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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Sep 21. 2023

몰라도 되는 것, 알아야 하는 것

파나마

고요했다.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들어온 듯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다 유령게랑 눈이 마주쳤다. 작고 샛노란 유령게. 집게발로 모래에 굴을 파다 말고 똥그란 눈으로 날 봤다. 때마침 내가 유령게 쪽으로 고개를 돌린 건 왜였을까. 혹시 저 게가 굴 파는 소리가 들려서는 아녔을까. 사각사각. 바사삭바사삭. 들렸을 리 만무한 유령게 굴 파는 소리를 기억에서 끄집어내 보겠다고 나는 억지를 부렸다. 징그럽게도 적요하고 또 지루한 아침이었다는 말이다.


마치 무성 영화의 한 장면 속 같은 이곳은 아로마 섬. 파나마의 카리브 영해에 위치한 산 블라스(San Blas) 제도의 섬이다. 재미있는 건, 이 섬이 얼마나 조용한지는 이 섬이 가진 제일의 특성이 아니란 거다. 그건 후하게 쳐줘봐야 제이의 특성 정도나 될까. 제일의 특성은 따로 있다. 작다는 점이다.


아로마 섬은 작다. 무지막지하게 작다. 섬의 전경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건 두 말하면 입 아픈 얘기.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섬의 가장자리를 다 도는 데 2분이 안 걸린다. 작고 평평한 섬 위엔 야자수가 빼곡하다. 움막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허름한 집도 몇 채 있다. 이렇게 자그마한 섬들이 파나마 북동쪽에 점점이 흩어져 있다. 그게 바로 산 블라스 제도다.


이 작은 섬에도 사람이 산다. 구나(Guna)족이다. 파나마와 콜롬비아의 일부 자치 지역들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소수 원주민 집단. 어업, 농업, 직물 제조업이 수입원이던 구나족에게 관광업은 새롭게 떠오르는 벌잇거리다. 고작해야 구나족 두세 가구가 상주하는 아로마 섬에 최근 외지인들의 출입이 잦은 건 그 때문이다. 이곳을 찾아온 여행자들에게 제공되는 건 숙박, 식사, 그리고 이토록 적요하고 지루한 섬 생활을 체험할 기회.


이곳에 도착한 첫날만 해도 걱정했다. 밤 열 시까지만 전깃불이 들어올 거라고 해서였다. 망망대해에 찍힌 점 하나 같은 이 섬의 밤에 내릴 어둠. 그 어둠의 무게를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칠흑 같은 밤이 영겁처럼 느껴질까 봐 걱정됐다. 하지만 기우였다. 여행자들은 매일 해가 채 지기도 전에 곯아떨어졌다. 구나족이 모는 통통배를 타고 산 블라스 제도 구석구석으로 물놀이를 다니다 보면, 아로마 섬으로 돌아올 즘엔 물에 빠진 생쥐 모양이 돼서 기진맥진해 있기 일쑤였다. 그렇게 일찍 잠들고 나면 꼭두새벽 같이 기상하는 건 당연지사.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움막 같은 집을 나서면 끝도 없는 수평선이 눈앞에 펼쳐졌다. 카리브해의 청명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전깃불이 없어도 와이파이가 없어도 결핍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아침 일곱 시 즘이 되면 작은 섬 가득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구나족 아주머니가 나팔고둥 부는 소리였다. 아주머니는 식사 준비를 마치면 어김없이 나팔고둥을 불었다. 그 소릴 알아들은 여행자들은 식당이라고 약속한 움막으로 모여들었다. 메뉴는 빵, 오믈렛, 그리고 커피. 다 함께 간소한 아침을 먹었다. 짭조름한 바닷바람을 향신료 삼아. 저녁밥때가 되면 다시 섬 안에 울려 퍼질 나팔고둥 소릴 상상하며.


