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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anna Mar 24. 2023

마음의 중심이 무너지다 - 엘린 색스

우울증을 위한 책

조현병, 중증 정신질환과 같은 단어들은 책을 읽기 전에는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이 책은 정신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누군가에 대한 시선을 바꿔주는 아름다운 책이다. 게다가 나는 내가 우울증을 대하는 마음과 그녀가 조현병을 대하는 자세가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신적인 질환은 환자 스스로가 그 병을 받아들이는 데도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 주변 이들에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태도가 필요하다. 단지 병원 치료나 약이 아니라 주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처음 항우울제를 처방받았을 때가 기억난다. 한 번 먹고는 몽롱한 기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아서 나머지는 그냥 버렸다. 약을 먹는다고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나는 우울증을 받아들이기 위해 수많은 우울들을 만나야만 했다.


나는 그녀가 약물의 힘을 빌리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나의 과거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녀가 왜 그런 행동들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그것은 나에게 또 다른 위로가 되었다. 나도 그녀처럼 위로가 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라본다.




위로가 되어준 문장들.


p.61 사실 모든 걸 의지력으로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이 꼭 진실은 아니다. 우리가 이해는 고사하고 통제조차 할 수 없는 자연과 상황의 힘이 존재하며, 이 힘에 맞서 승리만 하겠다고 고집하는 것, 승리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그 무엇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은 영혼을 두들겨 맞겠다고 자초하는 일일 뿐이다. 모든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진실이니까.


 p.431 역설적이지만 내가 정신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수록 그 병이 나를 정의하는 일은 더 줄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 그 이안류도 나를 놓아주었다.


 p.445 몇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히던 심각한 의문이 하나 있었고, 결국 나는 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로연에 외계인들도 참석할까?”

“아니.” 스티브가 차분히 대답하고는 팔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거기 외계인은 하나도 없을 거야, 엘린. 그 점은 걱정 안 해도 돼.”


 p.466 내 인생을 글로 써야 한다고 느낀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정신질환 진단은 당신이 반드시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성취가 전혀 없는 황량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선고가 아니다.


 p.473 당신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에게 주어진 도전은 자기에게 딱 알맞은 인생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건 정신질환이 있든 없든 모두에게 주어진 도전이 아닐까? 나의 행운은 내가 정신질환에서 회복했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회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결코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인생을 찾았다는 것, 그것이 나의 행운이다.





공감했던 문장들.


 p.109 내 입에 알약을 집어넣는다는 건 생각만 해도 역겨웠다. 내가 회복하려면 약이 필요할 정도로 허약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었다는 생각 역시 그만큼 역겨웠다. 나는 단언했다. “나는 아픈 게 아니에요. 나쁜 거지.”


 P.237 이건 정신질환자가 처하는 전형적인 곤경이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치고자 하는 생각에 시달리는 동시에 자신이 해치겠다고 위협하는 대상들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다.


 p.245 내가 보기에 내 문제는 미쳤다는 것이 아니라 나약하다는 것이었다.


 p.334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은 다양한 얼굴을 지닌 해악인데, 의료계 역시 그중 여러 개의 얼굴을 달고 있다. 언젠가 스티브가 일했던 프로그램에서 한 정신질환자는 허리뼈가 부러진 채로 몇 주를 지냈다. 의료진 중 그 누구도 그의 통증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정신질환자라는 이유에서였다.


 P.384 우리는 결함이 있었고 모자라는 존재였고 충분하지 않았다. 각자 많은 문제를 갖고 있기는 했지만, 그 문제의 해결책이 작은 플라스틱병 한두 개에 담긴 처방약이라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걸 먹을 때 나는 그냥 내가 아니에요.” 한 사람이 말했다. “저 약이 나를 다른 누군가로 바꿔놓거든요.”


 P.399 그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약이라는 ‘목발’을 거부해 왔다. 나에게 약을 쓴다는 건 내 의지가 약하고 인격이 나약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절대적 확신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 생략…) 사실인즉 내 병은 약이 필요한 병이다. 약을 쓰지 않으면 병이 도진다. 약을 쓰면 나아진다. 나는 이걸 왜 계속 힘들게 다시 배워야만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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