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가가 되긴 글렀지만

by 송광용

난 책을 읽는 게 느린 편이다. 어느 날 내가 책에 미쳐서 모든 일을 중단하고 골방에서 하루 종일 책만 보게 되는 날이 온다 해도, 내 방에 재어둔 책을 다 읽진 못할 것이다. (책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많은 저자와 유튜버들을 보면 입이라도 맞춘 듯 골방이나 도서관에 틀어박혀 엄청난 수의 책을 읽었다는 무용담을 꼭 말하지만, 난 이제 틀렸다. 40대의 기혼 남자에게 그런 일은 목숨을 걸고 조기 졸혼을 감행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보통 책을 펴는 일부터 문제가 생긴다. 책상에 앉으면 떡하니 버티고 선 컴퓨터 화면을 검은색으로 유지할 자신이 없어진다. 뉴스에서 본 요즘 뜨는 화제의 영상이 궁금하고, 손흥민의 골 장면이 궁금하고, 보다만 '기묘한 이야기'가 나를 손짓하며 부른다. 컴퓨터 화면을 검은색으로 유지하고 책을 펴는 일은, 나의 의지보다 책의 날카로움이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많다.


영상물을 뚫고 올라올 정도로 날카롭고, 그 날카로움이 방해물들을 넘어서 내 허파꽈리까지 닿아서 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책들이 있다. 데이트를 앞두고, "오늘은 데이트보다 TV에서 하는 야구 경기나 보며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이미 그 만남은 생기를 잃은 것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책을 펴려는 마음보다, 류현진의 패전 경기 하이라이트에 더 관심이 간다면, 그 책을 끝까지 읽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류현진이 이긴 경기 하이라이트까지 뚫고 올라올 정도의 책은, 윤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다독가가 되기 위한 자질은, 강인한 의지나 책에 대한 처절한 집착보다 내게 맞는 책을 잘 고를 줄 아는 능력에서 오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 꽤나 날카로운 책을 읽고 있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라는 하루키의 에세이다. 하루키 에세이는, 너무 많이 회자돼서 말하기도 지겨울 정도지만, 언급하는데 쿼터제가 있는 것도 아니니 또 한 번 입에 올려본다. 이 책은 하루키의 시시껄렁한 일상을 담고 있다. 힘을 빼고 던지는 커브 같은 느낌이다. 줄을 긋고 싶은 구절도 별로 없고, 감탄을 주는 문장도 찾아보기 어렵다. 통쾌하게 꽂히지 않고, 느슨한 궤적으로 흐물흐물 날아와 힘없이 미트에 꽂히는 공 같달까. 싱거운 농담 같은 글을 보며 무라카미 하루키도 역시 아재였구나, 하는 걸 느끼고 있다.


하루키는 칼럼에 꾸준히 실렸을 이 글들을 쓸 때, 애초부터 뭔가 메시지를 전해야겠다는 의지를 갖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힘을 빼고 써 내려간 글들이 뾰족하게 내 밤을 찌르고 있다. 이 책은 언제까지고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 내게, 의도하진 않았을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 메시지는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지만, 독자 개별적으로 읽어낸(혹은 받은 인상) 것에 가깝다. 그건 "힘을 좀 빼고 쓰는 법을 익혀야겠다."는 것이다. 유혹거리들을 뚫고 죽순처럼 자라서 기어코 내게 뭔가를 주는 뾰족한 책들을 계속 만나고 싶다.


애초에 다독가가 되긴 글렀다. 화려한 속독 기술도, 유혹을 떨쳐내는 강한 의지도 내겐 없다. 다만, 어떤 책을 만나면 밤을 밝히는 게 즐겁고, "아, 이거 좋은데." 하며 활자를 향한 선호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난 여전히 '읽는 사람'의 카테고리에 속해 있다. 어떤 문장들의 연결은 세상 그 어떤 명장면보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각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어떤 문장들은 한번 찍히면 그 인상이 마음에 오래간다. 그건 고드름을 통과해 반짝이는 햇빛을 보는 일과 비슷하다.


바다가 좋은 제주나 오키나와 같은 곳을 갈 때면, "자연 말고 뭐가 더 필요해?" 하고 보란 듯 외친다. 그렇지만 뒤로는 가서 뭘 읽을까 고민하며 캐리어 한쪽을 책으로 채우는 사람이 있다. 내식대로 표현하자면, 고드름을 통과해서 반짝이는 햇빛의 인상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평소엔 유튜브나 뒤적거리는 것 같아 보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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