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1)
사막에서는 어느 동네를 가든 똑같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여행자들한테서 뭐라도 얻어가려고 궁리하는 눈빛들뿐. 이번 동네도 마찬가지였다. 나이는 “다스(10)”이고 이름은 “돌랏”이라는 아이가 나랑 살갑게 대화의 물꼬를 트는 듯하더니, 역시나 요구해왔다. 루피(Rupee), 비스킷, 그도 아니면 기프트를 달라고. 아무것도 없다는 내 대답에 심통이 났는지 돌랏은 내 카메라 렌즈에 걸려 있던 양말을 훅 낚아채갔다. (갠지스 강가에서 렌즈 커버를 잃어버린 뒤로 나는 겨우내 양말 한 짝을 카메라 렌즈에 씌우고 다녔다. 그 모습을 본 인도인들이 물어오곤 했다. “네 카메라가 춥다던?”) 돌랏의 돌발 행동에 덩달아 심통이 난 나도 돌랏 손에서 양말을 낚아채 왔다. 조카뻘 되는 어린애랑 이게 무슨 유치한 다툼이람. 이제 그만 떠날 때가 됐다는 가이드의 말에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지프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돌랏의 표정이 눈에 밟혔다. 외지인들을 만나 들떠있던 아까와 달리 금세 풀이 죽고 심드렁해진 표정. 나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돌랏! 굿바이!” 제 이름을 들은 돌랏의 표정이 단숨에 바뀌었다. 갓 피어난 꽃봉오리만큼 싱그러운 미소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구가 연상되는 건 상투적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굿바이, 돌랏. 나는 그 이름을 다시 한번 힘주어 불러보았다. 오늘 밤엔 너희 동네에 단비 한 줄기 내리기를 기대해볼 수 있을까.
그러니까 여기는 자이살메르(Jaisalmer). 인도 북서부에 위치한 라자스탄 주에서도 가장 서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여행자들이 자이살메르를 찾는 이유는 하나다. 사막. 타르(Thar)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사파리 투어를 즐기는 풍경은 여행자들이 자이살메르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의 전형과 같다. 나와 일행이 야간 버스를 타고 하룻밤을 꼬박 달려 자이살메르에 온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사막의 동네들을 하나하나 순회하는 일정으로 투어가 시작되는 줄은 미처 몰랐을 뿐.
돌랏을 만난 동네를 끝으로 동네 탐방 일정이 마무리됐다. 그제야 진짜 ‘사막 사파리’ 느낌이 나는 일정이 시작됐다. 낙타를 탈 시간이었다.
인원수에 맞게 소집된 낙타들과 사막 한가운데서 만났다. 먼저 프랑스 할머니 두 분과 할아버지 한 분이 낙타 등에 올랐다. 뒤이어 경민, 지현, 그리고 내가 낙타에 탔다. 마지막으로 인도인 가이드와 요리사 두 명까지 낙타 등에 오르고 나니 일렬종대의 안정적인 사막 사파리 대형이 완성됐다.
우리는 그 길로 사막을 달렸다. 정수리에는 작열하는 태양볕. 눈앞에는 올곧게 뻗은 지평선. 더불어 온몸으로는 낙타의 겁 없는 요동을 감지하며 나는 생각했다.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고. 콜카타(Kolkata) 골목에서 우연히 만난 경민, 지현과 내가 인도를 동서로 가르며 함께 여행한 지 한 달째였다. 우리의 일렬종대를 꼭 닮은 그림자가 낙타 발굽으로부터 선명하게 뻗어 나갔다. 나는 렌즈에 씌워져 있던 양말을 벗겼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카메라에 담았다.
모래 언덕에 도착했다. 언덕 너머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자칫 하면 불이 붙을 것처럼 저녁놀이 벌갰다. 경민은 언덕의 능선을 따라 가장 높은 곳으로 걸어 올라갔다. 언덕 아래에서 그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석양의 역광 속에서 경민의 실루엣만 짙었다. 지평선을 밟고 우뚝 선 청년, 그리고 바람에 휘날리는 그의 인도산 스카프. 그 실루엣이 ‘어린 왕자’의 한 장면을 닮아 있었다. 나는 또 슬그머니 카메라 렌즈의 양말을 벗겼다.
사막에서 맞이한 일몰의 위엄이 경민을 흥분케 했음이 분명했다. 경민은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모래 언덕 위에서 껑충껑충 뛰다가 휴대폰이 주머니에서 빠져나간 줄도 모른 것이었다. 하릴없이 우리는 사막 위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리고 각자의 좌표에서 최선을 다해 모래밭을 뒤적였다. 목표는 아이폰4. 2013년 1월 기준, 제법 최신형이라 할 법했던 기종.