식사가 끝나고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잦아들면 섬 안은 다시 조용했다. 유령게 굴 파는 소리, 개미 기어가는 소리, 갈매기 나는 소리. 세상의 모든 소리가 다 들릴 듯 고요했다. 통통배가 내는 통통 소리쯤이야 몇 리 밖에서부터 선명했다. 할 일이 없어 해먹에 누워 하늘만 바라보던 여행자들은 그 통통 소리를 귀신 같이 알아채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기대는 하나. 부디 저 배가 자신을 데리러 온 배이기를. 하지만 웬일인지 저 배는 늘 그 배가 아니었다. 기대들이 바스러졌다. 다 같이 다시금 해먹에 몸을 눕혔다.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이 흘러갔다. 저마다의 적요하고 또 지루한 아침이 흘러갔다.


그토록 무해한 시간 속에 잠겨 있노라면 이 섬과 인연을 맺게 된 과정이 떠오르곤 했다. 파나마의 수도는 파나마시티. 그곳에서 내가 묵던 숙소의 직원에게 산 블라스 제도 투어 프로그램을 문의했었다. 직원은 숙식이 포함된 2박 3일 투어 가격이 200달러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섬, 어떤 숙소에 묵게 될지는 섬사람들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도 했다. 나는 그 말에 수긍하지 못했다. 내가 알던 정보와 달라서였다. 일단 파나마시티에선 교통비와 입도세만 내고, 산 블라스 제도에 도착한 뒤에 내가 묵을 섬과 숙소를 직접 선택하는 게 이곳을 여행하는 관행이었다.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본 바에 따르면.


나는 직원에게 물었다. 교통비와 입도세만 먼저 내는 옵션은 없는지, 내가 묵을 섬과 숙소를 직접 고를 순 없는지, 200달러 안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들이 포함된 건지. 직원의 대답은 전부 "노(No)" 아니면 "아이 돈 노(I don't know)"였다. 그에게 나는 이것저것 캐묻기를 좋아하는 골치 아픈 숙박객이 되어 있었다. 그가 미간에 지은 주름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캐묻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음을 입증해 보이겠답시고 내가 인터넷에서 봤던 정보들을 늘어놓자, 직원이 말했다.


"너는 왜 남들이 하는 대로만 따라 하려고 하니? 너 자신만의 여행을 만들어가 봐!"


이게 웬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린가.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상품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받고 그 상품을 구매할 의사가 있는지 신중히 고민해 보려는 나의 자세가 누군가에게 지적당할 만한 태도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로마 섬 한가운데에 축 늘어진 몸을 누이고, 청각을 위시한 모든 감각이 실시간으로 발달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 있는 지금. 그날의 대화를 떠올리며 느껴지는 내 감정이 조금은 말랑해진 기분이었다. 이곳에 먼저 들렀던 여행자들의 방식을 답습하려고만 했던 내 고집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아집이었구나. 그때 내가 그토록 알고자 집착했던 그것들은, 사실은 몰라도 되는 것들이었구나.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모든 것, 나의 행복을 방해할 수 없는 모든 것이 섬 안에서 사소해졌다.


해먹 위에서 쪽잠을 청하려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구나족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누워 있는 여행자들 곁에 물 한 잔씩을 살뜰히 내려놓으셨다. 그리고는 빈 해먹 위에 당신도 몸을 누이셨다. 이토록 고요하고 자그마한 섬 위에서 살아가는 아저씨의 삶. 그 삶은 어떤 느낌일까.


구나족이 처음부터 산 블라스 제도에 살았던 건 아니라고 한다. 원래 콜롬비아 북부에 살았던 구나족은 스페인 침략자들과의 갈등을 피해 1600년대에 파나마 동부 내륙으로 이동했다. 이후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와의 사투 끝에 바다 건너 산 블라스 제도에 정착한 게 1800년대의 일. 1900년대에 들어서도 구나족 전통을 위협하는 파나마 정부, 섬의 자원을 노리는 외지인들로 인해 시름하던 구나족은 1925년 마침내 무장 혁명을 일으켰다. '구나 얄라(Guna Yala)', 즉 구나족의 땅이라고 불리는 산 블라스 제도에서 구나족이 지금 수준의 자치권을 행사하게 된 건 바로 이 혁명의 결실이라고.


