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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anna Apr 09. 2023

불안에 대처하는 법 - 안드레아스 슈트륄레

우울증을 위한 책

편도 50km에 달하는 출퇴근 길을 자가용을 운전하여 움직이는 이유는,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혼자서 지하철을 타는 것을 상상해 보면, 코와 입을 꽉 막고 물속에 잠수하여 숨을 참는 듯한 갑갑함이 느껴진다. 그뿐만 아니라 혼자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면 나는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울고 싶어 진다.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에도 불안감을 느끼곤 하는데, 특히 청소나 정돈이 되어 있지 않다면 더욱 숨이 턱 막히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침대나 소파로 쓰러져서는 울며 잠을 청한다.


덕분에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 남편은 집을 깨끗이 정리하고 나오려 노력하고,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대신 집에 와서 일을 하는 경우가 잦다. 남편은 나에게 신경안정제 역할을 해주는데, 그러기 위해선 남편은 상당한 혼자만의 시간을 포기하고, 게으른 성격을 이겨내고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한다. 

책에서 불안장애는 ‘시스템적 질환’ 즉 ,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가족들을 정신 질환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온갖 정신질환을 바로 옆에서 생생히 겪으면서도 그것들을 하나하나씩 보듬어주고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남편을 내심 존경하면서도, 내가 그에게 어떠한 정신적인 악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또 다른 불안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공황장애는 ‘광장공포증을 동반한 공황장애’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당사자에게도 괴로운 일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큰 희생이 필요한 질병이다.


p.60 공황장애와 광장공포증을 동시에 앓는 경우, 고통과 피해가 굉장히 크다. 공황장애를 앓는 사람 중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하는 비율도 상대적으로 높은데, 이것은 공황장애와 동시에 우울증을 겪기 때문이며, 이런 우울증은 불안장애로 말미암은 고통과 피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p.69 당사자를 대신해 일상의 여러 일들을 떠맡아야 할 수도 있다. 장 보는 일과 운전을 도맡아 해야 하며, 영화 관람이나 주말 기차 여행처럼 예전에 즐겁게 함께했던 여가 활동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나에게 혼자 지하철을 타는 일은 매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었고, 남편과 함께라면 불안은 덜 하지만 때로는 갑작스레 공포감이 밀려와, 외출준비를 하고 나섰다가 다시 집에 곧장 돌아오는 일도 잦았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남겨질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해 신경안정제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남편이 화장실에라도 가야 할 때면, 남편은 나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사람이 최대한 없이 편히 앉아있을 수 있는 장소를 골라, 내가 책이라도 읽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나는 심하지는 않지만 경미한 사회공포증도 겪고 있는데, 우울증이 심했을 때 처음으로 증상이 나타났다. 나는 낯선 사람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것도 힘들고,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주문할 때에도 얼굴이 붉어져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여전히 직장 생활에서  ‘적면공포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피하지 않고 꾸준히 직면한 결과, 많이 좋아질 수 있었다. 


책에는 불안장애를 겪었던 환자들의 인터뷰와 그를 옆에서 지켜본 가족들의 인터뷰가 함께 실려있다. 불안장애가 시스템적 질환인 만큼, 이 책은 불안장애를 느끼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124 불안은 승객과 같아요. 조용한 동반자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요. 하지만 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아가고 있어요. 요즘엔 콘서트 일정을 무리하게 잡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불안 증세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고요. 


책에 따르면,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다른 심리질환을 겪거나 두려움으로 인한 다른 문제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우울증은 보통 불안장애를 경험한 뒤, 혹은 불안장애로 말미암아 나타나게 되는데, 나의 경우는 어떤 증상이 먼저 시작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의 우울증과 불안증세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의 제일 마지막 파트에서는 불안장애를 겪은 사람들과 그의 가족들의 치료 경험에 대한 인터뷰가 담겨있다. 공감과 위로가 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p.293 나는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에게 편두통이 찾아오는 것처럼, 내겐 공황 발작이 찾아온다고요.

p.294 오늘 나는 행복할 수 있어요. 두려움이 있어도, 갑자기 두려움이 찾아온다고 해도 말이에요.


불안장애를 두려워하고 이겨내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많은 이들에게, 객관적인 자료와 사료들을 통해서 불안장애 자체를 ‘대상화’ 할 수 있는 관점을 만들어주고, 누구나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어, 결국엔 극복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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