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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anna Nov 08. 2022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 심윤경 에세이

소녀 같은 나의 할머니

  나는 정확히 이십 분마다 잠에서 깼다고 한다. 엄마는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면 '지긋지긋' 하다는 단어로는 체 표현이 되지 않는 듯 억울해 보인다. 도대체 왜 그렇게 통곡을 멈추지 않는지 알 수가 없어서 새벽에 혼자 나를 들쳐 매고 친정엄마를, 나의 외할머니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 적도 있단다. 외할머니도 신생아 시절의 나를 떠올리실 때면 '너 같이 우는 애는 평생 못 봤지.'라고 하시다가도 그 뒤에는 항상 '얼마나 복스럽게 오물오물  먹는지... 이제 막 걸어 다닐 때 뒷모습이 뒤뚱뒤뚱 너무 귀여웠지.' 하시며 온갖 재밌고 사랑스러운 기억들을 꺼내어 보이신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거의 대부분을 할머니와 같은 방에서 지냈다. 나에게 할머니는 엄마, 아빠, 동생과 항상 함께하는 진정한 가족, 그 이상의 존재이다. 

     나는 요리를 즐겨하지도, 잘하지도 않지만 할머니가 맛있게 해 주시는 음식을 보면 이상한 욕심이 생긴다.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하면 할머니는 검지와 중지를 한 마디 정도 감싸며 '된장을 요만치 넣고'부터 시작해, 주어가 대부분 생략되어 도대체 뭘 어떻게 넣으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설명을 이어하시고, 나는 오 분 뒤쯤 포기하게 된다. 할머니의 언어는 생각보다 어려운데, 주로 주어는 명확한 명사보다는 대명사, 예를 들면 '그거, 저기, 뭐냐, 갸가' 등으로 시작하고, 동사는 주로 '했는데, 그랬는데, 그랬지' 등으로 뭉뚱그려지고, 목적어는 주로 생략된다. 앞뒤 정황과 문맥을 간파하고 있지 않으면 대화는 이어지지 않으므로, 높은 집중력을 요하는 과목이다. 그래도 같이 산 세월을 증명하듯 가족들 중에는 내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자부한다.

    작년에 결혼을 하면서 집을 나오게 되고, 가족들과 떨어져 살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도 서운해 한건 다름 아닌 할머니셨다.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내가 집에 간다고 하는 날에는 전날부터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기다리신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이쁜이 왔어.', '이쁜이 봐서 좋다. 이렇게 봐서 좋아.'라고 하신다. (놀랍게도 나는 거의 매주 친정집에 가는데도 말이다.) 별거 아닌 일에도 '역시 우리 이쁜이 장하다'라고 하신다.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할머니에게 나는 어떤 의미일지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나는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삶의 끈을 놓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일이 무척이나 대견스럽게 느껴진다. 

    여든 살이 넘어가시면서 하루하루 달라져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 여간 상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만 할머니의 확고한 '천국과 지옥'의 세계관을 떠올리면 마냥 슬프지는 않은 것 같다. 할머니는 삶과 죽음, 사후세계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죽으면 천국 가는 거지. 지금 살고 있는 여기가 지옥인 겨.' 할머니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을 품어, 천국에 다 데려갈 것이라고 믿으신다. 나 또한 그 말을 믿고 살고 있다.

    내 휴대폰에는 할머니의 전화번호가 '소녀같은할머니'로 저장되어 있다. '소녀 같은'이라는 단어가 나의 할머니를 가장 잘 묘사하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할머니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모든 사물을 의인화해서 시인처럼 말하는 습관이 있으며, 작은 일에도 손뼉 치며 기뻐하시다가도 별거 아닌 일에 발을 동동 구르신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처럼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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