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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광용 Oct 29. 2023

불안한 로맨스가 끌린다, <이두나!>

넷플릭스 드라마 <이두나!>를 보고

로맨스는 어디에나 있다. 액션, 공포, 드라마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들어 있는 게 로맨스다. 최근엔 로맨스를 표방하는 영화나 드라마에 관심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무빙> 같은 액션 드라마 속에 녹아있는 달달한 로맨스에 설레긴 하지만, 로맨스를 위한, 로맨스에 의한 그런 영상물에 영 손이 안 간다. 특히, 로맨틱 코미디는 좀처럼 마음먹기 힘들다. 내 마음이 낡은 탓이라도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내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로맨스물이 나오긴 한다. 며칠 동안 두세 편씩 본, 넷플릭스 드라마 <이두나!>가 그런 류다. <이두나!>는 마음의 문제로 그룹을 탈퇴한 아이돌 여가수(수지)가 지내고 있는 셰어하우스에, 명석하고 건실한 대학생 이원준(양세종)이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로맨스물이다.

 이두나는 여러 불안과 스트레스 때문에 무대에서 노래를 못하고 쓰러지는 사고가 난 뒤, 팀을 탈퇴했다. 이두나에겐 자식을 돈 주머니로 생각하는 엄마 문제도 있다. 자신을 발굴해서 키워준 매니저를 사랑하는데, 그에게도 외면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루하루 아무것도 안 하고, 정원에 앉아 담배만 뻑뻑 피고 있다. 친구도 없고 마음 둘 데도 없다.

 대학생 이원준은 홀어머니 슬하에서 아픈 여동생과 함께 가난하게 살아왔지만, 대학을 뛰어난 성적으로 입학한 청년이다. 그는 우직하고, 성실하며 매사에 곧다. 불안정하고, 거침없이 욕을 내뱉고, 성깔 있는 이두나가 그와는 반대로 보이는 이원준을 만났을 때 화학 작용이 일어난다. 이야기는 두 남녀가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두나!>의 가장 큰 미덕은, 압도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수지는 상처 때문에 거칠고 흐트러진 전직 아이돌 가수를 거침없이 표현해 낸다. 역할이 아이돌이기 때문에, 메이크업이나 의상을 절제할 필요도 없다. 화려하고 세련된 수지의 클로즈업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심박수가 올라간다. 양세종은 진중하고 건실한 청년 그 자체를 보여준다.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찍 철이 들어버린 그런 캐릭터다. 그런 그가 자연스럽게 이두나를 보듬고 감싼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장면은, 이두나가 쓸쓸하게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다. 이두나는 마당에서, 옥상에서, 창가에서,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피운다. 담배는, 이두나의 상황과 불안과 흐트러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상징이다. 이두나가 담배를 피울 때마다 내 마음도 서늘하고 허전한 기운으로 가득 차곤 했다. 위안이 필요한 마음이, 가느다란 담배, 금방 재가 되어버릴 그 작은 것에 위태롭게 기대고 있는 것 같아서. (근데, 수지는 정말 능숙하게 속담배를 피운다. 원래 폈던 것일까, 연기 때문에 배운 것일까 궁금증이 일었다..)

 <이두나!>를 보면서, 난 가장 최근에 빠졌었던 로맨스물 <사랑의 이해>를 떠올렸다. <사랑의 이해>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의 파고가 아련하게 되살아났다. <이두나!>에서 그와 비슷한 감정의 파고를 느낀 것 같다.(<사랑의 이해>가 줬던 먹먹함이 더 세긴 했다.) 예전엔, 밝고 웃기고 좌충우돌하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런 류는 정말로 허구라는 기분이 들어서 이젠 안 끌리는 것 같다. 상처를 안고 있는 두 남녀가 자기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불안한 사랑을 이어가는 식의 이야기가 끌린다. 허구지만, 정교하게 진짜 세계에 발을 대고 있는 허구라서.

 우린 결국 모두 불안한 존재 아닌가. 숱한 사랑을 한 사람도 결국 숱한 이별을 해오지 않았던가. 사랑을 얻고, "그 뒤로 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이야기가 끝나도, 그것이 진짜 끝이 아니라는 걸 우린 모두 알고 있다. (오래)와 (행복하게) 사이엔 불안, 권태, 후회, 식어버린 열정, 공허 등 무수한 감정들이 끼어든다는 것도. 그래서 그런 이야기에 점점 더 끌리는 것 같다. 불안, 권태, 후회 따위의 감정을 더 또렷이 직시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이두나 #넷플릭스 #수지 #양세종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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