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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r 01. 2024

La mejor coreana de España

스페인 최고의 한국 여인

상체가 꽈악 조여왔다. 숨쉬기가 힘들어 오는데 그 답답한 느낌이 싫지 않았다. 두 팔로 나를 부여안은 마리아의 품 안에서 나는 옴짝달싹 못했다.


“오 진, 마침내 내가 너를 안게 되었어! 이게 얼마 만이야! (Oh Jin, por fin te abrazo! Cuánto tiempo!)”


마리아는 내 볼에 입을 맞췄다. 물론 스페인에선 상대방과 양쪽 뺨을 번갈아 맞대며 입으로 “쪽” 소리를 내는 인사법이 보편적이다. ‘도스 베소스(dos besos: 두 번의 입맞춤)’라고 한다. 쪽. 쪽. 하지만 마리아의 입맞춤은 시늉만 하는 입맞춤이 아니었다. 마리아가 빨간 립스틱이라도 바르고 있었더라면 내 볼에 원색의 입술 자국이 남았을 진짜 입맞춤이었다. 넘쳐 오르는 반가움을 오로지 입술 힘으로 표현해 보이겠다는 듯 쪽! 쪽!


알레한드로가 자동차 트렁크에서 내 짐을 내려줬다. 나는 “고마워 알레한드로!” 하고 인사했다. 이름을 부르고 보니 그와 내가 제법 다정한 사이인 것처럼 느껴졌지만 사실 우리는 그날 처음 본 사이였다. 그것도 불과 네 시간 반 전에. 카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알게 된 알레한드로가 마드리드에서 산탄데르까지 오는 길에 나를 태워준 것이었다.


함께 차를 타고 온 다른 탑승객들도 알레한드로와 초면이기는 매한가지였다. 모두들 스스럼없이 서로를 이름으로 불렀다.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영락없이 오래간만에 해후한 동네 친구들 느낌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방인을 향해 장벽을 세우는 데 큰 힘을 쏟지 않는다. 어쩐지 넘기에 만만하게 느껴지는 그 낮은 장벽이 나는 늘 마음에 들었다.


알레한드로가 “천만에, 진” 하고 대답했다. 그때 마리아가 알레한드로에게 말했다.


“너는 오늘 스페인에 존재하는 최고의 한국 여자를 태우고 온 거야, 하하! (Hoy has venido con la mejor coreana en toda España, jaja!)”


세상에나. 어쩜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 입에 담기엔 꽤나 낯간지러운 말 아닌가? 그런 것일랑 지금 이 순간 중요하지도 않는다는 듯 마리아 얼굴엔 함박웃음만 가득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그 모습이 눈부시게 천진했다. 난데없이 최고의 한국 여자가 되어버린 나는 그게 마리아 특유의 과장법인 걸 알면서도 생각했다. 마리아를 에워싼 저 강력한 기쁨의 아우라. 그 기원은 분명 사랑일 거라고.


오래간만에 해후한 동네 친구들은 다름 아닌 우리였다. 마리아와 나. 마지막으로 본 게 2019년 2월이었으니까 2024년 2월, 정확히 5년 만에 다시 만난 것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건 2018년 6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였다. 우연히 같은 시기에 같은 에어비앤비에서 각각 방 하나씩을 빌려 지냈던 게 계기였다. 당시에 썼던 일기를 쓱 훑어보니 우리가 그 에어비앤비에서 같이 지냈던 건 6월부터 7월까지 총 두 달, 그마저도 서로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인격체라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서 유독 가깝게 지냈던 시기는 7월 한 달이 전부였다. 맙소사. 대체 그 한 달의 잔상이 얼마나 막강했기에 우리는 여기까지 온 걸까. 팬데믹의 시대를 지나, 늦깎이 청년이자 신출내기 사회인이었던 30대 초반을 지나, 2024년 2월 이슬비 내리는 차가운 밤, 스페인 북부 해안 도시 산탄데르의 어두운 주차장 한 편으로까지.


마리아네 집에 있는 손님방에 짐을 풀었다. 내가 스페인에 오는 것이 확실해지자마자 마리아는 이 방에서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해왔다고 했다. 호텔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침구, 빈 공간을 야무지게 마련해 둔 옷장, 라탄 전등갓이 감싸고 있는 아늑한 백열등 같은 것들이 눈길을 끌었다. 손님방뿐이랴. 거실, 부엌, 화장실 할 것 없이 이 집 안엔 마리아의 세심한 손길이 안 닿은 구석이 없어 보였다.


그러고 보면 집안을 질서정연하게 가꾸고 멋스럽게 꾸미는 데 내가 뒤늦게 재미를 들이게 된 건 순전히 마리아한테서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내가 사는 공간을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모양새로 정성 들여 완성해 놓고 보니, 그 정갈하고 만족스러운 풍경 속에서 내 감정들이 하루하루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마리아는 그렇게 나와 늘 함께였다. 함께 보낸 계절의 기억 속에서. 기억의 조각들이 천연스럽게 스며든 현재의 삶 속에서.


