옆 침대 코 고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드르렁드르렁. 아무리 코골이가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다 한들 저 인간의 꿀잠은 최소한 당도 백 프로. 나는 안달했다. 그 태평한 수면의 세계에 당장이라도 균열을 내고 싶어.
“일어나 마르타! 벌써 여섯 시라고!”
나는 소리쳤다. 마르타는 반응이 없었다. 요란한 코골이를 상대로는 애당초 이길 수 없는 데시벨 싸움이었다. 나는 직접 소음의 파동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마르타 어깨를 흔들었다. 사람을 들깨우는 데 필요한 정도보다 조금 더 세게. 조금 더 격렬하게. 그날 우리가 놓쳐버린 건 다섯 시 반 기차만이 아니었다. 마추픽추를 굽어보는 젊은 봉우리, 와이나픽추를 오를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나는 처음부터 GSD 재단 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남미 대륙을 횡단해볼 생각이었다. 물론 그 계획 속에 마르타는 없었다. 낯선 한국인과의 동거가 그녀 계획에 없었던 것처럼. 마르타는 나랑 살면서 비로소 나라 밖 세계가 궁금해졌다고 했다. 그녀는 그 호기심을 입증해 보이듯 나를 따라 페루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마르타는 그때까지 한 번도 에콰도르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예기치 않게 생긴 동행이 천군만마 같았다. 시작은 희망적이었다. 우리 여행 이야기가 이렇게 쭉 동화 같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여행은 현실이었다. 나는 그 자명한 사실을 마르타와의 관계에서 체감했다.
마르타와 나는 사사건건 부딪혔다. 대개는 굼뜨고 투정이 많은 마르타 대 성급하고 독단적인 나의 대결 구도였다. 정작 몇 달을 함께 살면서는 가벼운 말다툼 한 번 없었던 우리. 여행지에 나와서는 작정한 듯 서로한테 날을 세웠다. 나는 궁금했다. 우리가 리오밤바에서 봐왔던 서로의 민낯은 진짜 민낯이 아니었던 걸까. 각질층까지 모조리 벗겨낸 취약한 민낯은 왜 여행 중에야 제 모습을 드러낸 걸까.
기차를 놓친 그날만 해도 그랬다. 잠에서 깨기가 무섭게 우리는 언쟁으로 하루를 열었다.
마추픽추와 달리 와이나픽추는 하루 입장객 수가 제한되어 있어서 일찍이 예약해두지 않으면 방문이 불가능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오래전에 와이나픽추 입장권을 예약해뒀었다. 입장 일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에콰도르에서 접경국 페루까지 구태여 비행기를 타고 넘어오기까지 한 참이었다. 그런데 다섯 시 반 기차를 놓치고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피 같은 입장료가 함께 날아간 건 말할 것도 없이.
경위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하나, 마르타가 간밤에 알람을 잘못 설정했다. 둘, 마르타가 잠결에 알람을 끄고 계속 잤다. 둘 중에 어느 쪽이 사실이든 마르타 잘못이었다. 나는 절치부심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알람만큼은 자기한테 맡기라며 호기를 부렸던 어제의 마르타.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지른지도 모르고 이불속에 얼굴을 파묻는 오늘의 마르타. 나는 양일의 마르타가 전부 미워 견딜 수 없었다.
와이나픽추를 놓쳤다고 마추픽추까지 놓칠 순 없었다. 되는대로 짐을 챙겨 오얀따이땀보 기차역으로 뛰어갔다. 천만다행이었다. 마추픽추 아래에 있는 마을 ‘아구아스 깔리엔떼스’로 가는 당일 아침 표를 구했다. 마르타도 나도 그제야 깊은 숨을 돌렸다. 이 표마저 못 구했더라면 누구 한 명은 다 때려치우자고 들고 일어섰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짙은 전운의 한가운데에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차창 너머로 협곡의 진풍경이 펼쳐졌다. 위로는 오동보동한 뭉게구름과 청청한 하늘. 아래로는 험준한 협곡의 바닥을 가르는 기운찬 물살. 고산 열차가 아니라 가상현실 속에 들어온 듯한 신비로운 풍경이 한 시간 가량 이어졌다.
그런데 기차 여행은 서막에 불과했다. 마추픽추를 눈앞에 두고는 더욱 세찬 경탄이 단전에서 터져 나왔다.
아, 마추픽추! 아, 잉카의 공중 도시!
찬란했다. 정교한 고대 문명의 자취가 말간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비도 안개도 없이 이토록 쾌청한 마추픽추라니. 이 절경은 건기에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만 부여되는 특권이리라 생각했다. 해발 2430미터에 요새를 짓고 스페인에 끈기 있게 항쟁한 잉카인들의 역사. 그 역사를 더불어 떠올리면 칠월의 눈부신 일광에서도 애수가 느껴졌다.
