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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ndy An Oct 17. 2024

사귐이 오고 간 호텔과 나 사이, 고르키 호텔

고르키 아파트먼트 호텔(Gorki Apartment Hotel), 베를린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쿵쿵 뛰고 자유와 포용의 향기가 나는 그곳, 베를린. 베를린은 어떻게 불러도 쿨함이 진동한다. 가령, 영어로는 ‘벌린’, 독일어로는 ‘베알린’에 가까운 소리가 나고, 프랑스어로는 ‘베흘렁’이라 발음하지 않나. 하나 같이 모두 묘하게 매력적이다. 그리고 하나 같이 다 베를린스러움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많은 것들을 잃어보기도 하고, 포용하고 허용해보기도 한 베를린만의 베를린스러움 때문일까. 여행하는 내내 어쭙잖은 독일어로 애정을 과시해 보겠다며 연신 이히 리버 베알린(Ich liebe Berlin)을 외치며 다녔다. 누가 듣든지 아니 듣든지 내 진심은 공기를 타고 베를린의 곳곳에 흘러 흘러 가닿으리라 기대하고 상상하면서. 베를린을 만난 순간부터 베를린과 급속도로 친해지고 싶어서. 악명 높은 베이징 환승, 약간의 연착 그리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 모두 녹록지 않았지만 호텔 ‘고르키 아파트먼트(이하, 고르키)’에 다다른 순간 은밀히 쌓인 피로와 배신감이 씻겨 내려갔다.


공항에서 올라탄 버스에서 한 정거장 일찍 내려버린 바람에 애매한 거리를 캐리어를 들고 걸어야 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차가워지려던 참에 고르키의 묵직한 문을 발견했다. ‘다 왔다! 집이다’라는 외침이 절로 나왔다. 숨을 한 번 고르고 나니 금세 바닥의 타일에 시선이 닿았다. ‘예쁜 건 놓칠 수 없어’라고 읊조리는 나 자신이 조금 우습긴 했지만 빗방울이 떨어진 스마트폰을 옷에 닦고 그 순간의 내 시선을 카메라에 담았다. 첫인상 합격! 주위를 둘러보니 적당한 적막과 적당한 산만함이 공존했다. 야릇한 활기랄까. 뒤를 돌아보니 노랗고 붉은, 크나큰 잎사귀들이 가을비에 젖어 길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마치 내 모습인 것만 같아 웃음이 나왔다. 연인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걸까,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작은 미소를 주고받았다. 빼앗긴 주의집중을 다시 그러모으고 둔턱 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파트 호수와 호텔방 이름이 걸려있는 벽과 통로를 지나고 나니 중정이 나타났다. 호텔을 찾을 때만 해도 몰랐던 정보였는데 로컬이 거주하는 아파트와 접해 있는 곳이었다. 각각의 건물로 접해있을 뿐이지만 중정을 공유하고 있던 것이다. 처음 경험해 보는 흥미로운 구조인 점도 좋고, 어쩌면 거주자들의 일상에 감도는 활기를 간접 경험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피어오르는 것도 좋았다. 벽에 걸려 있는 호텔방 리스트를 보며 이름을 하나씩 읽어봤다. 한스, 슈타인, 크뤼거, 루드비히, 빌헬름 등 익숙한 듯 낯선 듯, 한 번쯤 들어본 듯한 독일 이름들이 어찌나 정겹던지. 부를 이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공간과 인사를 나누고, 애정을 주고받으며 교감도 하고, 대화(?)도 실컷 나누고픈 여행자에겐 그 무엇 하나 예사롭지 않은 게 없는 거다.


리셉션 공간으로 들어서고 나니 안도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예쁘게 꾸며진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모습을 띤 리셉션 공간이 아늑하고 귀여웠던 덕분이었다. ‘작지만 충분하다’는 느낌을 가득 받은 곳이다. 재밌게도 리셉션 공간은 미감이 뛰어난 사람이 꾸며둔 부동산 오피스 같기도 했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고르키처럼 매력적인 매물만 모아놓고 비밀리에 소개해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의 부동산. 기존의 많은 호텔 리셉션 공간과 달라서 그랬을까. 피로가 덮쳐오고 있던 순간에도 이런저런 상상이 피어올랐다. 이럴 때마다, 크고 작음을 떠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미감과 독특한 개성으로 채워진 공간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의 여러 묘미 중 하나도 바로 이런 공간을 만나고 감동하고 영감 받고 추억하는 것이다. 세상에 무수히 많을 ‘나와 공명하는 그 공간들’을 언제 다 만나볼 수 있을까. 여행을 결코 멈출 수 없는 이유다.