대충 짐을 풀었으니 자, 이제부터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떨어져 지낸 5년의 회포를 목청 높여 풀 우리의 밤이 도래했다. 시곗바늘이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스페인 기준에선 그야말로 적절한 저녁 식사 때였다. 마리아가 샐러드, 빵과 더불어 치즈, 하몽, 살라미 같은 익숙한 안줏거리를 테이블에 준비했다. 와인 한 병도 땄다. 차콜리.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에서 생산된 화이트 와인이라고 했다. 와인 잔으로 나눈 경쾌한 건배가 밤의 서막을 열었다.


"진, 나에게 말해줘. 너한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말해줘. 이제 우리에겐 이야기할 시간이 충분하잖아, 안 그래? (Cuéntame Jin. Cuéntame todo lo que te pasó. Ahora tenemos mucho tiempo para hablar, no?)"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무슨 사건부터 어떤 순서로 전개해 나가야 지난 5년의 근황을 집약적이고도 흥미진진하게 잘 전달했다고 소문이 날까. 나만의 환상 속에서 나는 에미넴이었다. 빠르고 정확한 딕션으로 마리아를 홀리는 실력파 속사포 래퍼였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나는 실력파는커녕 동네 아마추어 래퍼도 못 되었다. 아니, 일반 성인이라고 보기도 애매했다. 또래에 비해 언어 발달이 느린 유아 한 명이 마리아 앞에 앉아 (비교적 최근에 썼던 힘일) 젖 먹던 힘을 다해 제 이야기를 쏟아내는 꼴이라고 하면 차라리 맞을 터였다. 어쩌면 당연했다. 성인기에 배운 외국어를 5년 여 간 안 쓰다가 다시 쓰게 된 상황이었으니까. 다 굳은 혓바닥으로 오래간만에 스페인어를 구사하려니 알던 단어도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나는 단어도 제대로 발음되지 않았다. 내가 구사하는 스페인어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그날 밤 풍경은 음,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았다.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단어의 뜻을 풀어서 설명해 보기도 하고(책상을 뜻하는 ‘escritorio’ 대신 “네 방에 있는, 그 위에 컴퓨터를 올려둘 수 있는 가구!”라고 말해서 마리아로 하여금 대뜸 퀴즈를 맞히게 한다든지), 그 단어가 뜻하는 바를 직접 가리켜 보기도 하고(팔을 뜻하는 ‘brazo’를 말하는 대신 내 두 팔을 마리아의 두 눈앞에 들이밀어 보인다든지), 이따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를 창조해 보려는 참신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독자를 뜻하는 ‘lector’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leer(읽다)’라는 동사에 대충 접미사를 갖다 붙여 ‘leador’라고 일단 내뱉어보고 마리아의 눈치를 살핀다든지).


서로의 삶을 향한 애정과 호기심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소통의 완성도를 높여가려는 최선의 노력을 한 것이었다고 멋들어지게 포장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저 내가 내 분에 겨워 그런 것이었다. 자기표현 본능 때문에 벌인 조잡한 고투였다. 다만 그 무질서하고 조악한 이야기의 파편들을 머리와 가슴으로 소화해 내느라 고생한 이가 있었다. 마리아였다. 이웃들도 모두 잠자리에 들어갔는지 온 세상이 고요해지던 시각까지 마리아는 내 두 눈을 바로 응시했다. 내 서툰 문장들이 스스로 끝맺음을 맺을 때까지 진득이 기다려줬다.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 가릴 것 없이 어떤 이야기에든 스페인 북부 밤하늘처럼 깊은 미소를 띠어주었다. 그날 밤 굴하지 않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냐 진, 너는 아주 잘 말하고 있어. 언어를 배우려면 일단 부딪쳐 보는 용기가 필요하단 걸 너를 통해 배우는 걸. (No, Jin. Hablas muy bien. Aprendo de ti que para aprender un idioma se necesita el coraje de afrontarlo.)”


스페인어권 국가에 가면 여행하기 편하겠다는 말을 친구들이 칭찬처럼 해줄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의아해했다. 일정 부분은 사실이지만 백 프로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어서였다. 현지인들이랑 문제없이 소통할 수 있고, 설령 문제가 생긴다 해도 어려움 없이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장점이었다. 현지인들끼리 나누는 사소한 대화도 내 귀에 쏙쏙 들어오니까 여행의 막간에도 심심할 틈이 없다는 것도 작지 않은 장점이었다.


하지만 언어를 모르는 나라에 가서도 어떻게든 소통은 되는 법이었다. 도리어 소통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여행이 더 짜릿해지고 더 우스꽝스러워지고(나에게 있어 우스꽝스러운 여행은 최고의 여행이다!) 더러는 더 따뜻해졌다. 그 나라의 언어를 내가 알든 모르든, 여행은 종국엔 늘 스스로의 온전한 밀도를 찾아가고야 말았다. 스페인어권 국가에서 여행하는 게 내게 더 편한 건 사실일지 몰라도, 나에게 있어 편한 여행이 긍정이거나 불편한 여행이 부정이지 않으므로 그 사실을 친구들이 꼬집을 때 무조건적으로 수긍하기가 애매했다.