물론 이 미련한 탐색전의 결말은, 인정하는 것이었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 아니, 사막에서 휴대폰 찾기의 불가능성을. 나와 지현은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표정을 한 경민에게, 이 순간 이 장소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것은 수천 년부터 정해져 있던 운명일 것이라는 둥, 이로써 속세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구도자의 여행을 체험할 길이 열리게 된 것이라는 둥, 되지도 않는 ‘류시화’식 위로를 건넸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돌려 읽느라 우리 사이에서 신비적 세계관에 대한 긍정이 극에 달해 있던 시기였다.
미련과 모래를 탈탈 털고 언덕에서 내려오니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밥때였다. 요리사는 비끄람과 릴루. 각각 열다섯 살, 스무 살 먹은 인도인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우리한테 대접할 저녁 식사를 사이좋게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흘긋 봤다. 혹시 내가 도울 일이 있을까 해서. 그러다 그만 화들짝 놀랐다. 모래 묻은 손으로 밀가루를 반죽하는 건 물론, 식기를 씻을 때마저 물이 아니라 모래를 쓰던 청년 요리사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해 못 할 일만도 아니었다. 사막 한가운데서 풍족한 물 공급을 기대하면 안 되는 거였다. 위생을 논하려면 애당초 인도행 비행기표를 끊으면 안 되는 거였고. 나는 군소리 없이 비끄람과 릴루를 돕기로 했다. 내 손이라고 깨끗할 리 없었지만 열정적으로 반죽을 빚었다. 그들이 선택한 방식에 대한 나의 동조를 입증해 보이기라도 하듯. 냄비에선 커리가, 화덕에선 인도식 빵 ‘짜파티’가 완성되어 갔다. 군침이 돌았다. 모래알이 씹힐 걸 알면서. 마음이 가벼웠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내려놓고서.
까끌까끌한 식사를 마치고, 사막에 밤이 찾아왔다. 프랑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먼저 자리를 뜨셨다. “본 보야지(Bon voyage)!” 우릴 향해 건네신 그 작별 인사가 넌지시 반가웠다. 이제 사막은 오롯이 우리 차지였다.
모닥불에 고구마를 구웠다. 입 안에 씹히는 건 고구마가 반, 모래가 반. 이제는 개의치 않았다. 이왕 먹기 시작한 모래, 조금 더 먹어도 괜찮았다. 음악을 틀었다. 휴대폰을 집어넣은 컵 안에서 음량이 적당히 증폭되어 나왔다. 제이슨 므라즈의 <I won’t give up>이 시처럼 흐르는 밤의 사막에서 스르르. 나는 잠들었다. 잠의 세계로 꼴깍 넘어가던 순간, 내 몸에 담요를 덮어주던 지현의 얼굴이 손에 잡힐 듯했다. 지현의 얼굴 뒤로 흐르던 별들의 행렬도 그랬다.
월! 월! 그 새벽 나를 깨운 건 사막 개의 기척이었다.
개 우는 소리가 잦아들 줄을 몰랐다. 심지어는 점점 가까워 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카메라가 든 가방부터 챙겼다. 머리맡에 있던 가방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래도 위협감이 가시지 않았다. 개와 나 사이에 단 한 겹의 장막도 가로놓인 바 없다는 사실. 그 사실이 공포감을 자극했다. 그날 밤 우리는 사막 황지를 융단 삼아, 밤하늘을 이불 삼아 자고 있었다. 완전한 비바크(biwak)였다.
알고 보니 천부적인 자연인들이었던 걸까. 경민과 지현은 내 옆에서 너무도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있는 힘껏 뒤척여 그들의 단잠을 훼방했다. 결국 두 사람이 모두 깼다. 저 개가 우리를 덮쳐올까 봐 무서워서 어디 잠이나 자겠냐고, 나는 밤의 어스름을 방패 삼아 어울리지 않게 찡얼댔다. 그런 내 무안도 모르고 개는 계속 월월거렸다. 바로 그때.
“봤어? 봤어?”
“어! 봤어!”
“우와아아아!”
밤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졌다. 길고 유려한 궤적을 그리며 낙하하는 별똥별 하나, 별똥별 둘, 그리고 또 여러 개.
별안간 눈앞에서 유성들의 축제가 펼쳐졌다. 그것도 꽤 긴 시간 동안. 그 거짓말 같은 장면을 우리는 원 없이 감상했다. 우리가 드러누운 그 자리만큼 근사한 명당은 없을 것이었다. 그 순간보다 근사한 소원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떨어지는 별똥별을 눈앞에 두고 나는 아무것도 소원하지 않았다.
사막 개의 울음소리가 어느덧 잦아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