고르키는 1900년대 초반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2차 세계 대전 폭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 후 황금기 시대를 지나며 매력적인 공간으로 기능해 오다가 1961년 베를린이 동독과 서독으로 분리되면서 파손되었다. 전쟁에서도 살아남았었는데 도시가 분할된 게 더 큰 상처였을까. 그로부터 약 50년 후에 다시 복원되었고 베를린의 중심 미테 지구에서 다시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곳이다. 고르키를 찾았던 2017년 당시엔 실은 잘 몰랐는데 후에 알고 보니 미테 지구는 힙스터들의 성지였다. 로젠탈러 광장을 중심으로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구역 내에 모든 게 있었다. 멋지고 독특한 카페와 레스토랑, 베이커리, 빈티지 스토어, 온갖 외국 식당과 갤러리와 공원까지. 돌아보면 이토록 멋진 구역에서 4일이나 지냈으면서 우리는 너무나 조용하고 차분했던 건 아닌지 싶다. 하지만 어쩌랴, 이게 우리인 것을. 미테지구에 힙과 쿨함은 차고 넘쳤을 테니 후회는 없다.

어둑해진 틈새로 이름 모를 하얀 꽃에서 물빛이 반짝이는 중정을 지났다. 방을 안내해 주겠다며 동행한 스탭과 함께 다른 건물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드디어 우리가 머무를 방에 도착했다. ‘안녕, 베노(BENNO)!’. 3일 밤 동안 우리와 하나가 될 베를린 속 우리 집 이름은 ‘베노’였다. 아파트먼트 호텔이라는 이름답게 방은 큼지막했고, 공간 구성이 넉넉했다. 마치 흑과 백의 대조를 꾀한 듯한 흰 벽과 검정 타일, 나뭇바닥과 검정 가구가 멋스럽고 묘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한 달은 족히 살 수 있겠다는 감탄과 함께 방을 구석구석 탐험했다. 방의 주인공인 듯 아우라가 엄청났던 크나큰 욕조가 커튼을 사이로 두고 침대 옆에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고, 여유로운 ‘ㄱ’ 자 키친은 매일 매 끼니를 요리해먹고 싶은 욕망을 일으켰다. 내 키보다 더 큰 침대맡 조명에서부터 곳곳에 배치된 아기자기한 조명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완벽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비대칭으로 과장된 콧수염과 흘끔 곁눈질을 하는 듯한 눈빛이 익살스러운 고르키의 얼굴이 곳곳에 있었다. 발매트, 로브, 슬리퍼와 슬리퍼 주머니에 이르기까지. 봐도 봐도 당최 질리지가 않더라. 침대에 놓여 있던 웰컴 쿠키 봉투에도 고르키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버터를 아끼지 않은 진한 향과 부드럽게 이 사이로 갈라지는 식감이 일품인 쿠키에 마음이 느슨해졌다. 훗날 베를린을 추억할 때면 늘 ‘고르키’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부작용인 건지 아름다운 추억인 건진 모르겠지만 고르키의 활약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분명 피곤했고 지쳐있었는데 고르키만 보면 웃음이 났다. 영화처럼 만약에 그가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면 얼마나 흥미롭고 흥분될까 상상했다. 침대 발치에는 몇 백 년 전 침수된 배와 함께 가라앉은, 금은보화가 가득 담겨 있을 듯한 보물상자가 놓여 있었다.

보기만 해도 신비로움을 한껏 내뿜는 궤짝을 열어보니 금은보화가 아닌 담요와 쿠션이 들어있었지만 무엇이 들어있든 없든 재밌으면 그만이다. 카메라 모양의 내 가방을 올려둔 모습을 어느 날 우연히 포착했는데 제대로 ‘탐험가 모드’가 만들어졌다. 궁금해서 방 콘셉트를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니 세계여행자들이나 탐험가들이 머무르고 싶어 하는 방으로, 큰 도시 속 사파리처럼 느끼고 쉬길 바랐다고 한다. 기대에 부응한 것 같아 머무름이 더 즐거웠다. 베를린은 뭐든지 (키가) 크고 길다. 침대도, 테이블도, 의자도 그리고 욕조도. 글쎄, 욕조에 머리를 누이고 사르르르 녹아내리는 몸을 뉘이며 슬며시 눈을 감는데 발이 안 닿는 거다. 두꺼운 타월을 베개 삼아 더 과감히 발을 뻗어본다. 가까스로 닿긴 하지만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싶어 폭소가 터져 나왔다. 재밌으면 됐지 뭐, 굴욕엔 늘 유머가 깃드는 법이지, 암. 굴욕의 순간조차도 소중하고 즐거운 게 여행이긴 하니까.

