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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광용 Mar 06. 2024

화장실 에피소드

도서관 화장실에 들어갔다. 변기칸이 두 개 있는 다소 협소한 화장실이었다. 들어가니까, 평균 이상의 향내가 훅 끼쳐왔다. 서로의 사정과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상황, 원래 화장실이라는 곳이 그런 곳 아닌가. 서로 구린 뒤를 봐주는 곳 말이다.

이제 막 향내를 피워 올린 사용자는 종이를 부스럭거리며 뒤처리를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조금 뒤에 벌어졌다. 한 사람이 들어왔다. 남자는 "와, 냄새!" 하며 일갈하더니 바로 나가버리는 거다.(앞서 말했다시피, 화장실이 상대적으로 협소했고, 향내는 평균을 한참 상회하긴 했다)
 
그 순간, 부스럭거리던 변기칸 안의 기척이 뚝 끊겼다. 화장실엔 나와 변기칸의 그, 둘밖에 없었다. 우리 주변엔 금세 정적이 가득 찼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난 기척을 내는 게 미안했다. 내 존재만으로 그는 민망해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소변기에서 바로 벗어날 수도 없었다. 일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얇은 칸막이 안에서 바깥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듯 느껴졌다. 휴지의 부스럭거림도, 숨소리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난 볼일을 마쳤고, 한발 떼자마자 자동으로 물이 왈~ 내려가는 소리. 우리 사이의 정적과 긴장이 일거에 무너졌다. 미안했다. (더 버틸 수 없었..) 내 존재가.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난 황급히 손을 씻고 나왔다. 나오며 마음으로 속삭였다.

"전 당신의 일이 잘 풀리길 바랄 뿐입니다. 부담 갖지 마셔요. 전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아,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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