단, 마리아와의 관계에 있어선 달랐다. 내가 스페인어를 한다는 사실이 우리 관계에 중요한 편익이었다. 오늘 하루 생존하기 위한 소통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깊이 탐구하고 바로 이해하는 소통을 하게 한단 점에서 무조건적인 긍정이었다. 바로 그날 밤이었다. 스페인어를 배워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밀려든 건. 새삼스러운 다행감이 웅대한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나를 만나 웃음 짓고, 내 지나간 이야기들에 눈물짓는 마리아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마리아가 준비해 둔 손님방에서 나는 얼마 간을 지냈다. 주중에는 마리아가 출근해 있는 동안 혼자서 읽고 쓰고 먹고 자며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는 마리아와 함께 산탄데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마리아도 산탄데르로 이사 온 지 이제 겨우 9개월 차. 연고가 없는 도시에 오로지 직장 때문에 터를 잡게 되었던 고로, 마리아도 나처럼 여행자의 자세로 산탄데르를 탐색해 보겠다고 했다.


자세. 바로 그것이었다. 마리아와 나는 자세가 닮아 있었다. 소비하는 자세, 심신을 가꾸는 자세, 유머에 반응하는 자세, 관계에 임하는 자세, 타인을 대하는 자세, 이성을 대하는 자세, 주거를 돌보는 자세, 직무에 임하는 자세 등등. 넓디넓은 이 별의 한가운데서 이토록 닮은 친구를 발견했다는 게 경이로웠다. 스스로 성실히 익혀두었던 외국어로써 이 관계를 가꾸어가고 있다는 데서 오는 약간의 지적 성취감도 무시할 수 없었다.


마리아가 출근하고 나 혼자 남은 월요일 아침. 산탄데르 시가지에 위치한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산탄데르에서는 스타벅스 같은 모던한 느낌의 카페를 찾는 게 어렵다. 여기 있는 카페들은 대부분이 스페인의 전통적인 카페테리아, 즉 커피뿐 아니라 간단한 음식과 주류를 함께 파는 바(bar)의 형태를 한 공간들이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들에 비하면 외국 문화의 영향을 덜 받은, 외국인 여행자 입장에선 ‘이곳이야말로 진정 스페인스러운 스페인이 아니던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도시다.


커피와 조각케이크를 주문했다. 직원은 내가 1.45유로만 더 지불하면 매대에 있는 샐러드나 샌드위치 하나를 추가로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프로모션을 진행 중인 모양이었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해 보였다. 알아듣긴 알아들었는데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 백 프로 확신이 들지 않았다. 직원은 직접 매대 앞으로 나와서 내가 가져갈 수 있는 메뉴들을 하나하나 짚어주고 설명해 주었다. 아마도 본인이 평상시 말하는 속도의 0.5배속 혹은 그 이하였을 속도로.


주문을 마치며 직원이 내게 이름을 물었다. 외국 스타벅스에선 늘 있는 일. 음료가 준비되면 내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진”이라고 대답하며 알파벳 철자를 알려주었다. 이번엔 직원이 고개를 갸우뚱해 보였다. 내가 일러준 대로 ‘Jin’이라고 쓴들 그 철자가 스페인어로는 “진”이라고 읽히지 않아서였을 것이었다. “청바지(Jean)의 진!”이라고 덧붙여 주면 외국인 여행객들도 내 이름을 곧잘 기억하더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아서 그 방법으로 설명해 주고 싶었는데 아뿔싸, ‘청바지’가 스페인어로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마리아에게 쓰던 수법을 다시 썼다. 그 단어가 뜻하는 바를 직접 가리켜 보이기. 나는 대뜸 내 바지를 한 꼬집 집어 올려 보였다. 청바지도 아니었으면서. 그래도 직원은 내 의중을 찰떡 같이 이해하고는 “아! 진!” 하고 미소를 띠었다. 휴. 성공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아침이었다. 매장에 들어오는 손님들마다 물에 젖은 생쥐 모양이었다. 지팡이를 짚은 중년 여인이 느린 걸음으로 입장했다. 슬로모션 같은 걸음새를 가만 살펴보니 여인은 내 옆테이블에 앉으려고 다가오는 중이었다. 여인이 자리에 앉기 편하도록 나는 테이블을 조금 옆으로 치워주었다. 여인은 내게 “고마워”라고 했다. 직원은 여인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여인에게 직접 음료를 가져다주었다.


“이게 웬 바람이람! (Ay, qué viento!)”


여인이 창밖 풍경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그러게요.”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잘 있어! (Adiós!)”


에스프레소를 다 마신 여인이 자리를 뜨며 내게 인사했다. 나뿐 아니라 여인의 반대편 옆테이블에 앉아 있던 소녀와도 산뜻한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렇지. 이게 스페인이지. 처음 본 사람과도 인사하고 수다 떨고 또 작별하는 땅을 5년 만에 밟게 된 것이 새삼 실감되었다.


마리아가 퇴근할 시간은 다섯 시. 예보는 그 시각까지도 산탄데르에 거센 비바람이 그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날씨가 좋아도 좋지 않아도, 아무래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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