당신 선조들의 가슴 아픈 역사를 아저씨는 차근히 들려주셨다. 구나족이 지금과 같은 섬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해수면이 매년 오르는 탓에 산 블라스 제도는 수십 년 내로 바다에 가라앉을 것이라고 한다. 그날에 대비해 구나족은 파나마 본토로 이동할 채비를 조금씩 하고 있다. 구나족의 시련과 희망을 한데 전하는 아저씨의 담담한 목소리. 그 음성에 올곧이 귀 기울이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이 섬 여행을 계획하면서 궁금해해야 했던 것, 마땅히 알려고 노력해야 했던 건 바로 이런 이야기였을 거라고.


부우우우우웅. 나팔고둥 소리가 울렸다. 아침 식사 시간이다. 아로마 섬에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식당에 모였다.


독일인 커플이 내 옆에 앉았다. 이 작은 섬 안에서 이웃사촌 아닌 사이가 있겠냐만 이들은 더 각별했다. 내가 묵는 움막의 바로 옆 움막에서 묵는 이들이라서였다. 여느 아침처럼 빵, 오믈렛, 커피를 들던 중, 독일 여인이 내게 물었다. 이 섬에 더 머물 예정이냐고. 나는 대답했다. 오늘이 이 섬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라고. 그러자 여인이 안도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네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어. 간밤에 내가 꺅 하고 소리 질렀던 거 들었어? 그거 움막 안에서 쥐를 발견해서 그런 거였어.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그런데 그 쥐가 글쎄 네 움막으로 기어들어가더라니깐!"


문득 두 가지 감각에 대한 기억이 동시에 떠올랐다. 지난밤, 카리브해를 두 쪽으로 가를 듯 날카로운 비명을 들었던 기억. 오늘 아침, 움막 한편에 놓아두었던 빵 봉지의 밑동이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 걸 보았던 기억. 두 개의 기억 사이에 놓인 연결 고리가 그제야 그려졌다. 범인은 쥐였다. 다행이었다. 움막에서 보낼 밤이 내게 더 남아있지 않았다. 밤새도록 내 머리맡을 기어 다녔을지 모를 쥐쯤이야, 지나간 과거로 치부하면 그만일 일. 지난 2박 3일, 몰라도 되는 이야기를 모르고 지낼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식당에는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섬에 갓 도착한 호주인 여행자였다. 그녀 얼굴 가득히 뜨거운 기대가 어려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미지의 섬 생활에 대한 기대. 내가 이 섬에 도착했던 첫날 내 얼굴에도 서려 있었을 기대.


내가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자 호주인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는 내 곁에 바싹 다가와 앉으며 말했다. 그녀가 최근에 읽은 논픽션 소설이 일제강점기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 책이었다고. 그 책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과 일본 사이에 그런 가슴 아픈 역사가 있었는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나는 섬 공기를 가득 머금은 입으로 그녈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몰라도 되는 타국의 역사는 없음을. 상대의 역사를 알면 알수록 우리는 상대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애정에 도달할 수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야기는 바로 그런 것임을.


예전에 인터넷에서 재미난 글을 본 적이 있다. '모르다'라는 뜻의 단어를 쓰는 언어는 한국어뿐이라는 내용이었다. 영어로는 do not know. 일본어로는 시라나이(知らない). 중국어로는 뿌 쯔따오(不知道). 스페인어로는 no sé. '알다'라는 단어에 부정어를 붙여 '모르다'는 뜻을 표현하는 게 대부분의 언어에서 '모르다'를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은 직관적으로도 알 법했다. 


하지만 '모름'은 단지 '알지 못함'이 아니다. '앎'은 '모르지 아니함'과 다르다. 


모르는 것과 아는 것 사이에는 얼마나 먼 간극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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