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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Jay May 02. 2020

시간이 '순삭'되는 나만의 새로운 취미, 영어 필사!

나는 다이어리 쓰는 대신 노트에 영어 문장을 베껴쓴다.

나는 며칠 전 작은 방 책장에 있는 책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이가 옆에 딱 붙어서 놀아달라며 졸랐을 텐데 아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집은 너무도 조용했다. 언젠가 우리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조용하다 싶으면 뭔가 사고 치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하던 일을 멈추고 방을 나갔다. 아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놀이 공간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거실로 걸어갔다. 그러자 점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곳은 바로 거실 구석에 있는 내 책상 쪽이었다. ‘헉!’ 내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엄마의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요즘 아이는 집 안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부엌 싱크대 서랍은 기본이고 신발장, 빨래 바구니, 재활용 쓰레기통 등 뒤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중에서 내 책상은 아이에게 최고의 놀이터다. 틈만 나면 거실 한쪽에 자리 잡은 내 책상의 서랍을 일일이 다 열어보며 시간을 보낸다. 그날도 아이는 내 책상과 씨름 중이었다.

 “어머, 우진아! 이게 다 뭐야?”

 아이는 신이 났는지 씩 웃어 보였다. 내 서랍 속에서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다이어리 몇 권을 양손으로 꽉 쥔 채로 말이다. 아이는 다이어리 속지를 좍좍 찢으며 놀고 있었다.




 


아이가 가지고 놀던 다이어리는 2016년부터 작년 2019년까지 새해맞이 기념으로 매해 사둔 것이었다. 총 4권이었는데 모두 새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단 1권도 제대로 끝까지 써본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보통 새해 첫 달인 1월은 일과를 꽤 꼼꼼하게 기록해두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기록의 열정은 점점 사라졌다.

 결국, 다이어리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올해는 다이어리를 사지 않았다. 어차피 1월까지만 쓰고 말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아이의 손에 들려있는 다이어리를 보자 궁금했다. 매일 책을 읽고 노트에 필사는 잘하면서 다이어리에 몇 자 적는 일은 왜 이리도 힘든 건지. 그리고 그 이유를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이어리를 쓰는 일에 열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소한 일상을 글로 기록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글 대신 주로 사진이나 영상으로 매 순간을 담아두는 편이다. 핸드폰 하나면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생생하게 담을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서 음식 사진을 예쁘게 찍어내면 나중에 사진만 봐도 음식 맛이 저절로 기억난다. 굳이 글로 적지 않아도 촬영 버튼 하나면 모든 것이 이 손바닥 크기만 한 기계 안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그럼 다이어리 쓰는 일은 어려워도 영어 원서나 영자 신문을 꾸준히 필사할 수 있는 건 왜일까? 필사하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열정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단단해지면 좋겠어>에서 박진희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혹은 달성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거나 귀찮음을 감내하고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이 열정이다. 열정이란 좋아하는 것,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할 때 한시적이지만 나도 모르게 열을 올리는 일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움을 느끼는 일. 그것이 바로 열정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취미로 다가온다.



 내게는 영어 원서를 읽고 필사하는 일이 열정이고 취미이다. 나는 아이가 잠든 후 졸린 눈을 비비며 읽다 만 원서를 편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영어 문장이나 어느 단락을 발견하면 형광펜으로 줄을 긋는다. 정해진 분량을 다 읽고 나서는 노트에 표시해둔 문장을 옮겨 적는다. 필사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글자만 베껴 쓰지 않는다. 문장 구조 하나하나씩 잘근잘근 씹어먹는다는 생각으로 쓴다. 그래야 문장 뼈대가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는다. 필사가 끝나면 내 생각을 영어로 정리해보거나 베껴 쓴 문장을 이용해서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이것은 천천히 인풋과 아웃풋을 늘리는 나만의 영어 공부법이다.     








원서를 읽을 때 안 그래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필사까지 하면 더 오래 걸리지 않아요?


 블로그 이웃들이 내가 필사를 한다고 하니 이렇게 질문을 했다. 그렇다. 시간이 세배 이상은 오래 걸린다. 가끔 필사하느라 원서 읽는 속도가 더뎌질 때가 많다. 아웃풋은 인풋 양에 비례한다.’라는 말에 마음이 흔들려 필사는 잠시 멈추고 읽는 데만 집중하려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고 행복함을 느끼는 방식대로 가기로 했다.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서.

 영어를 더 잘하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는 과정의 즐거움이 더욱 가치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원서 읽기와 필사는 나의 시간이 ‘순삭’되게 만드는 새로운 취미이다. 남들처럼 예쁘게 다이어리를 꾸미지는 못하더라도 앞으로 꾸준히 노트에 영어 문장을 꼼꼼히 써나가는 것만큼은 누구보다 즐길 자신이 있다.



영어 원서 필사하기


If you organize your life around your passion,
you can turn your passion into your story
 and then turn your story into something bigger-something that matters.

당신의 삶을 열정으로 채울 수 있다면,
당신은 당신의 열정을 당신의 이야기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무언가 더 크고 훌륭한 것이 될 것이다.

 by Blake Mycos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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