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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Oct 15. 2023

피해는 누가

TEXTIST PROJECT

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났다. 여야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고, 여야 각각의 내부에서도 편 가르기 싸움이 극한으로 치닫은 때에 벌어진 선거. 결과가 나왔음에도 이렇다 저렇다 말들이 많이 오갈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당선자가 나왔기 때문에 승자와 패자가 선명하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 물론 더 복잡하고 말이 많은 쪽은 패자의 당에 서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당을 다시 살려야 한다, 쇄신해야 한다, 누가 더 잘못했고 누가 덜 잘못했다, 누구 말이 맞았다, 누구 말이 틀렸다, 어떻게 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어떻게 하면 된다, 말들이 끊임없이 오가고 있고, 여기에는 남녀노소가 없다. 당 내부적으로 오고 가는 수많은 말들의 결론은 결국, "내년 총선을 그래서 어떻게"로 귀결된다. 구청장 선거 한 번이지만, 그 이상의 거대한 철학과 신념이 부여되어 있었다.


 승자 쪽의 사람들은 당장 한시름 놓았지만, 그렇다고 만세를 외칠 분위기는 또 아닌 것 같다. 이들 또한 자당 내부에서 누구 편 누구 편이 아주 선명하진 않더라도 제법 색상은 드러날 정도로 줄은 세워져 있나 보더라. 이기긴 했지만 어쩌구, 선거 전에 있었던 어떠어떠한 사건은 그럼 저쩌구, 말들이 조용조용하게 오고 간다. 물론 패자 쪽만큼 큰 목소리는 아니지만, 결국 이들의 조용한 목소리도 다툼이나 다름없다. 조용한 목소리들이 부딪히는 결론도 결국 "내년의 총선을 그래서 어떻게"로 향해 있다. 구청장 보궐선거에 이 쪽 당 또한 많은 철학과 신념을 부여했다. 


2.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정치인들이 자기네들 맘대로 트위터로 사용 중인 한 사거리의 플랫카드가 또 금세 교체되어 있었다. (나는 이 플랫카드들이 가지는 정치인들의 이기심과 안하무인의 태도 때문에 '현수막 전쟁터'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정제해서 쓰다 보니 감정 그대로의 비속어를 쓰지 못해 아쉬운 글이기도 하다.) 플랫카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제 대립과 정쟁을 멈추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 플랫카드를 본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분노를 느꼈다. 자기네들 멋대로 시민들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마다 추접스럽고 유치한 단어들로 니가 나쁘네, 내가 착하네, 니가 더럽네, 내가 깨끗하네,라는 문구를 걸어 놓으셨던 분들이다. 대립과 정쟁은 그 플랫카드를 걸었던 그 자리에서, 그 플랫카드를 걸었던 바로 그분들이 하셨었다. 


 양심이 있다면, 부끄러움과 이성, 상식과 지혜를 가진 인텔리들이라면 지금이라도 "시민들의 사거리를 저희들이 마음대로 낙서장으로 써서 죄송합니다. 이제 이딴 짓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걸어놔도 모자랄 판인데, 남 얘기처럼 타이르는 듯한 문구를 걸어놓는 정치인은 기억력이 나쁜 걸까, 양심이 없는 걸까, 아니면 둘 다일까. 글쎄, 어쨌든 시민들 '킹받으라고' 대놓고 저렇게 문구를 뽑는 거라면 그것도 능력이다. 


3.

 나는 강서구에 살지도 않고 여와 야 중 누가 더 나쁘고 덜 나쁜 지도 수치적으로 계산해 보지 않았으며, 각각의 당 내부에 어떤 계파가 있고 누가 그 계파의 대장이며 누가 줄 서있는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진정으로 확실한 사실이 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끝나고 온갖 정치인들이 서로 한 마디씩 얹으며 서로 자신이 잘났다고 떠벌이고 있지만, 그중 단 하나도 '강서구민들의 삶'에 대해 언급한 말을 찾지 못했다. 이쯤 되면 '강서구'라는 지역도, 공약도, 사실은 필요 없었고 그냥 학급 인기투표 정도의 가벼움으로 바라봤어야 하는 건가 싶을 정도다. 


 한 개의 구, 그러니까 서울특별시의 구라면 웬만한 시보다 인구가 많은 자치단체인데(강서구의 인구는 약 56만 명이다.), 그곳의 행정업무 대표자를 뽑는 선거가 끝났는데, 강서구의 주요 행정적 이슈나 아젠다, 구민들의 애로점과 필요한 개선점에 대해선 하등 이야기가 없고(아마 선거운동 때는 찔끔찔끔 얘기했을 것이다. 찔끔찔끔.) 누가 이겼네 졌네, 누구는 누구 편이네, 아니네, 하고 있으니 기도 안 찬다. 


 이 모든 인간들이 바로 우리들이 뽑아 놓은 우리네 대표님들이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잘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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