마추픽추가 품은 불가사의 속을 유영하느라 나는 깜빡 전운을 잊었다. 그건 마르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우리는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일생일대의 와이나픽추는 놓쳤어도 마추픽추만큼은 만판 담아가겠다는 의지로. 꼭두새벽의 입씨름 따위 벌써 잊었다는 듯 렌즈 앞에서 능청스럽게 미소 지어 보이며. 그러던 와중,
툭!
소리를 좇아 내 시선이 움직였다. 소리의 근원지에 내 카메라가 있었다. 오백여 년 전 잉카인이 갈고닦아 둔 돌바닥 위에, 일 년도 안 된 나의 신형 디지털카메라가. 마르타가 실수로 카메라를 떨어뜨린 거였다. 나도 마르타도 얼음장이 됐다. 누구도 손 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도 찍지 못한 그 순간이야말로 그날 하루 가장 포토제닉한 장면일 것이었다.
마르타는 ‘Perdón(미안해)’ 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다. 사진 찍을 때 빼곤 별다르게 말을 안 섞던 판국이었으니 미안하단 소리도 차마 입에서 안 떨어졌을 터. 그 사정을 머리론 이해하면서도 나는 부아가 치밀었다. 카메라를 쳐다보면 더욱 그랬다. 돌바닥에 부딪히면서 카메라 모서리 한편이 개미 발톱만큼 떨어져 나가 있었다. 기능엔 문제가 없으니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일. 그날만큼은 마음이 쓰였다. 아니, 내가 마음을 썼다. 햇발 아래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신비의 고도를 눈앞에 두고, 나는 내내 카메라만 어루만졌다. 어깨 위로 내려앉는 햇살이 느닷없이 따가웠다.
조금도 동화 같지 않았던 마르타와 나의 남미. 이 여행 이야기가 시나브로 12년이 됐다. 12년 전 이국 생활은 이제 내게 전생처럼 아득하다. 여행보다 더 현실적인 진짜 현실에 파묻혀 그 시절 이야기는 잊고 산 지 오래. 그러다가도 이따금씩 12년 세월을 구체적으로 실감하는 때가 있다. 마르타 딸 사진을 볼 때다. 마르타는 남미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딸 안토네야를 가졌다. 쑥쑥 자란 안토네야가 어느덧 열한 살. 마르타는 그때 이후로 다시는 에콰도르를 떠나보지 못했다고 했다. 마르타의 페이스북 프로필 배경에는 아직도 그날의 마추픽추 사진이 걸려 있다.
마추픽추 사진을 볼 때면 나는 번번이 기묘한 감정에 빠진다. 웃으며 추억할 수만은 없는 장면들이 줄지어 내 기억 문을 두드린다. 내리꽂는 햇볕에 밝게 빛났던 카메라 모서리 상처. 집어 올린 카메라를 내게 건네던 마르타의 어줍은 몸짓. 분노를 삭이며 마르타를 흔들어 깨웠던 호스텔 방 안 어스름. 여행길에 오르고부터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성에 안 차는 듯 노려보았던 내 싸늘한 시선.
그러다 보면 기억의 역로는 자연히 리오밤바의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독창적인 나의 스페인어 실수에 까르르 웃음 폭죽이 터지던 마르타네 식탁. 털 끝만큼의 연고도 없는 나를 식구 삼아 보살펴 주었던 마르타네 가족. 날 품에 껴안고 “Mi hija! Mi pobrecita! (내 딸아! 내 가엾은 것아!)” 속삭이던 마르타 엄마, 마르타 아빠.
한평생 에콰도르를 떠나본 적 없던 마르타가 별안간 나를 따라나선 이유는 뭐였을까? 새삼 깨달은 일상의 권태였을까? 뒤늦은 나이에 발현된 모험심이었을까? 우리 여행 이야기의 시작에 있었을지 모를 비하인드 스토리를 상상하다 보면 내 머릿속엔 문득 마르타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보듯 날 돌아보셨던 마르타 부모님. 그분들이 마르타더러 날 따라갔다 오라고, 날 따라가서 둘이 함께 안전히 여행하고 오라고 권하신 건 아니었을까?
사진으로 봐도 칠월의 마추픽추는 매혹적이다. 하지만 안데스의 그 경탄스러운 아침 풍경을 꺼내볼 때마다 내 몸은 오싹 움츠러든다.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서도 버리지 못했던 내 좁은 속이 부끄럽다. 그 여름 내가 부렸던 배은망덕이 징그럽다. 탱탱하고 새하얗던 내 피부 위로 뽀송하게 내려앉은 그날의 햇살이 얄궂다.
눈을 감는다. 나는 다시 칠월의 마추픽추, 그 다사한 햇살 아래 서있다. 부끄러움에 어디로라도 숨어들기에 마추픽추는 너무 탁 트인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