감겨둔 두 눈을 슬며시 뜨고는 병맥주 한 모금 시원하게 마시며 고요히 공간을 바라봤다. 널찍한 블랙 키친에 은은한 조명 빛이 비치는데 마치 깊은 밤 호수 위를 둥둥 떠다니며 노니는 반딧불이의 발광 같더라. 우리를 자꾸만 끌어당기는 키친에서 결국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문 닫기 전 겨우내 찾아간 마트에서 여러 종류의 병맥주와 감자칩과 소시지를 사 온 후 아름다운 아파트에서 우리만의 디너를 즐겼다. 겨우 소시지 구운 게 전부였지만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고르키 덕분이기도 하고, 그와 함께하는 첫 여행의 첫 디너라는 의미도 컸고, 맥주 덕분에 흥이 차오른 덕분이기도 했다. 다음날부터 본격 시작될 베를린 여행을 향한 설렘과 기대는 잠시 사그라졌다. 대신, 고르키와의 농밀한 밤을 보냈다. 사진을 몇 날 며칠씩 보며 기대하고 온 곳임에도 불구하고 만나서 좋아 어쩔 줄 모르겠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우리 커플의 첫 데이트 이야기로 흘러갔다. 2주 동안 문자메시지만 주고받다가 만나기로 한 전날 하필 통화를 처음 하게 됐는데 새벽 3시까지 끊을 수가 없었던 그 이야기. 1시에 점심을 먹기로 했지만 전력질주까지 했어도 무려 15분을 늦었던 나의 미안함과 내가 왔다는 걸 직감한 그가 돌아보며 벌떡 일어나 나를 맞이해 주었던 그 순간을 우리는 무려 8년째 이야기하고 있네. 나와 고르키의 만남이 꼭 우리의 만남 같아서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만났는데 너무 좋아서 다시 만날 것을 확신하게 되는 그런 사이. 그러고 보니 만난 지 1년 반 만에 감행한 해외여행에서 고르키를 만난 건 행운 아니었을까. 고르키는 밤늦도록 우리에게 이야깃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건네주었다. 고르키와 맥주의 컬래버레이션이겠지만서도. 크나큰 공간이 순식간에 아늑해졌다. 아주 빠른 속도로 ‘집’이라는 느낌까지 주면서말이지.

며칠 동안 꼭 새벽 3시였다. 과연 다 잔 건가 싶어 갸우뚱 거리며 일어나 보면 여전히 어두컴컴했던 그 적요의 시간. 아무리 베를린을 마음껏 누비며 충만한 하루를 보냈어도 꼭 눈이 떠지던 그 시간. 다시 잠들려면 족히 한 시간은 필요했던, 보너스처럼 얻어낸 것만 같던 그 시간이 종종 그립다. 아마도 그 순간의 배경이 고르키였기 때문이리라. 새벽 3시에 진정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생각하며 공간을 둘러본다. 찬기운이 일찌감치 찾아왔던 10월 베를린의 새벽 몸과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기엔 차(茶)가 제격이었다. 매일같이 정성스레 가득 채워주던 여러 종류의 소포장된 찻잎은 새벽의 듬직한 벗이었다. 향긋한 차를 우려 투박한 브라운 슈거 한 조각 녹여 마시노라면 금세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더란 것. 평소엔 쳐다도 안 보는 설탕이 어찌나 맛있던지 궁금한 참에 사탕처럼 입에 놓고 오물조물 녹여 먹었다. 가득 채워준 찻잎들 중에 경남 하동 녹차가 있어 어찌나 신기하고도 반갑던지. 결국 매일 새벽 마시던 차맛에 반해 티하우스를 찾아가 차와 찻잔을 구매했다. 여전히 애용하고 있는 찻잔은 늘 고르키를 떠올리게 해주는 애틋한 기념품이다. 너무 반갑고 재밌는 그 티하우스를 훗날 빈 여행과 대만 여행에서 만났다는 사실! 여행은 실로 ‘연결’이다.

어쩐담, 그리움이 밀려온다. 베를린은 안 그리운데 고르키가 너무 그립다. 물론 호텔이지만 ‘사람’을 그리워하듯 추억하게 되는 건 아마도 고르키의 상징 그 얼굴 때문이겠지. 더도 덜도 않고 고르키는 오래된 초석 위로 켜켜이 쌓였을 여러 겹의 베를린 중 베를린의 ‘오늘’을 만나게 해 준 곳이다. 그 오늘의 베를린을 공간으로 느끼게 해 준 덕분에 베를린의 과거와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었던, 특별했던 곳이다. 그곳과 교감을 나눈 사귐의 시간을 가진 나는 이제 그전과 후로 여행 인생을 나눠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고르키를 만난 직후로 ‘호텔과의 교감’과 ‘공간과의 대화’가 제대로 시작된 게 아닐지. 단 한 번도 그냥 지나친 적 없던 네모난 중정과 이름 모를 꽃들, 철제 계단을 타고 높이 솟은 넝쿨과 촘촘한 모자이크 타일의 바닥까지 그 어떤 것도 잊을 수 없다. 체크아웃하며 제대로 느꼈다. 이제 막 베를린에 도착한 이들에게만 설레고 따스한 곳이 아니었다는 것을. 고르키는 떠나는 순간에도 아낌없이 온기와 교감을 건네주었다. 그 온기가 다 식기 전에 고르키와 다시 연이 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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