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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Nov 08. 2022

거제의 파란 맛

해양 정화 활동 단체 <플로빙 코리아>가 만나고 온 청량한 거제

우리가 거제에 간 건 플로빙을 하기 위해서였다.


'플로빙(Ploving)'이란 프리다이빙을 하면서 해양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말한다.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인 '플로깅(Plogging)'이 '플로카 업(Plocka upp; 스웨덴어로 '줍다'라는 뜻)'과 '조깅'의 합성어라는 사실과 맥락을 같이 한다. 말하자면 플로빙은 '플로카 업'과 '프리다이빙'의 합성어인 셈.


플로빙은 어려운 활동이 아니다. 거창한 활동도 아니다. 플로빙이라는 용어를 처음 고안해낸 국내 플로빙 단체 <플로빙 코리아>의 슬로건만 봐도 그렇다. "One dive, one waste." 다이빙 한 번에 쓰레기 한 개만 들고 나오기. 딱 그 정도만 해도 된다. 그 정도만 해도 어디 가서 '플로버(Plover; 플로빙을 하는 사람)'라고 뻐기고 다닐 수 있다. 내가 지금 딱 그러고 다닌다.


그런데 해양 정화 활동에 진입하는 문턱을 낮추고자 내세운 저 슬로건이 무색하리만큼, 이번 플로빙은 조금 거창했다. 아니, 많이 거창했다. 거제시의 초청을 받은 플로버들이 하늘을 가르고 날아와서는 작정하고 수행한 정화 활동이라 그랬다. 제주에서 아홉 명, 서울에서 일곱 명, 대구에서 두 명. 도합 열여덟 명의 플로버들이 11월 5일 아침 거제시에 모였다. 우리의 노력으로써 거제 바다가 어제보다 오늘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11월 5일 아침, 김해 공항에 모인 플로버들. 대구에서 온 플로버 두 분은 이후 거제시에서 최종 합류하셨다.
금강산도 식후경. 본격 플로빙에 앞서, 주린 배를 채웠다. 거제시 장목면에 위치한 오션뷰 브런치 카페 <패스트리 디 오션 뷰>.
뷰 좋고 맛 좋은 점심 식사만으로도 황송한데 거제시에서 플로버들을 위해 기프트 박스까지 준비해 주셨다. 사진 속 장발의 사나이는 <플로빙 코리아> 설립자 전장원 대표님.
기프트 박스에 담긴 피크닉 매트와 거제시 지도들. 거제에는 둘러볼 만한 관광지들이 이렇게나 많다. 주변에 아름답고 아담한 섬들도 많아 '심쿵섬쿵 거제 여행'을 즐길 수도 있다.
정성스러운 포장과 알찬 내용물이 모두 감동적이었던 선물. 플로빙 여행의 의도와 걸맞게 친환경 제품들을 준비해주시는 거제시의 센스에 모두가 반했다.


식사를 마치고 본격 플로빙 모드에 돌입했다. 이날의 활동 거점은 덕포 해수욕장. 백사장 뒤편으로 울창한 솔숲이 펼쳐진 거제의 명소였다.


제주 바다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플로빙 코리아>로서는 거제 바다가 생경할 법했다. 낯선 바닷속 풍경에 대한 기대와 걱정을 한데 안고 플로빙의 닻을 올렸다. 일단 부딪혀 보는 거다.


보람보다 중요한 건 안전. 사고 없는 임무 완수를 위해 입수 전 열심히 스트레칭을 했다.
플로빙의 의의에 적극 공감하신 <거제 덕포 스쿠버> 사장님께서 직접 보트를 몰고 우리와 동행하셨다. 사장님께서도 평소에 덕포 바닷속 쓰레기들을 많이 주우신다고 하셨다.
거제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노력 덕분인지 덕포 바닷속 환경은 비교적 깨끗했다. 군데군데 눈에 띄는 바닷속 쓰레기들을 수거했고, 인근의 지상 정화 활동까지 진행했다.
바다를 사랑하는 좋은 사람들.
바다와 지상에서 거두어 온 각종 쓰레기들을 마대에 담았다. 마대들을 서로 끈으로 엮어 보트까지 가져오면, <거제 덕포 스쿠버> 사장님께서 그 마대들을 보트 위로 끌어올려 주셨다.
보트에 담아 온 마대들을 다시 지상으로 끌고 와서 지정된 수거지에 갖다 놓기까지 하면,
오늘의 플로빙 완수! 이 뿌듯함은 도무지 형용이 불가하다. (내 필력 문제가 아니다.) 직접 와서 체험해 보세요.


2022년 11월 5일 거제시 덕포 해수욕장에서 진행한 플로빙 수거 내역은 다음과 같았다.

50리터 마대 총 19대 (플라스틱, 비닐, 밧줄, 그리고 각종 생활 쓰레기)

스티로폼 부이 2개

폐통발 2개

타이어 1개

차량 하단 범퍼


바닷속이 예상보다 깨끗했던 덕분에 인근의 지상에서 더 많은 쓰레기를 거두어 왔다. 플로버들은 워낙에 플로빙과 플로깅을 가려서 하지 않으니 익숙한 상황이었다. 닥치는 대로 치운다. 인적이 뜸한 구석진 장소에서, 우리가 안 치웠더라면 영영 안 치워졌을 쓰레기들을 수거하고서 느끼는 보람. 도심의 일상에서는 좀처럼 겪어보기 어려운 감정이다. 우리가 쏟은 힘과 시간과 마음만큼 거제가 건강해졌기를.


소정의 임무를 완수하고서부터는 활동가 대신 관광객 모드로 지냈다. 거제의 좋은 것들을 모두 보고 겪기에 1박 2일은 부족했다.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다. 그래서 더욱 바지런히 돌아다녔다. 작은 도시라 별 게 없으리라 지레짐작했던 전날까지의 나 자신. 반성했다!


<거제 파노라마 케이블카>. 케이블카가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었다. 단풍옷 입은 노자산을 내려다보는 조망이 값졌다.
내가 꼽은 거제 여행의 명장면. 타오르는 저녁놀을 품은 다도해 전경. 약간 눈물 났다.
자칫하면 불이 붙을 것만 같다. 발간 석양을 눈앞에 두고, 원 다이브 원 웨이스트.
저녁은 지세포항 해산물 전문점 <어방가>에서. '어방'은 물고기 잡는 마을을 이르던 말이라고 한다. 이름과 음식에서 모두 거제의 정취가 느껴지던 (고급) 맛집. 여기서도 눈물 났다
'호텔 상상' 건물의 뒤편에서 시작되는 <상상 산책길>. 투숙객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열려 있는 공간이다. 밤에는 대나무 숲에 조명이 켜져 한층 낭만적이다.
상상 산책길을 따라 내려가면 몽돌 해수욕장을 만나게 된다. 모가 나지 않고 둥근 돌, 몽돌. 작은 돌탑을 쌓으며 소원도 빌었다. 이루어지길.
숙박은 <라마다 스위츠 거제 호텔>에서. 전 객실이 오션뷰다. 이 가격대에 이 정도 조건의 호텔룸이라니. 이 정도로 아름다운 일출 전망이라니. 거제는 감탄의 연속이다.
아침은 <장수굴국밥>에서. 연중 생굴을 사용하는 굴국밥 집이다. 9천원 내고 시킨 국밥 뚝배기 안에 굴이 셀 수 없이 들어 있었다. 통굴전은 애피타이저도 되고 디저트도 되고.
남해를 낀 도시에 오면 오션뷰 요가가 가능하다. <한화 거제 벨버디어>에서 진행한 오션뷰 요가 프로그램. 자는 중 아니죠. 이완하는 중이죠.
이 정도 인생샷 가능하다. 요가 배워서 거제 오세요.
여기는 <매미성>. 태풍 매미로 경작지를 잃었던 백순삼 씨가 재발을 막고자 쌓아 올린 돌성이라 한다. 설계도 없이 견고하고 아름답게 지어진 돌성도, 그 앞의 몽돌 해변도 경이롭다.
가을 오후 날씨가 끝내줬다. 드넓은 공간이 고요하고 평온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행복해 보였다.
몽돌탑은 못 참지. 무슨 소원들을 그리 빌었을까.
거제의 작은 섬 '이수도'를 뒤에 두고 기체조 하는 어머니들. 엄지 척. 나도 곁에 가서 슬그머니 껴보고 싶었다.
거제에서 하는 마지막 식사는 <더 꽃 매미성점>에서. 아주동에 본점을 둔 고깃집이 매미성 근처에 지점을 낸 거라고 한다. 청국장 샤부샤부도 꽃 삼합(차돌박이+해산물+갓김치)도 일품
거제에서 마시는 마지막 커피는 카페 <심해>에서. 매미성에서 바라다 보이던 카페다. 저 카페 가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카페로 왔다.
1박2일 거제 플로빙 투어의 마무리를 이런 전망을 끼고 했다. 거제를 푸른색으로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거제의 즐길 거리만큼이나 밀도 높았던 1박 2일. 그 여정의 끝에 , 거제시가 <플로빙 코리아>의 문을 두드렸던 이유를 십분 이해할 것 같았다. 거제는 도시가 품은 보배로운 자연을 오래 보전하고 가꾸고 싶었을 터.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도시의 절경, 외지인들 불러다 놓고 한껏 자랑도 해보고 싶었을 터. 그 외지인 중 한 명으로 간택당했던 것이 새삼 큰 행운으로 여겨졌다. 거제는 보전할 만한 곳, 자랑할 만한 곳이 맞았다!


이번 거제 투어를 통해 <플로빙 코리아> 공식 활동에 처음 참여하신 대구 다이버 분들은, 플로빙이라는 용어를 창안한 주체가 <플로빙 코리아> 전장원 대표님이란 사실을 듣고 놀라셨다. 플로빙이 <플로빙 코리아>의 거점 제주를 넘어서서, 국내 어느 해역에서든 활발히 이루어지는 보편적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는 방증일 것. 기분이 묘했다. 증인이 된 것만 같았다. 대표님의 뜻에 동의한 동네 주민들이 알음알음 모여 시작한 <플로빙 코리아> 활동이 시나브로 탈지역로 정착해 가는 과정을 목도한.


그러고 보면 플로버들이 하루하루 실천하는 플로빙의 효과는 비단 그날 수거한 마대 수로 축약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닐 것이다. 바다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인 변화, 해양 정화 활동의 지속적인 실천, 그리고 환경 보호의 생활화. 이 <플로빙 코리아> 초년의 목적이 플로버들의 활동에 힘입어 나날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 거제 플로빙 투어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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